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說] 온라인 개학의 추억
[송재범의 교육說] 온라인 개학의 추억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4.01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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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범 서울신서고등학교장
송재범 서울신서고 교장
송재범 서울신서고 교장

[에듀프레스] 다음은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나타나는 어떤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어떤 검색어일까?

인터넷을 통한 원격 수업으로 학사일정을 시작하는 일. 2020년 전 세계와 한국에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의 영향으로 2020년 1학기에 시행되었다. 집단 방역을 위해 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실시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기 위한 수업 방식으로, 2020년 4월 9일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3학년, 4월 16일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1~2학년과 초등학교 4~6학년, 4월 20일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그렇다. 온라인 개학이다. 교육학 책에도 없고, 교육 당국도 처음 사용해본 용어다. 그렇기에 온라인 개학을 발표하는 교육부의 보도자료(2020.3.31.) 제목도 「처음으로 초‧중‧고‧특 신학기 온라인 개학 실시」이다. 2020.4.9일, 온라인으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개학식을 했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육부 장관은 온라인 개학식 축사를 했다. 정말 엊그제같이 생생한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묻어난다. 2020.4.9일은 한국교육사 달력에 ‘온라인 개학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온라인 개학 이후의 일 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반성적 검토를 통해 2020년의 4월과 2021년의 4월은 다른 모습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 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방향성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해본다.

첫째, 교육 대책이 아닌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교육 당국을 바쁘게 만들었다. 교육부의 코로나 대책 보도자료가 하루 가 멀다하고 교육부 홈페이지에 등장했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공문과 지침들이 4월의 꽃비 내리듯 일선 학교로 쏟아져 내렸다. 교육 당국은 비상시국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학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교육 당국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플랜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태의 추세를 보며 때마다 필요한 교육 대책들을 제시했을 뿐, 교육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교육 정책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차분한 분석을 토대로 목표, 방법, 성과 등에 대한 체계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그리려고 하는 전체 그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부족한 부분만을 채우는 퍼즐 채우기식의 긴급 처방만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언제 개학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온 국민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논쟁했다. 교육부는 이때 감염병에 대한 종합적인 미래 예측, 그리고 이를 반영한 등교 개학에 대한 원칙, 그리고 등교 개학이 늦어지는 경우를 대비한 장기적인 원격교육 대책 등을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개학을 언제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개학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가능한 종합적인 방향과 지침을 마련했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 정책이다. 그런데 감염병의 추이만을 보고 있었다. 학교 현장은 긴 호흡의 방향성을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혼란스러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육 대책을 넘어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지적하지만, 교육부의 자세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학교 현장의 입장에서 볼 때, 2021년 3월 새학기 교육부가 보여준 업무는 크게 두 가지만 떠오른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각급 학교의 등교 인원을 포함한 원격 수업 지침의 기계적 하달, 그리고 3월 한 달째 오류가 나타나고 있는 EBS 온라인클래스다. 모두 정책이 아닌 대책이요 조치일 뿐이다. 대책이 사후약방문격이라면 정책은 사전건강다지기와 같은 것이다. 이제 일 년간 이토록 아팠으니, 약처방전이 아닌 건강다지기 계획서 같은 코로나 맞춤형 교육 정책이 나와야 되지 않는가?

둘째, 위험의 일상화를 전제로 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

큰 사고나 위험이 발생할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석학이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이다. 벡은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현대사회를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하여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으나 다양한 위험과 재앙이 따르는 위험사회라고 하였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는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현대는 온갖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현대의 위험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사회가 위험사회로 탈바꿈하여 스스로 위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된 위험(manufactured risks)이다. 즉, 일시적 사고(事故)가 아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인 것이다. 그리고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유명한 벡의 표현이 말해주듯, 현대의 위험은 계급‧인종‧국적‧빈부 등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들이닥친다. 한 마디로 현대의 위험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코로나19도 그런 위험에 해당한다.

