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학습결손보다 더 우려해야 할 것들
[김남형의 에듀토크] 학습결손보다 더 우려해야 할 것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2.27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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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경기 여주송촌초교사
김남형 여주송촌초교사
김남형 여주송촌초교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80년대 골목에 모여 사는 이웃들의 삶을 그렸다. 선우네 집 옆에는 택이네가 살고 있었고, 그 앞에는 동룡이네 집과 정환이, 덕선이네 집이 있었다. 지금은 느끼기 힘든 골목 안 이웃들의 따뜻한 삶이 작품의 중요 요소였다.

형편이 어려운 덕선이네는 정환이네 집 반 지하에 살았지만, 빈부격차가 관계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대입 6수생 정봉이는 서울대를 다니는 보라 앞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 택이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드라마가 픽션임에도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현실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의 골목은 서로의 다름을 포옹하는 공동체였고,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그 따스함을 추억했다.

아파트의 확산이 먼저였는지, 현대인의 개인화 현상이 먼저였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파트 단지는 골목에 비해 높은 인구밀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관계의 단절을 느끼게 되었다.

이웃과 마주칠 동선은 최소화되었고,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굴 만나기라도 하면 진한 어색함이 감돌곤 한다. 배달 음식을 시킨 것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면 의아함을 넘어 섬뜩함까지 느낄 정도로 우리는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타인에 대한 낮은 공감 능력으로 이어졌다. 마주할 기회가 적어질수록 자신과는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는 힘들어졌고, 다름은 포용이 아닌 배척의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공동체라는 말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작년 한 해 진행된 온라인 수업은 내용과 방식, 학생 집중도 면 모두에서 기존 수업의 대안이 되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정부 당국과 언론, 그리고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학습결손을 우려했다. 하지만 과연 코로나 시대를 넘어서며 고민해야 할 문제가 학습결손 뿐일까.

어쩌다 등교를 하는 날에도 교실의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책상 위 칸막이는 투명했지만 친구들과 구분되는 분명한 가림막이었고, 거리 두기는 학생들의 신체 뿐 아니라 관계에도 묻어나기 시작했다. 3월이면 다시 시작될 등교수업도 비슷한 형태일 것이니 타인과의 경계 구분은 학생들의 삶에 배어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며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예상한다. 그만큼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변화는 감염병의 종식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로 사회에 묻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른들에 비해 짧은 인생을 살아온 학생들에게 코로나 시대가 차지한 인생의 지분은 얼마쯤일까.

학교는 학습의 장이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작은 사회로 일컬어진다. 함께 산다는 것은 법과 규칙을 지키며 서로 해가 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 부딪히며 모난 점을 다듬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포용하는 공동체가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작년 한 해 학교는 그 공동체성을 담아내기 어려웠다. 개인으로 철저히 구분된 시기를 경험하면서, 어린 세대에게 공동체라는 말은 불편함 이외에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염려해야 할 것은 학습결손이 아니라 아이들의 공동체성 상실은 아닐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재간둥이 동룡은 당시 사회에는 많지 않았던 맞벌이 가정의 자녀였고,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LA GEAR 신발에, 조다쉬 청바지를 입었지만, 동룡이는 부모님과 함께 먹는 아침 식사를 더 갈구했다.

돌이켜보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붕괴되고, 골목이라는 공동체가 사라진 시점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들은 간혹 LA GEAR 신발과 조다쉬 청바지에 가려져 우리의 눈에서 슬며시 사라지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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