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은학교의 기적, 폐교위기서 살아난 남해 고현초·도마초
바닷가 작은학교의 기적, 폐교위기서 살아난 남해 고현초·도마초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1.07 2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교위기 학교를 살려낸 경남 남해 고현초 백종필교장(우측)과 도마초  정금도교장(왼쪽)이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폐교위기 학교를 살려낸 경남 남해 고현초 백종필교장(우측)과 도마초 정금도교장(왼쪽)이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에듀프레스 장재훈기자] 부드러운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남해바다는 언제나처럼 은은한 감색 공단을 펼쳐놓은 듯했다.

조그마한 섬들이 도란도란 모여있는 해안선을 달리다 보니 족히 수백 년은 돼 보이는 당산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붉고 노란 나뭇잎은 입동이 지났지만 풍어(豊魚)와 안전을 기원하듯 여전히 곱다.

시간도 잠시 쉬어갈 것 같은 평화로운 마을. 야트막한 녹두산 끝자락에 자리한 고현초등학교. 지난 1928년 개교했으니 올해로 92년째를 맞는 유서 깊은 학교다.

“어서 오이소. 하이고 마 멀리서 오느라 고생 했지예. 뭐 드릴 건 없고 차나 한잔 하이소.” 고현초 교장실에 들어서자 백종필 교장이 투명 유리잔에 노란 국화차를 따라준다. 바다 내음에 꽃 향이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 교장 첫 발령인데 폐교라니.. “학교 한번 살려보입시더”

인구감소로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경남 남해 바닷가 조그만 학교로 학생들이 몰려온다.

지난 3월 신학기 때만 해도 21여 명에 불과했던 전교생이 11월 현재 45명으로 늘었다. 병설유치원도 덩달아 4명이던 원생이 같은 기간 15명으로 불어났다.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근 도마초등학교도 마찬가지. 지난 3월 20명이던 전교생이 지금은 40명이 됐다.

“우리도 놀랐어예. 이렇게 많이 몰려올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꺼. 지금도 전국에서 문의 전화가 옵니다.” 백 교장과 함께 있던 정금도 도마초 교장이 거들었다. 도대체 이 조그만 어촌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 3월 경남교육청 정기인사에서 백 교장과 정 교장은 나란히 고현초와 도마초 교장에 임용됐다. 둘 다 첫 교장 발령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학교에 들어섰지 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머지않아 폐교되거나 통폐합될 거라는 소식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교장에 임용되자마자 폐교라니... .” 이대로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백 교장의 머리를 때렸다. 자존심도 상했다.

즉시 도마초 정 교장을 찾아갔다. “누님(정교장은 백교장의 진주교대 9년 선배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학교 한번 살려보입시더.” “그래, 한번 해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정 교장이 화답했다. 교장 둘이 의기투합하니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교육지원청, 군청, 농협, 면사무소, 동창회, 마을 경로당 등 관계기관과 어르신들 찾았다. 그리고 호소했다. “폐교 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학교다. 우리가 학교를 살릴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킬 테니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남해군 소속 이장 20여 명을 학교로 초청했다. 그리곤 학교를 왜 살려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포부도 설명했다. 마침 경남교육청에서 농어촌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탄력이 붙었다.

고현-도마초 학생들이 학교살리기 캠페인에서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고현-도마초 학생들이 학교살리기 캠페인에서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화끈한 남해사람들이 뭉치자 전국서 학생들이 몰려왔다

사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쾌적한 교육여건을 갖춘 농어촌 학교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전학을 오고 싶어도 일자리와 주거문제 등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

백 교장과 정 교장은 학교 인근 빈집이 많다는 것에 착안, 주거문제 해결부터 나섰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편히 살 수 있게 한다면 전학생을 유치에 도움을 줄 거란 생각에서다.

이후 둘은 틈만 나면 남해 일대 마을을 돌며 샅샅이 뒤졌다. 처음엔 교장 둘이서 빈집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주민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발견하면 수소문해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취지를 설명한 뒤 무상으로 임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부분 흔쾌히 수락했다. 특히 고현초와 도마초 동문 출신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임대에 난색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취지를 거듭 설명하면 “좋은일 하는건데 도와야죠”라며 허락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하나둘 모은 집이 무려 24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단장된 빈집들은 서울에서, 파주에서, 김포에서, 청주에서, 창원에서, 등등 전국각지에 찾아온 새 이웃들에게 제공됐다. 화끈한 남해 기질이 빛을 발하자 학생들이 몰려왔다.

