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단춘추] 학교는 실력의 민낯을 가르쳐야 한다
[전재학의 교단춘추] 학교는 실력의 민낯을 가르쳐야 한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2.20 0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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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에듀프레스]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원망해!” 몇 년 전 뜨겁게 민심을 자극했던 이 말을 혹시 누가 했는지 기억을 하는지? 그렇다. 국정농단사건으로 한때 온 국민의 분노를 유발했던 최〇〇의 자녀인 정○○가 한 말이다.

그녀는 일찍이 강한 것에 길들여진 아이라서 커서도 오만함을 고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권력자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부모를 두고 자란 덕분에 그녀는 부모의 막강한 영향력 밑에서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자라게 되었다. 스스로 노력하여 얻기보다는 부모가 제공하는 안락한 우산 속에서 모든 것을 부여받으니 인성 또한 독출하게 성장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래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약자들에겐 막말을 쏟아붓거나 무시하는 마음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유력 정치인이나 재벌가의 자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후군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도립대 교수인 우치다 타츠루(1950~)는 현대사회를 ‘격차사회’라 지칭한다. 이는 능력과 실적에 따라 다르게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말한다. 예컨대 연봉의 차이를 노력의 차이로 인정하고 불평등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다. 그러한 불평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현실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허구’라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특히 부모의 경제력은 한 사람의 삶에 가장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이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사실 한 사람의 실력은 그 사람만의 노력으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출발점의 차이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그 사람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격차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를 ‘약자 기준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른 없는 사회》에서 '유아'는 과거의 나’, ‘노인은 미래의 나’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현재는 성인이라 하여도 과거에는 모두가 약자였으며, 언젠가는 다시 약자로 돌아갈 '예비 약자’라 말한다.

현실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거창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약자가 가질 것을 강자가 빼앗지 않으면 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러한 사소한 원칙을 지키는 것에서 ‘공정한 경쟁’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과거에 아이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렇게 혈기왕성한 사람도 시간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약자들의 몫은 남겨두라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약자라는 입장을 숙고한다면 생각의 미숙함에서 오는 오만함은 분명코 교육의 부재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맹신하는 것은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의 삶을 사회 구성원이 과도하게 숭상하기 때문이다. 이기적 경쟁이 개인적 성취가 되고 개인적 성취가 개인의 실력을 증명한다는 허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경쟁과 성취를 연결하는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고리에 감춰진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박남기 교수는 《실력의 배신》에서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인이 이룬 성취가 오롯이 개인의 순수 노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상당 부분 타고난 능력과 노력적 특성의 결과이고 비실력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임을 깨닫도록 교육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은 노력만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나 성장 환경과 같은 비실력적 요소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자. 일찍이 프랑스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루소(1712-1778: Rousseau)는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안하무인 태도의 원인을 분석하였는데 결론은 귀족들의 오만한 태도가 잘못된 교육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프랑스 귀족들은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서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존재라고 배우는데, 이것이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시카고 대학교의 교수이자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1947 ~ )의 저서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에서 밝히고 있다. 누스바움은 루소 교육 이론의 핵심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배우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이제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스스로가 원초적으로 타인에 비해서 강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공동체와 소통하면서 성장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을 가져왔던 마이클 샌델(1953~) 교수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직시하고 있다.

학교의 성적 우수자는 결국은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다소 학력의 신장(伸張)이 늦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재벌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전술한 바와 같이 어려서부터 강함에 길들여진 아이는 커서도 오만함을 고치지 못한다. 최근의 격차사회의 역사적 허구는 끊임없이 이를 경계하고 삼갈 것을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도 모 유명 인사의 가족 이야기처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사건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학교에서 보다 진실한 교육이 필요하다.

스스로 높다고 간주하거나 아빠찬스, 엄마찬스 나아가 부모찬스와 같은 불공정한 게임으로 분수를 모르고 오만해진 아이에게는 인간은 본래 약한 존재라는 겸손과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오만한 사고를 깨우쳐 허상에 감추어진 실력의 민낯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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