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학교급식을 탓하는가? .. 영양교사들 우울한 가을
[기자수첩] 누가 학교급식을 탓하는가? .. 영양교사들 우울한 가을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0.18 22:50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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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프레스 장재훈 기자] 한 영양교사가 부모상을 당했다. 비통한 순간, 그는 어두컴컴한 장례식장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며 전화를 했다. 내일 학생들이 먹을 급식 식재료 주문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급식 걱정이 앞섰다. 영양교사들 사이에 속설처럼 내려온 오랜 이야기다.

'학교급식 운영평가'의 오해와 진실

지난 15일 국회교육위원회 서울, 경기, 인천교육청 국정감사. 단골메뉴처럼 학교급식문제가 또 제기됐다. 이번엔 학교급식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한 의원은 “위생문제가 불거지고 급식납품업체로부터 상품권을 받은 사례가 적발됐는데 학교급식 운영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은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엉터리 급식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핀트가 빗나갔다. 현행 학교급식 운영평가 항목을 보면 급식 영양관리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등 절차상 하자는 없는지, 수익자부담 경비 운영의 부적정 사례는 없는지 등 말 그대로 운영 실태를 점검한다.

상품권을 받았는지 여부가 평가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별개의 사안을 엮어 마치 전체 학교급식 운영평가가 부실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억지춘향식 망신주기 국감의 잘못된 관행이 재연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K-방역급식’ 영양교사들, 그들도 ‘숨은 영웅’ 이었다

사실 코로나 19로 학교교육이 전대미문의 비상체제로 운영되면서 영양교사들은 ‘K-방역급식’에 전력을 투구했다. 남모를 고충도 많았다. 학사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식재료 조달에 어려움이 컸다.

1~2주단위로 등교와 원격이 오락가락하고 등교 기준이 달라져 급식준비로 밤새운 적도 여러 날이다. 식재료 납품이 중단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등교 인원이 적어 식재료를 소량주문하자 이번엔 당일배송이 어렵다며 애를 태웠다. 어쩔수 없이 2~4일에 한 번씩 식재료가 들어왔다. 영양교사들의 위생 관리부담은 배가됐다. 

이뿐 아니다. 학생들 등교 인원이 들쑥날쑥하는 바람에 식재료 발주부터 식사량 및 균형있는 식단을 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급식업무를 도와주던 어르신들이 학교에 나오질 못해  급식 종사자들과 함께 직접 식판을 들고 교실까지 날랐다. 교실이 급식실 기능을 하다보니 책상소독까지 맡기도 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영양교사들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었다. 코로나 19에도 불구,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 더 정성을 쏟았다.

원격수업에 애쓰는 동료교사들에게도 교육과정을 차질 없이 운영할 수 있게 뒷받침했다.

그래서 학교는 온라인이었지만 급식실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러기를 7개월, 극심한 피로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그들을 짓눌렀다.   

불시 현장점검에 ‘학교 자체 영양량’ 평가 나선 서울교육청
 
영양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내 한 교육지원청은 각급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급식위생 및 안전점검을 위해 올 연말까지 불시 현장점검 하겠다고 통보했다. 현장점검은 전체 학교의 70%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교육부가 코로나 19에 따른 학교급식의 어려움을 인정, 학교급식 운영평가를 학교 자체평가로 변경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무시한채 현장점검을 강행했다. 부산시교육청이 코로나 19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 급식 운영평가를 학교자체 조사에 맡긴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급식 현장점검에서 일부 학교가 ‘학교 자체 영양량’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평가 기준이 되는 학교자체 영양량은 전교생이 동시에 등교급식을 실시할 때를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지금처럼 1/3~2/3의 등교 원칙에 따라 하루하루 유동적인 상황에서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각종 영양소 비율을 교육부 기준에 정확하게 맞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전직 초등교장 A 씨는 “1/3등교 및 돌봄급식 등 소규모 학생수에 비해 급식 제공량이 훨씬 많은 교직원 중심으로 급식이 제공됐는데 이제와서 전교생으로 산출된 영양량을 기준 삼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갑작스런 등교일정 번복으로 우유공급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으나 학교급식 운영평가에서 ‘칼슘 영양기준량’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 역시 적절한 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현장 외면한 행정편의주의 관료행정 .. “K-에듀 멀었다” 

전시나 다름없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한국교육이 안정을 찾고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사들의 공이 절대적이다. 행정은 갈팡질팡 했지만 학교는 든든하게 버텨냈다.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앞다퉈 교사들을 숨은 영웅으로 치켜세우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육당국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교원평가마저 올해 유예한 것은 그만큼 특수한 상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학교 현장의 현실과 의견을 무시한 채 평가를 강행하는 서울시교육청 처사는 납득하기 힘들다. 

한 영양교사는 “지난 수개월 동안 모든 교사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한뒤 “영양교사들도 계속되는 비상근무에 지칠 대로 지쳤다” 면서 “(영양교사들을)다독이지는 못할망정 앞장서 다그치는 교육당국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9일부터 본격적인 등교수업이 실시된다. 이번에도 교육과 방역을 모두 지켜낼 것인가에 전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안전한 학교급식은 교육과 방역의 가장 기초가 된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관료적 행정주의에서 벗어야 한다는 점을 첫손에 꼽는다. 행정편의주의와 관료적 잣대를 버리는 것이 ‘K-에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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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 2023-05-18 13:14:38
열심히 급식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경신 2020-10-21 03:58:36
이름 아침애 출근해서 검수부터 시작해서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업무를 해도, 귀가해서 또 업무를 해야지만 겨우 겨우 밀리지 않고 급식 원활히 이루어지는 현실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데, 그래도 우리의 숨은 노고를 짚어준 기사를 보고 힘을 내봅니다. 고요한 새벽인 지금도 저는 교육행정망 나이스를 켜 놓고 급식 관련 업무를 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힘이 들고 지치긴 하지만,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건강을 이루는 중요한 축인 학교 급식을 책임지고 저의 직무의 중요성과 무게감을 느끼며 묵묵히 오늘 하루 시작합니다.~

돈터치미 2020-10-20 14:02:35
윗선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매번 바뀔때마다 퇴근도못하고 이번에는 애들을 또 누구한테 맡겨놓고 일하나..걱정반 눈물반 한숨반으로 일합니다. 내자식은 코로나 2.5단계, 2단계던 무조건 보육시설에 맡겨놓고 재택도 못하게 시스템을 만들어놔서 출근해야하는 현실..영양쌤들 자식은 코로나 걸려도 상관없다는건가요? 일반교사들만 위대한 존재인가요? 윗선에서는 면상에다 대놓고 '더러워서 밥못먹겠다'라는 말까지하는데..우리는 그런말까지 들어가면서 웃으며 일해야하는건가요?
아직도 영양쌤들을 식당아줌마라고 생각하는 분들 너무 많은것같습니다. 아이들 교육전에 교육자의 인성부터 고쳤으면좋겠습니다. 기자님 이런글 써주셔서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위로가 됩니다 ㅠㅜ

최종연 2020-10-20 08:37:40
울컥 하네요. 모두 모두 칭찬합니다.~^^

예솜 2020-10-19 22:07:25
기자님 기사 진짜 공감가게 잘쓰셨네요.학교에서 코로나를 이겨낸건 현장에서 뛰는 교사들 덕분이었다는말이 위로가되네요. 영양교사들은 유독더 힘들었는데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진짜 안쓰럽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