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널 어찌하면 좋니, 화상아!③ - 화상수업과 공간학
[김남형의 에듀토크] 널 어찌하면 좋니, 화상아!③ - 화상수업과 공간학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4.09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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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남형 여주 송촌초교사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에듀프레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간관계와 공간의 관련성을 공간학(Proxemics)으로 설명했다. 그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공간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시행되는 화상수업은 기존 교실과는 다른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교실 속 인간관계엔 변화가 생겼다.

상대를 보는 시선의 높낮이는 관계에 위계를 만든다. 서서 내려다보는 교사의 시선과 앉아서 올려다보던 학생의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했다. 교사가 교단 위에 올라 한 뼘 더 높은 곳에서 수업을 하던 시절, 교사의 권위가 지금보다 높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교사와 학생의 눈높이 차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시선의 높낮이가 만들었던 위계 구도에 새로운 변인이 작용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는 20cm 높이의 교단이 사라진 시기보다 더 큰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는 교실 내 물리적 거리도 관계에 묻어있었다. 튀는 학생이 아니라면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당연히 교사의 눈에 더 잘 들어오게 된다. 수업 중 아무리 순회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똑같은 관심을 주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불평등한 원근이 화상 플랫폼에서 평면화된 것이다.

화상수업을 통해 시선의 높이가 같아지고 교실 내 존재한 원근이 사라지면서 많은 교사들의 눈에 낯선 얼굴들이 들어왔다. 뒷자리에 앉던 19번 학생은 이해가 어려운 순간에 왼쪽 눈을 찡그리는 것을 교사는 이제야 알았다. 27번 학생의 얼굴을 이렇게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교사는 자책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보기 힘들었던 얼굴들이 고르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눈에 가까워진 학생들이 교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간이 눈을 통해 인식된다는 점에서 화상수업의 여러 기능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공간을 창출했다. 기능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수업 속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능의 섬세한 사용으로 교사는 교실 속 관계를 조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회의실 기능은 차단된 칸막이로 작용하여 독립된 공간을 여럿 만들어주었다. 교실에서 하던 모둠 활동과 달리 밀폐된 공간에 모인 학생들은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화면공유 기능과 함께 모둠원이 소통할 때는 서로의 시선까지 공유하는 경험이 발생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겹치는 시야가 마치 타인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컴퓨터실에서 하나의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하던 모둠 활동과는 다른 느낌이다.

얼굴 화면을 켜고 끌 수 있는 기능은 사용하기에 따라 교실 속 여러 관계를 재구성할 힘을 갖는다. 교사가 학생을 보는 시선 뿐 아니라 학생이 타인을 보는 시선까지 조정할 수 있기에, 자아낼 수 있는 관계 구조에 대한 경우의 수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진다.

화면이 켜진 사람과 꺼진 사람 사이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취조실 속 특수거울과 같은 경계가 생긴다. 수업 속 다양한 입체적 활동을 고려할 때, 부정적인 면을 조절하면서 강점을 잘만 활용한다면 구성원 간 가공된 관계는 수업을 신세계로 옮길 수 있다.

코로나 시대가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앗아갔지만 현장 교사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어려운 시기를 넘어가며 그간 변화하기 힘들었던 교실을 새롭게 재구성해본다면, 위기가 또 다른 기회라는 진부한 위로를 현실화시키며 미래 교육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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