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칼럼] 환경오염 만큼 위험한 언어오염
[박정현 칼럼] 환경오염 만큼 위험한 언어오염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4.2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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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
 

‘나들이’라는 말은 모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낱말이다. ‘나가면서도 들어온다.’는 의미로 푸근함을 주는 낱말인데, 이어령 선생의 「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 그 의미가 잘 설명돼 있다. 하나의 낱말에는 오랜 시간과 문화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어느 낱말 하나 쉽게 넘길 수 없고, 우리는 낱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바르게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방송이나 온라인에서 특정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엄청난 지탄을 받고, 대중들에게 사과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로 이 표현을 쓴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다. 맥락의 흐름 상 그렇게 오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떤 경우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듯 언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유기적으로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낱말의 사용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이 법률로도 명시돼 있음에도 어떤 낱말들의 경우 정무적 해석의 여지가 큰 경우가 있어 우려가 된다. ‘민주시민’은 우리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당위적 개념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이 낱말을 우겨 넣으려다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시민의 가치는 그 어떤 것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대한민국의 근간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별도의 교과를 편성하고, 부서의 명칭으로 신설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이미 민주화는 대전제인 상황에서 모든 교과에서 포괄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인데 이전과 다르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지금까지의 교육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났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에는 멀었다는 뜻인지 의아해진다.

하나의 용어에 집착함으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를 담아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정무적인 판단인 것이고, 교육에 있어서는 허용될 수 없는 사고이다. 포용과 소통을 내세우면서 정작 선을 긋고 편을 가르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당에서 ‘홍익인간’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거센 비판에 철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인류 공영’과 ‘평화’의 가치를 함의하고 있는 용어를 굳이 바꾸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헌법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용어인 것은 알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교육의 최상위법인 교육기본법에 담긴 하나의 용어를 바꿨을 때 미치는 파장과 영향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식의 발언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과 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꼭 전하고 싶다. 어떤 낱말을 선택할 때 부디 신중하게 곱씹고 세상에 내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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