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나는 2021년이 두렵다.
[한희정 칼럼] 나는 2021년이 두렵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0.29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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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길이 이제 익숙해져 버렸다. 울긋불긋 단풍 든 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우리반 아이들 얼굴 한 번도 제대로 못보고 반팔 옷을 꺼내 입는구나,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했던 지난 봄날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낯설던 마스크와 거리 두기 생활이 이제 아홉 달을 다 채워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1학기는 끝도 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벅찼다면, 학년 말이 다가올수록 내년을 예측하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두려움은 현재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4월 온라인 개학을 하고 처음 낯선 세계에 들어섰을 때는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긴장했다. 혹시나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우리 아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촉각을 세우고 살폈다.

5월 중순 이후로 등교가 시작되면서 온라인 학습에 대한 호기심도 떨어지고 긴장도도 떨어져서 참여를 계속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익숙함은 느슨함을 가져온다는 그 당연함이 온라인 학습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1학기를 마칠 때 우리 교실은 등교가 없는 날이면, 두세 명씩 학교에 나와 개별지도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8월 말 개학 이후였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등교하지 않는 몇 주간은 ‘암흑기’였다. 줌으로 매일 1시간씩 실시간 수업을 하며 배운 내용을 정리해주고 오늘 학습 안내를 해도, 학습 진행을 확인하고, 안 하고 있으면 전화를 하고, 아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님께 연락을하고, 부모님들께 주간 학습 체크리스트를 매주 업데이트하면서 송달을 해도 안 되는 아이, 안 하는 아이는 계속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참여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참여의 질의 보장되지 않는 상태의 지속이었다. 그럼에도 2.5 단계 격상은 개별지도를 위해 학교로 부르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방역 수칙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한 부담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1학기에도 100% 온라인 학습으로 진행됐는데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낯선 것을 처음 접하면서 적응해 갈 때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얼마든지 요령을 피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은 동일한 맥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5주를 보내고 9월 말 등교를 한 이후 확인한 아이들의 학습상황은 염려했던 아이들에게는 매우 처참했다.

거의 모든 교과가 미학습 상태인 학생이 22명 중 4명이었다. 매일 같이 전화를 하고, 부모님께 통지를 했음에도 ‘전화로만 떠드는, 화면 상으로만 떠드는 교사’는 깨끗한 교과서를 채우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깨끗한 교과서를 채워가기 위한 씨름이 9월 말부터 지금까지 한 달 간 계속 되고 있다.

학습의 위계성이 분명하고 명료한 교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단원을 안하면 2단원을 할 수 없는 교과, 바로 수학이다. 미등교일에는 개별적으로 불러서 지도하고, 등교일에는 30분이라도 남아서 공부하고 가자고 했다. 물론 부모님의 동의는 필수다.

3학년 2학기 수학 1단원의 ‘두 자리수 곱하기 두 자리수’를 우리반 모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완료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러면 교과 진도는 어느새 나눗셈이 끝나 있다. 이제 그 아이들과 나눗셈으로 밀당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틈틈이 다른 교과의 미학습을 챙겨야 한다.

우리 반은 지난 6월 기초학력 진단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이라는 판정을 받은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2학년에서 배워야 할 최소한의 것들은 모두 학습하고 3학년에 진급한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들이 내년 4학년이 되었을 때 기초학력 미달이 있으면 안된다는 신념 같은 게 생겼다.

그리고 상상해 보았다. 내가 내년에도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2학년 때 충분히 익혔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이 예년보다 많다면, 미달의 정도 예년보다 심각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암담해진다.

학력 격차가 아니라 가정 돌봄 격차라고 했다. 8월 이후 암흑기동안 실제 학습하지 않았으면서 학습한 척하는 ‘겉학습’을 한 아이들은 모두 가정에서 잘 살피지 않는 경우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 중에 가정에서 잘 지원해주는 아이들은 해야 할 것을 잘 챙겨서 하고 있다. 학력 격차는 언제나 있었고 누구도 해소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학년에서 꼭 학습했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 비율이 어떤 추이를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온라인 학습 기간에 가정 내 돌봄과 지원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 당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지원해 주었나? 학교에 들어 왔다던 단순 노무직 방역 인력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고, 학습 지원 전문 인력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된 적도 없으면서, 2021년 상황을 예측하면서 ‘학급당 학생수’라도 획기적으로 줄여보자는 요구에 교육당국은 어떤 준비도,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21년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최선이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에게 최선의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데 매진하는 것이라면, 교육청과 교육부는 그런 교사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 정책 방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1학기에 잠시 감축되었던 공문은 이제 고삐 풀린 것처럼 학교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형편에 2021년이 두렵지 않은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이런 상황에 통하면 좋겠다. 온라인 학습을 위한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교수학습의 측면에서는 더 어렵고 힘든 2021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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