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숙명여고와 교장공모제
[기자수첩] 숙명여고와 교장공모제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3.2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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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기자] 교장공모제가 수술대에 올랐다. 교육부가 제도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공모교장 선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인천에서 발생한 교장공모 면접시험 유출 사건은 충격적이다. 일반적인 승진 비리와 차원을 달리한다. 문제를 빼내 전달할 정도로 수법이 대담하다. 2007년 교장공모제가 시행된 이래 초유의 사건이다.

그동안 교장공모제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잡음이 잇달았다. 공모선발이 나올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을 불렀다. 짬짜미 공모란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심지어 공모교장 순번을 정해놓고 빈자리가 나올 때마다 순서대로 응모한다는 말도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판을 엎어버리기도 했다. 내부형의 경우 특정 집단 출신 교원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이념 갈등 양상까지 띄었다.

그뿐인가. 극히 일부지만 교장개혁 운운하며 승진제를 적폐로 몰아놓고선 정작 내부형 교장을 승진 하이패스로 이용한 사례도 있다.

투표용지 조작하고 판 엎고.. 승진 수단 악용도

선발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허점을 드러냈다. 경기도에서는 교장공모제 찬반투표 과정에서 교사가 투표용지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공모제가 실시된 학교 교사가 컬러복사기로 투표용지를 복사해 투표함에 넣은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지난 2019년 일이다.

서울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특정 집단 간부출신 공모교장 후보가 교육청 심사에서 탈락하자 들고 일어나 1위로 뽑힌 후보의 교장 임용을 무산시켜버렸다.

탈락한 교사가 속한 단체를 중심으로 심사가 잘못됐다며 교육청에 거세게 항의했다. 견디다 못한 교육청은 결국 임용을 취소하고 6개월간 교장 공석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이후 교육청 자체감사결과 공모교장 선발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누군가는 교장 문턱에서 억울한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장은 학교를 통할하고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하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 누구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무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학교는 교장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조직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영국수상 처칠은 모교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교장 뒤에서 따라 걸었다고 한다. 그만큼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교육청 2차 심사 꼭 필요?.. 학교자치 정신 살려야

그런데 그곳에 부정이 발생했다. 마치 2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숙명여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자녀에게 시험지를 전해주고 1등을 만든 부모나 제3자에게 면접문제를 알려주고 교장을 만드는 것은 하등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죄질은 더 나쁘다.

공모교장 면접에서는 착안점이 중요하다. 요구하는 질문의 핵심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점수가 가감된다. 면접문제 유출은 정답유출이다.

교장 공모심사에 참여해 보면 긴장도는 매우 높다. 30여 년 이상 학생들 앞에서 교직생활하신 분들이지만 바짝바짝 침이 마른다. 속절없이 떨리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모습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안쓰러울 정도로 떠는 분들도 꽤 많다.

밤새워 학교경영계획서를 작성하고 동료 선배들 앞에서 수차례 면접 리허설을 했겠지만 30여 분 면접은 숨 막히는 시간이다. 인천 사건을 보면서 공모 심사에 최선을 다하던 그분들 모습이 떠올랐다.

이참에 교장공모제는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신청부터 선발까지 모든 과정에 부정이 개입할 요소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그들만의 리그’니 하는 말이 나올 여지를 줘서는 안된다. 객관성, 신뢰성, 모두가 공감하는 납득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학교심사와 교육청 심사로 이원화 된 구조를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치의 근본은 학교자치다. 학교 구성원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공모제 시행 초기에는 학교의 선발 기능이 미덥지 않다는 이유로 교육청이 2차 심사하는 방안을 도입했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학교의 민주성과 전문성은 높아졌다.

모든 권한을 학교에 주고 교육당국은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하면 된다.

숫자 늘리기보다 질적 성장을 .. 니편 내편 따질 때 아냐

운영방식도 좀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일부 지역에선 공모 출제위원들이 집에 근무하며 면접문항을 출제한다. 일명 재택출제다. 강제적 외부차단 조치도 없다.

비록 절대적 신뢰를 전제 한다 해도 집에서 면접 문항을 출제한다는 것은 선 듯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천처럼 2박 3일 합숙하며 출제를 해도 문제가 새는 세상이니 더욱 그렇다.

교장공모제는 지난 1995년 교육개혁안의 하나로 제안된 초빙교장제가 효시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공모제가 실행에 옮겨졌다. 당시 정부는 교장의 고령화 등 교직사회 침체와 학교 활력 저하를 들어 젊고 유능한 교장을 선발해야 한다면서 공모제를 도입했다.

성과도 많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공모교장 학교와 비공모교장 학교의 중학생 기초학력 미달비율을 조사한 결과, 국어와 영어에서 공모교장 학교가 학생들의 미달률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학부모들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교장공모제의 명징했던 의미가 세월의 상흔에 녹슬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가 정의롭다고 했다.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기보다 질적 관리가 중요하다. 니편 내편 따질 때가 아니다.

그래야 신뢰가 돌아온다. 교장 선발조차 부정이 난무한다면 교육은 설 자리가 없다.

지금 이순간, 헌신과 희생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공모교장선생님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명명백백 진실이 밝혀지고 제도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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