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다림'
[전재학의 교단춘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다림'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2.2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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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교감

[에듀프레스] 오늘날 디지털 세상은 가히 기적 같은 문화 혁명이다. 대표적인 예로 휴대폰 사용이 일상화되고 어느 누구에게나 휴대폰은 마치 자신의 오장육부 장기 중의 하나인 것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혹자는 휴대폰을 사람의 오장칠부로 승격시켜 비유하기도 한다. 손안에 담긴 작은 스마트폰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생활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을 해결 할 수 있다. 누가 감히 혁명적 문화의 혜택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디지털 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 세상은 인간의 욕구 중 만족을 지연시키기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왜냐면 디지털과 통신 기술은 기다림이 필수적이던 일들을 실시간 진행되는 과정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에서 기다림은 곧 속도지연이고 이는 중대한 결함을 초래한다. 그래서 디지털서비스 대부분은 기다릴 필요 없이 실행 즉시 결과가 주어지도록 설계된다. 최종 결과값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주어질지 상세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 일들은 디지털환경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통신 기술은 전례 없이 빠른데도 3G, 4G, 5G로 점점 더 초고속으로 진화하여 기다림과 지연시간을 아예 없애는 것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의 어두운 면을 살펴보자. 최근에 서울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현금만 받습니다! 2~3일 걸린답니다!” 주말 밤 9시쯤 넘어서 편의점 종업원은 수백 번은 외쳤다. 황급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아르바이트생 목소리엔 짜증이 짙게 묻어났다. 안내문을 써 붙여 놨어도 오가는 사람들마다 이리저리 물어본 모양이다. 당시 화재로 그 지역의 TV, 전화, 인터넷 등이 일제히 끊겼다. 그러나 마침 주말인데 집집마다 스마트폰, 케이블TV, 유튜브 없이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를 심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연일 주민들에겐 번거로움의 연속이었다. 주말이면 동네축구 멤버 모으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는 먹통이 된 전화기를 붙들고 망연자실하더니, 동네 대신 집안에서 하루 종일 공을 몰고 다녔다. 다른 집에선 아이 내보낼 때 공중전화 사용법을 알려주었는데, 정작 그 지역에 공중전화가 없어 연락이 안됐다. 주말에 드라마, 예능을 몰아보던 여자들은, 켜질 기미 없는 TV만 노려봤다. 주문도 결제도 안 되니 동네 중국집은 일찌감치 문 닫았고, 그나마 문을 연 가게들은 매출 걱정으로 온통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바로 화재사건 직후의 디지털 디톡스의 참담한 실상이었다. 일상이 붕괴되고 기다림은 아예 참을 수 없는 재앙인 것이다.

한 미래학회는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 2030년이면 아예 기다림이라는 단어와 경험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대부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피드백이 주어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더글라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현재의 충격 Present Shock When Everything Happens Now》에서 실시간 기술로 인해 현재를 중심으로 현실의 모든 것이 재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현대인의 인내심은 점점 희소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내심을 가능하게 하는 기다림은 인간만의 탁월한 능력이자 특징이다. 인간은 타동물의 본능적인 욕구 충족 행위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믿으며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인구에 회자된 스탠퍼드대의 마시멜로 테스트는 2차, 3차의 후속 연구로도 증명하고 있다. 만족지연 능력, 즉 인내심과 자기통제력은 환경과 교육의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여기에 개인의 의지와 선택, 즉 습관의 힘과 마음의 힘이란 전략이 추가된다면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세상의 모든 차이를 만드는 주역으로 살아가며 보다 큰 성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인해 우리 학교의 현장에서 청소년들에게 기다리고 인내하는 인성교육 조차 불가능한 것인가? 디지털 시대에 우리 교육이 고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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