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교장 선생님의 전화
[송은주의 사이다 톡] 교장 선생님의 전화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2.17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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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교사

[에듀프레스] 어느 날 저녁 핸드폰이 울렸다. 뭘 하던 중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분이어서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주신 분은 경기도에 계신 교장 선생님이었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당시 평교사셨던 교장 선생님과 동학년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2학기에는 교감으로 발령받아 가셨고 벌써 교장이 되신지 5년이 되었다.

전화를 받으니 "송은주니?" 하시는 딴딴하고 시원한 목소리가 반가웠다. 밀레니얼 세대 교사로서 교직에 들어서게 된 계기, 사회적 배경, 교직과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해 고찰한 책이 5월에 나왔을 때 감사했던 분들께 책을 보내드렸다. 바빠서 이제야 책을 다 읽었다며 소감을 나누려고 전화를 주신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초임교사 때 나를 가장 많이 아껴주셨던 분이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우리 반 청소를 구석구석 해주셨던 선생님의 옆 모습을. 아이들과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던 신규교사의 3월 어수선한 교실을 선생님은 마치 TV에서 본 러브하우스처럼 단박에 바꿔놓으셨다.

“가만히 있어 봐.” 하시더니 정장 치마를 입으시고도 쓰레기통을 정리해 봉투를 시원하게 묶고 순식간에 빗자루질, 걸레질, 빨래까지 착착착 해나가셨다. 그 손길을 나는 놀라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감동적이었던 이유가 있다. ‘말은 하기 쉬우나 직접 보여주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매일 느끼고 있던 신규시절이었다. 꿈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신규교사라 책상 배치도 ‘범상치’ 않았고, 아이들과 청소를 해서 엄청 지저분한 정도는 아니어도 구석구석 빈틈이 많았다. 그런 내 교실을 보시고 어떤 분은 “학교생활에 적응되기 전에는 책상은 기본적인 배치로 놓고 아이들 관리를 하고 교실을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하라”고 하셨다. 우리 반 뒷문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신 그 장면이 10년 지난 지금도 기억난다. 그 말씀을 들으며 ‘저도 몸과 능력이 마음 같지 않아 답답합니다’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도 기억하기 때문에.

하지만 당시 미술 교과 전담을 하셨던 교장 선생님은 층도 달랐던 우리 반을 종종 보러 오시고 뭘 어떻게 하라, 뭐가 잘못되었다,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다가 어느 날은 직접 청소를 싹 해주신 것이다.

선생님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죄송하고 민망했지만 뭉클하기도 했다. 남의 반의 지저분한 쓰레기와 온갖 먼지를 저 단정한 옷차림에도 불편해하지 않으며 묵묵히 쓸고 닦고 버린 후 고무장갑을 벗으며 개운한 얼굴로 웃어주셨기 때문이다.

첫 발령을 받고 만난 선배 선생님들은 나를 존중해주는 편이었지만 선배 교사들, 학부모님들, 아이들의 눈과 말을 의식하며 지쳐갔던 신규교사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함께 해주시는 손길은 차원이 다른 감동이자 가르침이었다.

그런 분이니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분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때는 어린 신규인 줄만 알았지 내가 네 속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시며 책을 읽으며 느끼신 점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정년퇴임을 2년 남기신 존경하는 분께 이런 말씀을 들으니 민망하고 감사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교장 선생님이 어디 계시냐”하니 “무슨 소리냐, 어디에나 좋은 관리자들은 많아!” 하시며 겸양을 보이신다.

교장 선생님이 내 책을 통해 젊은 교사의 시선에 대해 느낀 점을 나눠주셨다. 듣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는 교장 선생님의 승진 과정과 교장으로서 느끼는 소회에 이르게 되었다. “원래 나는 승진하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교장이 되었다. 교장이 되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하고 싶은 게 지금도 많고 학교 다니는 게 즐겁다”고 말씀하셨다. 정년을 2년 남긴 시점에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후배는 겸손해진다.

“왜 교장이 일을 벌리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안다”고 하시는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교감으로 가셨을 때 들었던 소식이 떠올랐다. “교감 선생님이 열정이 많아서 같이 일하는 교사 중 일부가 힘들다 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신규 2, 3년 차였던 내 머릿속에는 ‘관리자가 부지런하면 교사가 피곤하다, 특히 정년이 얼마 안 남은 교장은 아무것도 안 하다가 평안히 퇴임하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좋다’는 말이 있는 학교 문화가 떠올랐다. 열정이 많고 강한 면도 있으시지만, 본인은 말뿐이고 시키기만 하는 관리자와 그분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관리자로서 만났을 때와 평교사로서 만났을 때 겪을 일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후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먼저 행동해주시는 그분의 성정을 나는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관리자나 부장 선생님들, 선배 교사들에 대한 어떤 평가를 들으면 그 사람의 일면이 자리에 따라서, 사람들이 마주치는 상황에 따라서 약간은 다른 평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도 없다는 사실 역시 한해 한해 학교에서 인간관계 경험이 쌓여가며 알게 되었다.

누군가 자리가 바뀌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며 적대시하고 서로의 생각을 곡해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물론 일부러 곡해하는 게 아니더라도 정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완전히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은 그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의 의지와 실행력이 어떤 면에서는 ‘피곤하다’ 할 수 있지만 혁신이란 피로를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야무진 일처리 방식과 냉철함은 비슷한 면이 많고 냉철함과 냉정함은 한 끗 차이이다. 물론 그걸 알고 먼저 세심하게 다가와주기를 평교사는 관리자들에게 바라는 거지만.

아무튼 “학군이나 상황은 지금보다 열악했지만 함께 해주었던 그 학교의 그 선생님들이 나에게 스승들이었다.”고 말씀하시는 이런 관리자가 세상에는 많다고, 내 주변의 여러 관리자 분들이 증명해 주시니 이런 분들의 힘을 입어 학교가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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