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훌륭한 사람과 아무 사람
[김남형의 에듀토크] 훌륭한 사람과 아무 사람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12.12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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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교사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김남형 경기여주송촌초 교사

[에듀프레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SBS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에 출연한 이효리 씨가 한 말이다. 길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진행자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었고, 답을 듣기도 전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하던 순간이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가벼운 말 같지만 뼈있는 이 말에 공감했다. 사람들은 왜 아무나 되라는 말에 위로받았던 걸까.

훌륭함의 정의와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간 우리 사회는 타인의 관점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강요했다. 적성을 찾아 해당 분야에 매진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 말이다.

학교에서 제시해온 진로 교육은 어땠을까. 진로 교육이 효과적이었다면 현재 우리 청년들은 과연 지금만큼 방황하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의 진로 교육은 현실과 괴리가 있었으며, 딱히 이상적이지도 않았다.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는 어떠한 직·간접적 경험도 없이 장래희망 직업을 말해보길 강요받는다. 조금 더 성장하면 신뢰도가 의심스러운 적성 검사를 받게 되고, 입시에 몰입해 수능이라는 고비를 넘기면 어느 날 갑자기 전공과 진로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학교와 교육 당국만을 비판하기에는 교실 현장에서 학생의 진로를 다루는데 난점이 너무도 많다. 20~30명 가량의 학생들이 개개인의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관련 분야에 대한 경험을 모두에게 제공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실 바깥은 또 어떠한가. 매해 취업률은 현저히 떨어지고, 비정규직 비율은 고공 상승한다. 학생이 자신의 적성이라고 추정되는 분야를 찾았다 하더라도 진입의 문은 좁고 실패의 대가는 크다.

이 사회가 인정할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인 것일까?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신만의 뚜렷한 적성 분야를 찾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일까?

손흥민 선수에게 축구를, 유재석 씨에게 방송 진행을, 조정래 작가에게 등단을 권하는 것처럼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적합한 꿈을 찾아주고 싶다. 도전하다 실패한 학생에겐 위로를 주고, 우리 현장 교사들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용기를 줄 수만 있다면.

진로 교육은 이렇게 갈 곳 없이 한탄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것일까. UN 자문 위원으로 있는 작가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은 저서 [인생학교 일]에서,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고려해 볼 <일의 가치>에 대해 논했다.

사람들은 일을 통해 ‘돈’, ‘사회적 지위’, ‘열정’, ‘재능’, ‘사회적 기여’ 중 개인별 중점 가치들로 인해 만족감을 얻으니,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이직하라는 조언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 현실에 적용한다면 여기에 ‘안정성’이나 ‘여유 시간’ 정도가 추가될 수 있다고 본다.

의사라는 하나의 직업을 통해 누군가는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추구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높은 수입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적 지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다른 직업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동일 직업에 대해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할 수 있고, 동일 가치에 대해 만족감의 역치(閾値)도 개인별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 사람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주말에 가족들과 쉬면서 행복한 사람, 사회에 딱히 도움 되지 않는 분야에 몰입해있는 사람, 도전하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안정적이고 싶은 사람, 일의 내용보다는 대가로 가지는 돈이나 지위가 좋은 사람 모두, 타인에겐 아무 사람이지만 스스로에게는 훌륭한 사람이다.

진로 교육이 직업과 적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난다면, 그래서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가치를 더 고민해보게 한다면, 적어도 학생은 타인에겐 아무 사람이 되더라도 스스로에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으로 현존 직업들도 대부분 없어진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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