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징벌적 사회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송은주의 사이다 톡] 징벌적 사회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2.19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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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에듀프레스]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나 의혹이 매일 같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그전에도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발로 인해 일부 연예인들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일은 종종 있었다. 여러 사람이 사실인정과 동시에 공개 사과 후 프로그램 하차, 은퇴 등의 수순을 밟았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폭로하는 글에는 이런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그 사람이 TV에서 좋은 사람으로 나와 놀랍고 충격이었다.” 그리고 피해 사실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이런 반응이 많다. “이렇게까지 잔혹했다니 놀랍다. 이런 인간은 아예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려야 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의 상처는 당사자가 아니면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당시에는 여러 상황상 불가항력적이었고 시간은 너무 흘러버렸다. 그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온 시간까지 생각하면 어떤 벌도 부족하다. 그러니 이제라도 권선징악이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요구한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미래가 유망할수록 일벌백계의 효과는 클 것이라 기대한다.

여기서 어른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정말 그런 효과가 클까?’라는 점이다. 과거 행적 때문에 추락하는 유명인을 가리키며 “봐, 나쁜 짓 하고 살면 저렇게 되는 거야. 요즘 세상에는 비밀이 없어”라고 말한다고 아이들이 “나의 미래를 위해 어릴 때부터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구나”라며 생각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듯, 타인의 잘못된 행동조차도 나의 덕을 다듬는 배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아이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너무 멀다. 누군가 응징을 당해 모든 것을 잃는 것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금 당장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는지까지 배울 수는 없다. 후속 실행이 없는 다짐은 쉽게 잊혀진다.

미래를 미리 생각할 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라면 친구의 현재도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학교폭력과 같은 반인륜적 일들은 현재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을 사랑해야 할지 모르는 무지에서 시작된다. 모든 폭력은 모방의 씨앗에서 피어나 무관심의 물을 먹고 자란다. 타인을 해한 잘못은 합리화될 수는 없으나 어린 날의 그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우리 사회는 묻지 않는다. 그 과정에는 부족한 사랑도, 넘치는 이기적인 사랑도 있다. 인간의 선택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가정, 학교는 무엇을 놓쳤는지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교육현장의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피해자가 불가항력적으로 혼자 견딜 수 밖에 없게 만든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때 있었던 문제들은 아마 지금도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이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장이 되고 있는가. 사랑은 가르쳐주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 가해 폭로 가운데 피어난 유노윤호의 미담은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유노윤호의 중학교 동창이라는 글쓴이는 학교폭력을 당한 자신에게 유노윤호가 “내가 그 녀석 혼내줄까?”라고 위로와 관심의 말 한마디 건네준 일이 큰 힘이 되었다고 증언했다. 글쓴이는 친구의 작은 관심의 말 한마디가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알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담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사랑의 실천은 대단한 게 아니라 이렇게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말을 들어도 보고, 해보기도 하고, 그 소중함을 알기도 하고 그럴 여유도 있어야 한다.

징악은 징벌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비난과 추락으로 끝나는 징벌적 사회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벌에서 멈추지 않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학교는, 사회는, 어른들은 알고 있는가 물어야 할 때이다. 학교에서는 가해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데 집중하는 징벌적 학교폭력예방교육의 한계를 깨닫고 관계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회복적 생활교육이 트렌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미 일이 일어난 후의 감정 문제나 트라우마 때문에 실제적인 문제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후에 회복되는 모범 사례를 보기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보기가 힘들고 사전에 인간성 보전을 위해 집중할 여건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건 두건 종종 터지던 학폭 과거사 폭로는 이제 ‘학폭 미투’라고 부를 정도로 큰 움직임이 되었다. 학폭 가해자가 교사, 경찰, 소방관을 하고 있다는 고발 글들이 매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이런 현상은 이제 학폭 미투가 유명인에서 일반인으로 퍼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치유 받지 못한 영혼들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는 의미이다. 친구와 자신을 위해 인간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학교와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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