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육이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전재학의 교단춘추] 교육이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1.1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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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에듀프레스] 우리는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컨대 박진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한 TV 쇼를 시청할 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프로그램은 이 말을 남기곤 한다. 여기엔 진실성이 묻어 있고 신뢰감을 유발한다. 이른바 세간에서 회자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오명과는 거의 관련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해진 대본 없이 진행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편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사가 사람들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주며 심각한 후유증을 낳기에 우리는 예측 가능한 사회, 그것이 삶의 현장과 연계되기를 더욱 기대하고 소망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교육은 어떨까? 교육은 어떤 TV 프로그램과 가장 유사할까?

교육이 TV의 어떤 장르와 비슷한가 하는 관점을 숙고해 본다. 솔직히 우리 교육은 점점 더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왜냐면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주어지고 거기에 이르는 자세한 지도(대본)가 제시된다. 일련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행동과 대화는 예측 가능하고 단지 가장 큰 도전은 미리 주어진 정보를 암기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기간 너무도 익숙한 방식이기에 당연히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은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을 위한 배우로만 준비된 채 현실세계에 내던져진다. 다시 말해 우리 아이들은 학교 공부에서 건강한 의미의 도전을 놓치고 있다. 이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학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즐겁게 배우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한 저항이다. 왜 그럴까?

우리 교육은 단지 정해진 대본에 따른 암기의 학습과 그에 대한 성취감, 시스템에 익숙한 매너리즘, 관행적 습관화, 그리고 선택받은 자들이 자본투자로 인한 기회의 불공정을 즐기며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기득권을 사수하려 한다. 그 결과 교육 사다리는 붕괴되고 부의 세습처럼 교육 또한 세습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TV는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그야말로 정해진 대본 없이 현장에서 실제로 흥미진진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참여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환호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더 큰 도전을 자극한다. 목적지는 있지만 지도도 없이 가야 할 대강의 방향만 제시된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을 집단지성으로 알아내야 한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TV에서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과 집단지성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여가는 숭고한 학습의 과정을 통해 대본 없는 리얼리티에 적응해 가야 하는 것과 같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방송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킬본(Kilborn, 1994)의 정의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①개인이나 집단이 일상생활에서 겪은 실제 사건을, ②ENG나 홈비디오 카메라를 이용, ③극화하여 재구성하되, ④리얼리티 효과나 오락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가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추세는 이 네 가지 조건 가운데 일부만 충족시키더라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K-드라마’ ‘K-팝’ ‘K-무비’ ‘K-푸드’ ‘K-방역’ ‘K-에듀(Edu)’ 등등 한류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 곳곳에 도전장을 내고 성과 또한 비교적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것이 기본은 각본을 따른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대본에만 의지해 예측 가능한 결과를 익숙한 관행에 의해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것이기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의 교육도 리얼리티를 배제할 수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는 ‘배우’가 없고 실제 인물, 실제 배경, 동기, 재능을 가진 다양한 개인이 있다. 이들은 프로그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략 알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다양하게 발생하여 학습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은 당면한 현실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교사는 보스가 아닌 안내자의 역할에 충실한다. 교사는 PD처럼 전체 목표를 달성하도록 진행하고 학생들은 그 속에서 자율적인 학습을 통해 배움이 이루어진다. 이제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표준화된 대본 쓰기에서 흥미로운 도전 만들기로 전환해야 한다. 이 도전은 다양하게 학습할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학생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다루는 교육이 필요하다. 암기 사항을 말해주는 대본은 필요 없다. 이들은 학교에서 발굴되어 자신의 쇼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더 나은 배우이자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유형으로 배역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발달심리학 전문가인 토드 로즈는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그들 자신일 수 있게 하며, 성공에는 오로지 한 가지 올바른 길이 있을 뿐이라는 신화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의 현대 교육은 좋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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