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칼럼] 교사와 관리자 사이에서
[이성우 칼럼] 교사와 관리자 사이에서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1.02.07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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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성우 구미사곡초 교사 / 교육학박사
이성우 구미사곡초교사/ 교육학박사
이성우 구미사곡초교사/ 교육학박사

[에듀프레스]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해오면서 교장교감선생님들과는 불편한 관계를 맺은 적이 많아도 교사들에게는 그런 적이 잘 없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후배교사들과는 반목하거나 불화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을 혐오했고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안 되리라 다짐했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일정한 자부심을 품어 왔다. 내가 후배교사들과 잘 지내온 것은 나의 이러한 기질 혹은 성품과 관계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교사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내가 관리자가 아닌 교사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이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든 탓이리라. 산마루에 오르기 전에는 산등성이 너머의 모습을 못 보는 것처럼, 세상살이 가운데는 나이가 들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이렇듯 인식의 변화는 입장의 변화에 말미암는다. 원로교사로서 나는 교사와 관리자 사이의 중간자적 입장에 있다. 직위 상으로 교사이기에 나는 이를테면 권위적인 관리자에 반발하는 젊은 교사들의 정서에 공감한다. 그런 한편 관리자와 같은 기성세대로서, 자기 권리 주장은 열심히 하면서 근무 태도는 불성실한 젊은 교사를 볼 때 ‘나도 마음이 불편한데 교장 교감의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젊은 시절에도 그런 교사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같은 동료로서 그 사람에게 유감을 품을 뿐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교사 입장에서 그것은 그저 불쾌한 문제일 뿐이지만,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이다. 교사는 그런 꼴불견인 사람을 문자 그대로 안 보면(不見) 그만이지만, 관리자는 직면해야만 한다. 교사는 자기 혼자만 잘 하면 그만이지만, 관리자는 모든 교사가 ‘잘 해야’ 탈이 없다. 교사는 자기 학급 아이들과 학부모만 만족시키면 되지만, 학교장은 전교의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 이래저래 교사보다 관리자가 더 어렵다.

관리자가 교사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내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 학교가 엄청나게 변했다. 군사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부조리가 척결되면서 학교도 변했다.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학교의 변화는 학교 내 구성원의 관계 변화를 핵심으로 한다. 지금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 교사와 관리자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이 교문에 들어설 때부터 엎드려뻗쳐 해서 빠따를 맞았다. 교사가 학생을 죽도록 패도 별 문제가 안 됐던 곳이 학교였다. 관리자가 교사를 대하는 방식도 폭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굴종의 삶을 떨쳐”로 시작하는 전교조 노랫말이 말해주듯 그 시절 교사들은 관리자들로부터 많은 억압을 겪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청에 갑질신고센터가 설치되어 있을 만큼 관리자의 전횡과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제도적 차원에서부터 방지되고 있다.

학교가 교장의 왕국인 시절은 가고 없다. 지금 학교에서 관리자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무척 어렵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지닌 관리자는 학부모 만족도는 높되 교사들의 반감을 쌀 우려가 있고, 유연한 리더십의 소유자는 학교의 문제를 방기할 가능성이 많다. 관리자와 교사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지내면 서로 편하지만 그런 행태는 이른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해태하는 점에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교사와 학부모 둘 다를 품으면서 최선의 학교경영을 위해 따뜻한 리더십을 펼치는 교장선생님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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