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형의 에듀토크] 에듀테크 정책과 기로 설화
[김남형의 에듀토크] 에듀테크 정책과 기로 설화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1.30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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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형 여주송촌초교사
김남형 여주송촌초교사

기로 전설이라는 설화가 있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고려장’이라는 말로 왜곡되어 퍼지기도 한 설화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가 행복하게 살던 가정에 ‘노인은 산에 버린다.’라는 악습의 압박이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던 아들은 슬퍼하며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주변 상황에 의해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향한다는 패륜적인 내용이 중심 소재이다.

학교 현장에서 나이든 교사는 좋지 못한 시선을 경험하곤 한다. 학부모부터 젊은 교사에겐 환호를, 나이든 교사에겐 한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의 심리와 언행은 자연스레 학생들에게 전이된다. 그렇게 나이든 교사는 학부모와도, 학생과도, 때론 학교와도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전국적으로 온라인 수업이 도입된 올해, 그들은 어디에 어떤 마음으로 있었을까. 젊은 교사들이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하고 새로 제시된 정책에 발 빠르게 적응하는 시기, 나이든 교사도 어디에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듀테크와 정책에 적응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밀려오는 소외감과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새로운 기술과 정책에 적응하는데 둔하다고 이야기한다. 초임 시절 가졌던 열정이 소진되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우리 사회가 선발한 인재이며, 우리 학생들을 위해 헌신해온 존재이다.

교육 당국은 변화하는 시대와 발전하는 기술을 교실에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나이든 교사의 소외와 불안감에 대해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경력 교사의 노하우나 노련함을 지켜야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연민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교사 집단 전체의 자긍심을 위해서다.

새로운 에듀테크 정책이 실현될 때마다 잘 적응하고 대응했던 젊은 교사들에게 ‘젊으니까’라는 수식어는 기쁘기만 한 표현일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금은 젊으니까’라는 섬뜩한 말로 느껴질 수도 있다.

현재 교육정책 속 에듀테크의 도입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나이든 교사의 문제는 교사 집단 중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교사도 소외되는 그들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가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사가 교사라는 자리를 초라하다고 생각할 무서운 일인 것이다. 교사가 자긍심을 잃을 때 우리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를 보내며 은퇴를 고민한 경력 교사의 수가 많아졌을 것이다.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조만간 유의미한 수치로 확인 가능하다고 본다. 은퇴라는 것이 대개 즐거움을 느끼며 하는 선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소외감이 원인이 되는 상황은 교육 당국 차원에서 막아야 할 것이다.

자율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하는 직무연수만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에듀테크는 계속해서 나오고 정책들은 수시로 변한다. 나이든 교사 개인이 이를 혼자 감당하며 젊은 교사들 틈에서 자기 계발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그들의 소외감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교사 커뮤니티와 정책단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생애 주기별 집합 연수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비슷한 고민을 할 동 나이대의 교사 집단이 나이와 경력에 적합한 연수를 받으며, 새로운 에듀테크와 정책을 익히고 설계해나가는 교육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에듀테크 정책과 함께, 교육 당국은 1급 정교사 자격연수와 비슷한 형태로 교사 집단의 생애 주기별 집합 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애 주기별 교사 공동체가 형성되어 자생할 힘을 기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기로 설화의 말미, 눈물을 닦던 손자는 불현듯 산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버리는 지게를 주워든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아버지에게 시간이 흐르면 당신을 버릴 지게로 사용할 것임을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냉정한 말에 섬뜩함을 느끼고 산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에게로 달려간다는 내용으로 설화는 끝을 맺는다.

필자는 올해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합한 블렌디드 러닝 연수의 강사로 다수 초빙된 경험이 있다. 다른 교사들 앞에서 새로운 에듀테크와 교육청의 정책을 소개하고 교실 현장에서 도입할 방법을 제시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젊은 교사인 필자는, 아직까지는 젊은 교사인 지금, 기로 설화 속 아버지가 느낀 섬뜩함을 느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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