[전재학의 교단춘추] 후배 교사 제위께 띄우는 고언(苦言)
[전재학의 교단춘추] 후배 교사 제위께 띄우는 고언(苦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5.01 1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에듀프레스] 필자는 이제 퇴임을 2년 4개월 정도 앞둔 현직 고등학교 교감입니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작년에 환갑을 지났지만 자식을 교육자로 만드는 게 평생소원이셨던 선친 덕분에 1년을 더 교직에 머물러 학교장으로 단 1년일지라도 봉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감읍(感泣)할 따름입니다. 그런 가운데 보다 명예로운 마무리를 꿈꾸며 더욱 옷깃을 여미고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이에 선배 교육자로서 5월을 맞이하면서 젊은 세대의 미래 스승들에게 용기를 내어 몇 가지 고언(苦言)을 통해 이 나라 미래 교육에 애정을 보태고자 합니다.

우리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복잡하게 얽힌 우리 교육의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소견으로 그것은 우리 학생들을 살아 숨 쉬는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란 지식을 교사의 머리에서 학생의 머리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 살아 숨 쉬는 관계입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가장 유력한 힘은 자기에 대한 신념과 자존심입니다. 학생의 가슴속에 이런 힘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교사는 교육의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이런 마음의 불씨가 꺼지면 교사는 존재(present)함으로써 영향력을 미치는 교육자가 되지 못하고 그냥 있는(exist) 한 사람의 직장인일 뿐입니다.

다음의 일화를 보시지요. 이는 러시아의 교육 사상가인 수호믈린스키의 <선생님께 드리는 100가지 제안>에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한 학생이 식물은 어떻게 영양을 흡수하고 호흡하며, 어떻게 어린싹에서 잎사귀가 자라는지. 또 어떻게 꽃에서 열매가 맺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물 교사는 “학생은 왜 이리 간단한 것도 모르지요? 학생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점점 자기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지식마저 그 학생에겐 매우 복잡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실내 수업에서 그 교사는 “이제 며칠 지나면 어린싹들이 돋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전 학급이 모두 함께 밤나무 숲속에 가서 관찰할 것입니다. 그때도 알료사가 남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면 곤란합니다”하고 말했지요. 그 생물 교사는 씨앗을 심어 밤나무 싹을 재배한 다음 이것을 줄지어 심어 숲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전 학급 학생이 밤나무 숲에 이르렀을 때, 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의 싹이 모조리 떨어져 있었지요. 그러자 학생들도 실망해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료사의 눈에서는 순간 속시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심한 괴로움과 굴욕, 그리고 정신력의 갑작스런 연소와 폭발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알료사는 교사에게 이런 행위로 항의를 표했고 원한을 원한으로 풀려 했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교사에게 무엇을 전할까요? 학생은 모두 공부를 잘하려는 바람을 갖고 학교에 옵니다. 이런 바람은 반짝이는 불꽃처럼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감정 세계를 비추어 줍니다. 학생은 이 불꽃을 교사들에게 온전히 믿고 맡기지요. 이 불꽃을 꺼지게 할 것인가 아니면 활활 타오르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교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학생이 교사를 대하는 것처럼 교사도 그를 무한히 믿어주어야 합니다. 이때 서로 존중하고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교사는 학생의 힘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학생이 한 해 동안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그것을 이해하고 알게 될 날이 꼭 있을 것입니다. 문득 깨닫는 정신적 힘은 학생의 의식 속에 점차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는 믿음으로 그것의 축적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교사가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빨리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학생은 오늘 모르던 것을 3년 뒤에라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과 잠재력의 힘을 교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다릴 줄 모르는 교사는 곳곳에서 학생과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고 가장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평생 지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학생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의 도덕적 면모를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교육 은 학생이 정신노동을 할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하고, 그가 생각하고 관찰하고 이해할 줄 알고, 정신노동의 성과에서 자기의 정신적 힘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사는 담당 교과의 기초 지식을 잘 가르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교육자가 돼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학생의 학습에서의 소망을 키워주어야 하고 학생의 정신노동에서 비록 작더라도 변화가 생겼을 때 그를 격려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모든 학생에게서 그의 독특한 개성을 파악하거나 인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학생의 가슴에 불꽃을 키워주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은 바로 하나의 세계다. 이 세계는 그를 따라 발생하고 없어진다. 모든 비석 밑에는 전 세계의 역사가 누워 있다.”라고 말한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년)의 말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5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땅의 모든 후배 교사 제위께 코로나 시대에 건강을 굳건히 지키고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교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사로서의 존재의 의미가 충만한 삶을 영위하시길 기도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