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돌봄이란 무엇인가?
[한희정 칼럼] 돌봄이란 무엇인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1.09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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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매우 가벼운 노동으로 여겼다. 영유아 보육에 종사하는 노동자보다는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노동을, 유치원 교사보다는 초등학교 교사의 노동을, 초등학교 교사의 노동보다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노동을, 중․고등학교 교사보다는 대학 교수의 노동을 더 값비싼 것으로, 더 숙련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아무나 들어가도 가르치겠다’는 식의 막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 회선을 타고 떠돌아다닌다. 그런 사회적 인식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돌봄 교실’과 ‘돌봄 노동 현상’을 만들어냈다.

‘초등학교 애들 학교 끝나고 몇 시간 봐주는 거 무슨 자격이 필요해. 그런 단순한 일에 정규직이 왜 필요해. 피 같은 세금을 그렇게 쓰는 거 아니지. 그냥 보육교사 자격증 정도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인식이 20년 가까이 된 돌봄 정책 도입과 시행 과정에 팽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런 ‘현상’은 빚어질 이유가 없었다.

‘초등학교 선생들, 애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놀 거 아냐, 그 사람들한테 맡으라고 하면 되지. 무슨 돌봄 교사가 또 필요해. 그래도 공문서 수발, 급여 지급 같은 일은 해야 하니까 업무 담당은 정교사로 넣고, 애들 돌보는 건 비정규직 뽑아서 쓰면 되지 뭐.’ 지금도 어딘가에 떠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이런 가상대화는 필자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시대적 사회적 변화에 따라 법적 근거도 없이 교육부 정책으로 시작된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반발을 매도하고 부풀리는 일부 단체와 조직들의 행태를 보니, 그들은 과연 ‘돌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되었음에도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 정책’이라는 이유로 묵묵히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에 대한 이해보다는 흠집 내기에 골몰하는 피해 의식의 표출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을 하는 학부모와 교사, 돌봄전담사는 ‘돌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래 세대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보다 전문성이 필요한, 인공지능 로봇이 감당하기 힘든, 어쩌면 인간만의 고유한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부모로서의 돌봄 노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모의 돌봄 노동에도 평생학습이 필요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돌봄 노동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꼭 필요한 노동이라면 그에 맞게 처우가 개선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런 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정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합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오늘 우리 집에서는 돌봄 노동에 대해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와 GDP가 비슷한 국가에서는 돌봄 노동의 자격과 조건, 처우를 어느 정도로 인정해 주고 있는가?

영국,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돌봄 노동의 ‘탈가족화’와 ‘사회화’를 추구하던 흐름이 다시 ‘재가족화’되면서 ‘부모권’의 개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미 앞서 간 사회의 전철을 우리도 똑같이 겪지 않기 위해서는 급조하듯 도입된 현재의 돌봄 교실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오늘의 현상을 고수하는 한 새로운 질적 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적 아버지의 권리를 강조해왔던 스웨덴식, 좋은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강조하는 노르웨이식, 보조적 아버지상을 추구하는 핀란드식, 부모권의 인식이 부재했던 영국식 모델의 변화 과정을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살피고 있는가? 그들이 찾아가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우리가 전유할 수는 없는 것인가? 진심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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