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학교자율운영체제는 누구를 위한 자율인가?
[한희정 칼럼] 학교자율운영체제는 누구를 위한 자율인가?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1.29 12: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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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2021학년도 학년 및 업무배정 시기는 학교마다 천차만별

[에듀프레스] 교육부는 지난 1월 26일 2021년 업무계획 발표를 통해 “철저한 학교 방역을 기반으로 학생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등교할 수 있게 지원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학습‧정서적 결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필 계획”임을 밝혔다. 그리고 1월 28일 ‘2021학년도 학사 및 교육과정 운영 지원방안’을 발표하였다.

교원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2021학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므로 안정적인 학사 운영을 위해 지원 방안을 미리 발표해 줄 것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이에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정을 확정하고, 초등 저학년 및 특수교육대상자 등에 대한 지원과 등교 확대를 기조로 한다는 것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2021년 1월 29일 각 학교의 현실은 어떤가! 시도교육청마다 차이는 있지만 2월 초면 교원 전보 발표가 마무리될 것이다. 설 연휴가 있긴 하지만 3주의 준비시간이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전보 발표는 2월 3일~5일 사이인데 올해 맡을 학년 배정 발표는 2월 17일, 심지어 22일에 하겠다는 학교의 방침에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는 내용들이다.

급하게 간단한 설문을 만들어서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는 ‘실천교육교사모임 광장(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몇 시간 만에 백 명이 넘는 응답이 모였다. 2월 전에 올해 맡을 학년을 임시로나마 발표했다는 응답은 9.6%에 불과하며, 2월 1일~15일 중에 발표한다는 응답은 37.4%, 2월 16일 이후에 발표한다는 응답은 53%나 되었다.

교사들이 근무하게 될 학교가 어디인지, 몇 학년을 가르치게 될 것인지, 어떤 업무를 맡게 될 것인지, 새로 옮기는 학교는 어떤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내가 맡게 되는 학년은 어떻게 원격수업을 운영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깜깜이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런 시대착오적 관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물론 3월 2일 아침에야 몇 학년 몇 반 담임이라고 학생명부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는 전임자들이 새 학년의 교육과정을 다 짜 주었고, 정작 실행해야 하는 교사들은 그걸 보고 그대로 해야 하는 한 마디로 폭력의 시절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역사적, 기술적 한계는 인정한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의 약진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새 학년도의 새 교육과정은 그 교육과정을 직접 운영할 교사들이 함께 협의해서 만들고 실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교육 효과나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당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요구가 교육청 정책에 적극 수용된 것이다.

그 방향을 적극 제안하고, 직접 실현하며, 새로운 모범과 사례를 만들었던 것은 ‘혁신학교’다. 그러니 이미 그런 학교를 경험해 봤거나, 그런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교사들은 2021년에도 전임자가 계획해서 실행자에게 넘겨주기 관행을 지속하는 학교 문화를 지켜보기도, 견디기도 힘들다. 왜 내가 남이 짜준 교육과정으로 학급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자괴감이 든다.

아마 많은 이들은 왜 가만히 있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면 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그냥 웃지요’다. 몇 년을 같은 요구를 하는 ‘이상한 교사’, ‘혼자 잘난 척하는 교사’가 되기 십상이다. 제자리에서만 까딱거리고 있는 시침, 분침, 초침을 돌리기가 이렇게 어렵고 지난하다. 그런데 ‘학교장’이 의지만 있으면 돌리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게 바로 ‘학교자율운영체제’의 아이러니다.

학교자율운영체제는 ‘무엇을’ 위한 자율운영체제인가? 이렇게 묻는 것이 맞겠지만 이런 현실을 경험하는 교사들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학교자율운영체제는 ‘누구를’ 위한 자율운영체제인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자율’로 해야 할 영역과 ‘필수’로 해야 할 영역은 언제나 따로 존재하는데, 교육부나 교육청은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자율’을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2월 22일이 되어야 어느 학년을 맡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는 한 교사의 한숨이 이만큼 깊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긴밀한 협의와 새 학년 준비가 필요한 2021학년도에 버젓이 서울 한복판 학교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라는 것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자율로 해야 할 것과 표준을 만들어 제시해야 하는 걸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교사들이 미리 새 학년을 준비하고 싶다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학교자율운영체제가 학교장 마음대로 하는 자율운영체제로 변질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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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안지는게자율? 2021-01-30 07:47:46
학교의 특성을 고려한 자율. 좋습니다.
그런데 '너희들 알아서 해. 난 책임 안져!' 식의 태도는
방임일 뿐입니다. 열심히 하는 교감님도 계시지만
가끔 본인은 수업도 안하면서 업무 토스의 달인, 거북이
업무처리 교감님들이 너무 많습니다.
2월초에 전보교사 발표나면 최소 설 전에는 학년배정 쯤은
끝내야 한다 정도는 교육청에서 가이드라인을 주셨으면
합니다.
등교수업 늘리는 것은 좋은 데, 교육부나 교육청
에서 책임 지셨으면 합니다. 코로나 두려워서 수업하겠습니까? 마음편하게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당신들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