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전이(轉移) 가능한 역량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가?
[전재학의 교단춘추] 전이(轉移) 가능한 역량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4.09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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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에듀프레스] 유대인의 자녀교육법인 ‘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는 이미 널리 알려진 교육론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나아가 교육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분석하는 방법,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교육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지식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을 확보하고 있다.

‘학습력 강화(BLP:Building Learning Power)’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윈체스터대학교의 심리학자이며 학습과학 전공과 클랙스턴(Guy Claxton) 교수는 학생들에게 현명하게 선택하는 능력,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그리고 강력한 학습 의욕을 강화해 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왜냐면 특정한 지식과 기능은 곧 구식이 되지만 일반적인 학습 능력은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들에게 유연한 마음가짐을 개발해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마음은 근육이란 말을 만들었다. 그의 정신 근육 단련과 관련된 다음의 말을 살펴보자. “수학, 역사 또는 음악을 지도함으로써 어떤 정신 근육 그룹들을 특별하게 단련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길러 주고 싶은 역량들도 가르칠 수 있을까?” 이 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는 정신 근육 비유를 통해 전이(轉移) 가능한 역량도 가르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연계하여 영국의 교사 및 강사 노조(ATL)는 교육과정에 관한 보고서에서 “사실적 지식의 단순 암기 교육은 이제 전이 가능한 역량을 배양하는 교육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전이 가능한 역량은 다음 세대가 정보화시대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적 지식(facts) 학습과 역량(skills) 학습 간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전이 가능한 역량 지도에 관한 대부분의 이론들은 궁극적으로 이런 이분법을 재현하는 것으로 전이 가능한 역량에는 사실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과연 그럴까? 학생들은 난해한 수학 문제를 분석해야 하고, 어려운 역사 문제도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두 개의 상이한 교과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있을까? 우리는 학생들이 과학적 사실에 대하여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기를 원하고 또한 문학적 지식에 대해서도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각각의 교과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전문성을 개발해 줄 수 있는 다목적 의사소통 전략이 존재할까?

대답은 ‘No’이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T. 윌링햄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는 사람들이 정신 작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뇌가 계산기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뇌는 계산기처럼 데이터의 종류에 무관하게 특정한 데이터에 대해서 특정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 즉 우리의 뇌는 계산기와는 다르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웠다고 해서 그것이 체스(서양장기)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거나, 중동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또는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각종 실험 연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과제 유형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실험했을 때 과거에 적용했던 기술을 새로운 문제 상황에 이전(移轉)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역량이 있다고 말할 때 그가 과거에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에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조작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이 수학 역량이 높아서 수학 문제를 잘 푼다고 하는 설명은 그다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런 설명은 논점을 벗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학습 과정은 아무리 효율적으로 학습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없이도 학습하는 과정을 찾을 수 있다는 타당한 근거가 우연히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 노력 없는 학습의 기적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주변의 신문 기사들을 보자. 그것들은 독자들이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전제하고 작성된다. 학생들이 신문 기사를 읽고 이해하기를 수업 목표로 설정하여 가르치고자 한다면 신문 기사를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기본 지식이나 배경지식을 충분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독서 전략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범하는 일반적인 오류 중의 하나다.

결론적으로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치고자 하는 목적은 학생들에게 효과적이고 다목적용인 역량들을 개발시켜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전이 가능한 역량을 주장한 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그런 역량을 완전하게 개발해 줄 수는 없다. 왜냐면 이 방법들이 역량의 본질과 역량의 지식 관련 특성을 체계적으로 반영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이 가능한 역량을 키우는 것을 교육의 이상적 목표로 삼는 것은 이처럼 곳곳에 암초를 드리우고 있으며 또한 이를 맹신(盲信)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참고한 문헌>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지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페이퍼로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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