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톡] 가림판에 갇힌 아이들, 그 씁쓸함에 대하여
[송은주의 사이다톡] 가림판에 갇힌 아이들,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4.25 2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에듀프레스] 코로나가 시작된 후, 학교에 새롭게 자리 잡은 아이템이 있다. 바로 가림판이다. 가림판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다. 정말 ‘아이템’이다. 게임 속 ‘아이템’들이 각각의 특성과 힘을 가지고 있듯이 아이들이 사용하는 가림판도 그렇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날 가림판을 설치할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이 가림판이 어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단순히 가림판은 비말이 튀지 않게 방지해주리라는 생각, 앞을 가리니 답답하겠구나, 아이들이 이동하면서 여기저기 치이고 테이프도 금방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내가 직접 가림판이 설치된 학생 책상에 앉아 다른 학생들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말이다.

학생들 네 명을 남겨 방과 후에 토의할 일이 있었다.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교사용 책상에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이 나오자 각자 책상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옆으로 비죽비죽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가림판이 겹치니 뿌옇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3월 처음부터 나왔던 현상이니 익숙했다. 가림판이 투명하긴 하지만 순도 100퍼센트의 투명함은 아니고, 자기 머리높이보다 높게 올라오기 때문에 앞사람의 가림판까지 겹쳐 TV 시야가 뿌옇다고 아이들이 호소했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틀어준 후 내가 직접 가림판이 설치된 학생 책상에 앉아 TV 화면을 보니 세상에, 이건 볼 수가 없다. 4학년인 아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키가 작다. 게다가 거리두기를 한다고 책상을 바짝 붙일 수도 없으니 뒤에 앉은 학생일수록 TV화면을 보는 시야각이 좁아지면서 더 많은 가림판이 눈앞에 겹쳐 뿌옇다 못해 허옇게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화면만 켜면 그렇게 불편한 자세들로 여기저기 교실 구석에 흩어져서 봤구나!

영상 시청을 마치고 생각을 나누는 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단 네 명, 거리를 띄워 둥글게 둘러앉았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다. 내 책상의 가림판과 상대 학생의 가림판이 겹치기 때문이다. 학생이 나를 보고 있고 눈맞춤을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얼굴과 얼굴 사이에 장벽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성가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투명하긴 한데 뭔가가 있음’ 그 자체가 단절의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영상을 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고 활발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기 시작하니 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말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마치 집에서 혼자 쇼파에 앉아 TV를 볼 때처럼 변해갔다. 말은 하고 있으나 어느새 아이컨택트는 점점 무뎌지고 자기 손과 바닥, 책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가림판 안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혼자라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상대방과 함께 하는 순간이 아니라, 나 마치 나 혼자 벽을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시야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화가 계속되니 아이들의 말이 겹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을 하고 있지만 거리를 두고 가림판으로 가리고 있으니 말소리가 분명하게 편히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말하는 중이라는 것을 잊고 자꾸 끼어들게 되는 것 같았다. 나와 마주보고 있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데 내 왼편에 앉은 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이들이 산만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는 성미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가림판이 쳐진 학생 책상에서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교실에서 이런 경험이 겹쳐서 줌에서도 그렇게 서로 자꾸 끼어들고 말이 겹치는 걸까?

가림판은 비말도 막지만 소통도 막는다. 아이들이 경청하고 싶지 않아서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잘 들리지 않는다. TV화면을 보면 책상 옆으로 고개들을 내밀고 그래도 안 보이는 아이들은 칠판 앞, 교실 곳곳에 흩어져 서서 보거나 불편하게 앉아 화면을 본다. 모두 한 줄로 띄어 앉아 칠판 쪽만 보고 있는 구조에서 가림판 때문에 앞을 보기 답답하니 옆으로 돌아앉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가림판을 앞에 두고 친구와 선생님의 말을 무심코 흘려듣는 경험이 쌓이면 아이들은 경청과 멀어질 것이다. 자꾸 돌아앉고 옆으로 기울여 앉으니 신체적인 변화도 동반될 수 있다. 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으니 군중 속의 고독에 빠지는 시간도 많아지고 있다.

친구 말 경청하라, 선생님 봐라, 바르게 앉아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 자리에 앉아보고야 알았다. 코로나 시국에 가림판이 쳐진 책상에 앉아본 적이 없는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학생 책상에서 앉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TV를 본 적이 없었던 3월 한 달간, 아이들은 선생님은 몰라주는 답답함을 안고 지내왔겠다는 생각에 씁쓸하고 미안했다. 가림판이 아이들에게 남길 신체적 정서적 습관과 자국이 두려워졌다.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