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사에겐 책무성(責務性)보다 책임성(責任性)이 필요하다
[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사에겐 책무성(責務性)보다 책임성(責任性)이 필요하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3.28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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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에듀프레스] 매년 3월, 전국의 초⋅중⋅고는 <학부모 총회 및 학교 설명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그러면서 어느 학교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교육공동체’라는 용어가 난무한다. 그만큼 학교라는 조직체가 공동체적 삶을 강조하여 같은 방향을 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대한다.

문제는 여기엔 왜곡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작동하여 학교 구성원들에게 그릇된 신호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왜냐면 시키는 일만 하고 주어진 일만 하게 되는 소위 책무성(責務性) 문화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책무성은 신뢰가 사라진 학교를 지배하는 핵심 기재 중 하나다. 책무성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은 경직된 규율이나 행동 규범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상호 불신의 악순환에 빠진 교사들은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톱다운(Top Down) 시스템에 따라 정해진 업무만 수행한다.

교무실은 매뉴얼이 규정하는 기계적인 직무 수행 절차의 지배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로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회가 줄어든다. 각종 지침과 요령에 순종하는 ‘기계 적인 교사’가 넘쳐 난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는 일종의 계약주의가 지배한다. 계약주의는 감시, 점검, 보고, 기록 등 ‘순응 강화 체제’를 집행하는 일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그 결과 집단의 전체적인 이익이 줄어들고, 구성원들 간 협력적 활동이 약해진다. 공공 서비스 가치가 침식되면서 자기 봉사적 가치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렇다면 학교와 교사가 계약주의를 뛰어넘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한 마디로 교사들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상 외적 책무성과 내적 책무성으로 나누어 구분하기도 한다.

외적 책무성은 낮은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선형 관리에 의거하여 위계적이고 외적인 통제와 제재로 유지된다. 그 과정은 대개 개성이 파괴된다. 성과관리와 평가 시스템으로 표상되는 외적 책무성 형식에서는 전문적 실천가라는 도덕적 주체의 위상은 약해진다. 이런 학교는 갈수록 신뢰가 줄어들게 된다.

반면에 내적 책무성의 기반은 높은 신뢰다. 그것은 도덕적인 주체, 전문적인 책임과 관련된다. 성과 평정, 규율과 제재 등 외적 동기가 아니라 헌신, 충성, 의무감 같은 내적 동기로 유지된다. 서로 다르거나 상충되는 이익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명할 책임을 지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이 일은 때로 관료주의 시스템의 지시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적인 교육학자인 미국의 넬 나딩스(Nel Noddings)는 <21세기 교육과 민주주의>에서 ‘위로 향하는 책무성(accountability)’과 ‘아래로 향하는 책임성(responsibility)’이 서로 대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책무성은 권위에 대한 지나친 순종을 조장한다. 위계 구조 시스템에서 위쪽을 겨냥하므로 보상이나 징벌에 대한 교사들의 취약점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승진과 징계라는 두 축을 이끄는 관료적인 교직 사회를 이끄는 것은 바로 강력한 책무성에 기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낮은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책무성 문화는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이 전면화하면서 널리 퍼졌다. 전문가 책임주의가 사라지고 외적 규제와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법률이나 강요된 규칙을 통해 전문가들의 윤리적 행위를 직접 통제하려는 시도는 일반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책무성 문화는 고도의 윤리 의식과 도덕적 실천이 요구되는 전문가로서의 전문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그들 자신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교육이 주목할 점이 분명해진다. 바로 책무성보다 더 강력하게 교사에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책임성(責任性)이라는 것이다. 책임성은 권한의 사슬에서 아래쪽을 겨냥한다. 교사들이 각자의 돌봄과 역량에 의존한다. 교사는 적어도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 안전, 그리고 그들의 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도덕적⋅미적⋅사회적 성장에 책임이 있는 존재다.

책임성을 가진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떤 마음의 습관, 지적 호기심, 그리고 배움을 계속할 열정, 의지를 보존하기를 바란다. 교사는 수업의 단원이 학습의 즐거움을 죽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학습이라는 욕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롭고 가치 있는 활동을 슬기롭게 만들어 낸다.

과거 우리의 교육정책을 돌아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부는 지금까지의 감사권과 평가권으로 강제하는 강한 책무성 구조 대신 이제는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인 시스템 아래서 학생 교육을 온전히 책임지는 유연한 책무성 구조, 또는 강한 책임성의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와 교사의 자율 평가와 이에 대한 외주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의 전문적인 피드백, 감사와 장학 위주의 행정 통제에서 벗어나 협의와 토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컨설팅이 이와 같은 책임성 문화를 보다 뒷받침할 수 있다.

이제 교사들에게 책임성을 부여하는 문화를 더욱 강력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전문가적 식견과 전문가로서 갖춰야 하는 윤리⋅도덕 체계를 이룰 수 있다.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전문가 기계’,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 안에 고립되어 홀로 살아가는 반쪽짜리 전문가가 득세하지 않기 위해서는 책임성에 기초하는 교사 문화가 그 열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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