현대사회의 위험을 울리히 벡의 관점에서 본다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교육도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즉, 일시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임시 방안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위험의 일상화를 전제로 한 교육의 재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교육 당국에서 발표하는 대부분의 분야별 계획서를 보면, 여전히 위험의 도래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극히 정상적인 상황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지속적으로서 성장하는 사회, 팽창하는 사회를 전제로 교육 정책의 내용과 방법, 물량 등을 제시하고 있다. 위험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정상적인 패턴임을 고려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교육청의 「2021년 원격교육 지원 기본계획」의 ‘대안을 넘어 새로운 정상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의 표현이 적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위험사회를 고려한 교육의 재설계는 당연히 학교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교교육의 목표를 말할 때는 ‘~~~ 인재 양성’의 형식을 취한다. 그런데 근래 가장 많이 접하는 인재상의 문법은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인재’이다. 개인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방향임을 인정하지만, 어떤 사회를 위한 인재를 기르자는 말은 큰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미래사회의 흐름을 특정한 모습으로 상형화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인간상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위험사회에서는 특정한 모습으로 도래할 사회를 위한 인재가 아니라, 어떤 사회가 오더라도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위험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자신의 생존력만을 키우려는 도구적 이성의 존재가 아니라, 위험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창조적 이성의 존재를 길러내야 한다.

셋째, 지원이 아닌 정책으로서의 교육적 쉼이 필요하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은 ‘나는 배고프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가난과 빈곤을 이겨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험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나는 불안하다’라는 현실에서 생긴다. 오염된 공기와 기후 변화, 전 세계로 퍼진 바이러스 앞에 모두는 같다. 이 때문에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배고픈 것이 아니라 불안하다. 교육 당국도 불안하겠지만, 학교 현장의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은 하루하루 불안이라는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교장으로서 나는 교감, 행정실장, 보건교사와 함께 4명이 단톡방을 운영하고 있다. 수시로 학생과 교직원의 감염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나누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올라오는 시시각각의 얘기들은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인근 학교에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우리 학교 ooo 학생이 확진자와 밀접접촉했다고 하는데….”

방역 대책에 따른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발생 상황의 양상들이 너무도 다양해서 시시각각으로 확인하고 판단해야 하기에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마음은 늘 불안하다.

이와 같은 지금의 학교 현장에는 쉼이 필요하다. 모든 교직원들도, 학생들도 지쳐있다. 그런데, 교육 당국에서 나오는 문건과 지침들 중에는 아직도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것이 많이 있다. 물량적으로 공문의 숫자가 줄어들고, 유사 사업을 통합 운영하고, 예산 활용에 있어서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학교의 처지를 배려하려는 교육 당국의 노력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고지 점령을 위한 새로운 공격 명령이 그 비워진 자리를 채운다. 예를 들자면 ‘미래’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깃발들이 꽂혀있는 고지들에 대한 점령 명령이다. 이로 인해 학교는 쉴 틈이 없다.

학교 구성원의 쉼을 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 이때 단순한 일의 멈춤으로 쉼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공문 숫자의 감축으로 교직원들의 여유가 생겼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제대로 쉬기 위한 지원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직원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한 정서적 지원이 될 수도 있고, 번아웃 해소를 위한 물적, 인적 지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험의 일상화를 전제로 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듯이, 위험의 일상화를 고려한 교육적 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원이 아닌 정책으로서의 교육적 쉼이 요구된다. 위험사회에서 교육적 쉼은, 간헐적으로 제공되는 지원이 아니라 일상화된 위험과 연계되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발병, 확산의 과정을 보면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를 살고 있고, 검사, 격리, 치료의 과정을 보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사회를 살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상황을 조만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이런 사회가 오히려 정상적인 모습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 이렇게 흘러온 온라인 개학의 추억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효율성보다는 방향성이, 탁월성보다는 연대성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교육적 쉼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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