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신고” 아동학대처벌법, 학교마다 골머리
“무조건 신고” 아동학대처벌법, 학교마다 골머리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4.08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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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기자]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A 교장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1일 학부모가 찾아와 담임교사가 자녀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머리를 밀치고 색연필로 배를 때린 것도 모자라 친구들 앞에서 질책하는 바람에 왕따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A 교장은 놀란 마음에 담임교사를 불렀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혹여 무슨 말이 나올까봐 학생과 단둘이 있는 상황조차 만들지 않았다며 억울해 했다.

그러고 보니 미술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인데 교사가 때리는 장면을 본 학생이 없다. 교장실까지 찾아와 항의한 학부모가 자녀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목격자는 없었다.

이럴 때 교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행 ‘아동학대범죄의 처리절차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이 법 10조 2항은 ‘학교의 장과 그 종사자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시·도, 시·군·구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 사소한 다툼도 피해 주장하면 아동학대 신고해야

교장에게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쌍방 진술이 일치하지 않으니 덮을 수도 없다. 관할 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에 질의했지만 “유권해석 할 위치에 있지 않아 공문으로 답변주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학부모가 돌아간 뒤 A 교장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고를 하면 담임교사와 학생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스승과 제자가 경찰서에 쪼그리고 앉아 조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만약 폭행이 사실이라면 40대 유능한 교사는 아동학대범이 돼 교직을 잃을 수 있다. 학생의 진술이 허위라면 어린학생에겐 또 어떤 처벌이 기다릴까.

진위야 어찌됐든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힘들고 고통스런 상처가 될 것이 뻔했다. 아동학대범으로 몰린 교사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현재 병가를 낸 상태다. 허위사실로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경우엔 학부모 역시 처벌대상이 된다.

학교에서 발생한 일을 일일이 경찰에 신고하고 사법처리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A 교장은 고민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아동학대처벌법에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가 신설되면서 학교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번처럼 교사와 학생간 다툼 뿐 아니다. 학생과 학생간 다툼에서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아동학대 건으로 경찰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그가 이 학교에 재직한 지난 2년 동안 사소한 다툼이 20여 건 발생했다.

이 법이 적용됐다면 모두 경찰에 신고 대상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학생과 교사들이 경찰서를 들락거렸을 판이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발생한 사안을 교육적으로 처리할 방도가 없는 셈이다.

◇ 과도한 법적용 교육활동 위축 .. 일부선 법 취지 왜곡 우려

한 중학교 교장은 학부모에게 전화가 오면 본론에 들어가기 전 잠깐 말을 끊고 신고 대상이 어떤 것들인지 안내부터 해준다. 일단 이야기를 듣고 나면 무조건 신고해야 하는 탓에 사전에 학부모가 판단할 수 있도록 말미를 준다는 것이다.

일명 정인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처벌법은 당초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학교에서 발견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법 제정 취지와 달리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일단 신고부터 해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획일적 법 적용으로 학교의 교육적 기능은 물론 법 취지도 상실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전수민 변호사는 “성추행범으로 몰려 억울한 징계를 받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한 故 송경진 교사 사건이 대표적 케이스”라며 “경찰에서 무혐의 결정이 나왔지만 당사자가 겪은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학부모들은 담당교사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동학대처벌법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허위사실이라도 일단 폭행 피해 주장이 나오면 무조건 신고토록 한 조항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며 “이는 법 제정 취지에도 맞지않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가·피해자 모두 원만한 해결을 원하거나 처벌하지 않기로 명시한 경우에는 학교에서 자체 종결할수 있게 해 과도한 법 적용으로 교육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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