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송구영신을 위해 2020년이 남긴 것들
[한희정 칼럼] 송구영신을 위해 2020년이 남긴 것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2.31 07: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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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서울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정릉초교사

[에듀프레스] 2020년 12월 31일,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힘들었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다. ‘다사다난했던’이라는 상투적 수식어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연말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꼭 해야 할 것 같은 연례행사 역시 그럴 것이다. 쉼 없이 달려왔던 2020년을 돌아보며 몇 가지 함께 나누고 싶은 문제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2020년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경험했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살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경험한 온라인 수업의 다양한 방식, 간헐적 등교가 가져온 변화, 생활 리듬의 변화, 비대면 시대가 가져온 관계 양상의 변화, 가정환경의 변화 등을 꾸준히 살피고 대응하는 것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정적인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기기와 온라인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면서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향상되었거나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면서 호기심을 갖고 탐색했던 유의미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의 여러 자극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더 집중하며 공부할 수 있었던 사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험이 어떤 형편의 아이들에게 더 집중되었을지, 쉽게 예측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주목하며 관심과 지원을 더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둘째, 학력 인정이라는 형식적 요건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출석만 하면 진급하고, 졸업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그 시기에 꼭 배워야 할 것을 전혀 학습하지 못했어도 졸업장을 받고 진학을 한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수업에서도 출석 체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출석인정결석’이니 ‘미인정결석’과 같은 요상한 용어도 그렇게 양산된다.

온라인 수업 초기, 출석 인정 기한을 7일로 못 박으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실시간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수업 자료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실시간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들은 이중고를 겪은 셈이지만 이런 이중고에 대한 인정은 없다. 학교는 ‘출결’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니 어떻게든 출석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강제될 뿐이다. 학생들은 ‘출석 안 해도 선생님이 해결 방법을 다 알려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셋째, 이수율, 진도율에 매몰된 학습관리시스템(LMS)은 학생들 개개인의 배움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교육용 콘텐츠나 동영상 재생 시간만으로 ‘학습 완료’를 승인하는 현행 방식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을까? 실시간 화상 수업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의 일부만 화면에 비추도록 하고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무엇을 체화하고 있을까?

진도율에서 답을 구하지 말고, 의미 있는 질문 하나 던지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유의미한 경험을 어떻게든 끌어내고 상호작용하고 싶은 교사들은 패들렛, 페어덱, 멘티미터, 잼보드, 줌, 팀즈 등과 같은 외국 프로그램이나 플랫폼에 기대게 된다.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이런 분야에 얼마나 취약한지, IT 강국과 교육이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넷째, 현행 온라인교육시스템이 지닌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공공학습관리시스템’인 e학습터나 온라인클래스는 위의 두 가지 맹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의 교실을 그대로 온라인에 옮겨 놓은 수준이라 구시대적인 플랫폼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관리해주는 학생들의 학습 이력은 출석률과 이수율 정도다.

각 학생들이 어떤 학습 결과물들을 제출했고, 어떤 글이나 댓글을 올렸는지 교사가 일일이 게시물마다 확인하는 방법 외엔 그 어떤 리포트나 포트폴리오도 받을 수가 없다. 매우 단순한 댓글 수, 게시글 수 정도만 알려준다. 이렇게 폐쇄형으로 운영되는 플랫폼이다보니 좋은 수업 자료를 공유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전국 27만개의 교실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섬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새 학년이 되면 그 모든 학습 이력은 삭제되고 텅 비어버린다. 그런 상황이라면 ‘학습이력관리’ 같은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데이터를 쌓아 놓고 그 데이터를 활용할 줄 모른다.

마지막으로 최소한으로 통일해야 하는 것과 차이를 인정해야 할 것에 대한 일관된 구분이다. 학교별로 플랫폼은 다를 수 있고 교사마다 수업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학생들이 사용하는 단말기나 와이파이 접근성, 학교의 원격 수업을 위한 인프라 등은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오히려 거꾸로 했다. 수업 방식을 강제하고 학생용 단말기, 원격 수업을 위한 인프라는 그대로 두었다. 그러니 학교마다 학생마다 관리자와 업무 담당자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각 학교에 몇 천만 원짜리 스튜디오 한두 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단말기 제공이다. 4월 온라인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단위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지난 몇 개월의 경험을 통해 교사들은 스마트폰보다는 태블릿이, 태블릿보다는 크롬북 정도의 노트북이 가장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단말기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새롭게 세울 것인가? 이 물음 앞에 서서 보내야 할 것을 보내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2020년이 이 오래된 관행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초석이 되는 해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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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020-12-31 16:47:28
기사에 공감합니다. 학생 데이터 요금 지원을 볼모로 e학습터, ebs온라인클래스를 채택한 학년이 많지만, 2021년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눈 높이가 높아진 만큼, 자율적으로 학급별로 다른 플랫폼을 써가며 장단점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교과서만 해도 교사들이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셔야 합니다. 보다 전문가를 투입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꺼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원격수업 하면서도 지원단, 강사를 공문 모집없이 담당 장학사 지인들로 채우는 것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런 돈들이 장학사 호주머니에서 지출된다면 아무도 상관안합니다. 근데 국민의 혈세잖아요. 새해에는 부끄러운 행동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