교장들이 발로 뛰며 학교 살리기에 나서자 지역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해전기는 무료 전기공사를 제공하고 농협은 농사를 지을 토지를 무상으로 대여해 줬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독지가도 나타났다. 새남해농협과 고현·도마초 동창회는 매년 1학년 신입생과 전입생에게 장학금 100만원과 50만원을 각각 지급한다.

인근 한의원에서는 학생들에게 경옥고와 총명탕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나섰다. 교장선생님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 고현-도마초 공동교육과정으로 소규모학교 단점 극복

바깥일만으로 학교를 살릴 순 없는 법, 백교장과 정교장은 공동교육과정으로 작은학교의 단점을 극복하고 다양하고 특색있는 교육활동으로 학생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다.

실제 고현초와 도마초 두학교는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사실 그동안 학생수가 적어 체육대회나 음악회 등 교과외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학생들 사회성 발달도 은근히 걱정됐다.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부터 학생수가 늘어나 작은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뿐 아니다. 이들 학교는 귀농 귀촌한 전직 교수들이 지도하는 멘토링 교육을 비롯해 생태학습, 해외진로탐방, 출판 등 도시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입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전학 문의가 쏟아졌다. 하루 7~8개 가정에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에는 자녀가 13명인 전국 최다 가족에 고현초로 전학을 왔다. 자녀 다섯을 둔 가족도 이곳으로 이주했다.

백 교장과 인터뷰를 하던 중 학부모 2명이 또 교장실로 들어왔다. 오늘 전입신고를 마치고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자녀들은 이번 달부터 고현초와 병설유치원에 보낸다. 전학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학부모 안 모씨(40)는 학교측이 기획한 해외 진로탐방을 특히 마음에 들어했다. 해외 진로탐방은 학생들이 스스로 모든 계획과 일정을 짜고 실제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하는 프로그램. 도시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프로그램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이주한 친구 신모씨(40)는 학생들이 책을 출판하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말했다. “어린학생들에게 벅찬 일이겠지만 성공하고 나면 그 성취감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이같은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몇 달동안 백교장과 정교장은 마음고생도 심했다. “출세하려 쇼한다”는 비아냥부터 “어차피 묻닫을 학교인데 왜 야단법석을 피우냐”는 핀잔도 들었다. '그래 봐야 안 된다'라는 패배주의도 그들을 힘들게 했다.

고현초와 도마초는 작은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나은 교육활동을 위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한마음 체육대회.
고현초와 도마초는 작은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나은 교육활동을 위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한마음 체육대회.

◇ 멀리서 찾아온 학생들 행복하고 멋진 교육으로 꼭 보답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어려운 순간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을 믿고 따라준 교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이 고장 출신 유명인사들이 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 것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지난 7월 남해 일대에서 열린 학교살리기 홍보 켐페인에는 하영제 국회의원, 김두관 국회의원, 하윤수 한국교총회장, 장충남 남해군수, 이주홍 군의회 의장, 안진수 남해교육장, 류경원 경남도의원, 군의원과 동창회 및 지역주민 5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캠페인에서 “전원생활과 아이교육이 행복한 고현면으로 오라”고 호소했다. 정 교장은 “그날 어린 학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함께 학교를 살리자고 외쳤던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하는 동안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또 전학 문의다. 정 교장은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 “우리를 믿고 먼 길을 찾아온 분들한테 실망 시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솔직히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멋지게 성공해 작은학교가 얼마나 행복한지 꼭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마음을 열고 학교살리기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마을 주민들이 제일 고맙다”는 백 교장은 “으뜸 교육과정, 최상의 교육복지, 좋은 교육환경으로 남해 푸른파도처럼 건강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마을, 아담하고 예쁜학교. 교문을 나서는 순간 늦가을 바람에 교정의 나뭇잎이 흔들렸다. 남해 바다가 인어의 비늘처럼 반짝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