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 눈] ‘신분사회 시녀’로 전락한 명문대들의 공정성 코스프레
[에듀프레스 눈] ‘신분사회 시녀’로 전락한 명문대들의 공정성 코스프레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10.1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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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교감

올해도 본격적인 대학입시철이 다가왔다. 매년 이때쯤이면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위한 몸부림이 거세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올인하게 된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미 진학상담으로 교무실과 진학지도실은 연일 북적거렸고 교무실과 특별실은 자기소개서 작성으로 안광(眼光)이 PC나 노트북 컴퓨터 화면보다 밝게 빛나며 교실에서는 마무리 수능시험 준비에 수험생의 숨 넘어 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진학지도 교사들의 표정에서는 수확을 앞두고 마치 신의 마지막 터치에서 풍년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신앙인처럼 간절함마저 묻어난다.

매년 이런 과정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교육 현장은 교육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의 교육임은 널리 알려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입시 방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입시 제도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만드는 온상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매년 똑 같은 과정을 연출하며 숨죽이는 삶을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 모두가 희생이 된 채로 삶을 지배당하고 있다.

최근에 이른바 대입 공정성을 강조한 수능 전형 40% 상향 정책도 단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그 허상(虛像)은 순진함과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시 교육부 수장은 올해의 국감에서 대학입시의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수능 중심 정시전형을 확대한 게 골자다. 이러한 계기는 전직 법무부장관 가족의 입시부정 논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입 전형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수능은 고소득 계층에 언제나 더 유리했다. 여러 가지가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나마 저소득층에 가장 유리한 것은 내신 전형이다. 그마저도 약간 유리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현행 대학 입시 제도는 어떤 경우에도 소득 계층이 높은 가정 출신의 학생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소위 SKY 대학을 위시한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은 상위 소득 계층의 학생이 저소득층 학생보다 3~4배가 더 많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면 중고등교육은 쉽게 바뀔 수 있다. 지금의 입시 방법은 간단하게 학력점수로만 선발하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든다. 그러나 입시 방법을 바꾸려면 대학의 학생선발 과정에서 점수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인성이나 자질, 체력 등을 계량화하는 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다행히 입학사정관제가 보완을 하고 있으나 그것도 부작용이 많다. 교육이 바로 서려면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의 대학 입시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우리의 대학 입시 전형도 한때 3,000가지가 넘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늬만 다양하지 사실은 성적 위주로 선발하는 관계로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선진국은 우리와는 달리 성적 위주로만 하지 않고 학생의 활동이나 인간성, 그리고 가치관과 사회성까지 평가해서 반영한다. 그래서 선발 과정에서 면접의 중요도가 매우 높다.

물론 우리 대학도 이를 반영해 시행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제도를 모방해 일부 시늉만 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본질적 실상은 내면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선발 과정도 교육부의 간섭으로 대학 주관의 특성이 약하다.

대학 당국은 너무 이에 편승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 우리가 대학에 기대하는 것은 타고난 격차를 메워주고 잡아당겨 끌어올려 주는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위 명문대학은 계층을 재생산하는 ‘신분사회의 시녀’같은 역할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즉, 대학 스스로 이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실에서 우리의 고등학교가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을 게을리 하는 것은 대학에서 그렇게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선발 과정에서 건강과 체력을 평가 한다면 열심히 운동을 시킬 것이고 인성을 평가한다면 인성교육에 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자세와 발표력을 평가한다면 그것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 입시 방법은 지식 평가에만 집중할 뿐 지혜는 살피지 않는다. 그래서 컴퓨터로 산출된 성적만으로 입학을 결정하는 원시적인 방법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선진국의 대학들은 입학생을 선발하는 데 많은 인력과 자금과 노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대학 전형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에 비해 우리의 대학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학생, 즉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서 키우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입학 전형료는 입시와 관계없는 교직원들에게 수당으로 나가거나 건물을 짓는데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에 매년 입시철이 지나면 대학 공간 내 어디선가는 건물이 한 동씩 올라가기도 했다.

이제 대학은 국가의 장래와 교육발전을 위해서 올바른 입시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교육부가 돈줄을 쥐고 리드하는 정책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주도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람 장사’한다는 불명예스런 비난은 사전에 차단하고 또 과거 그러한 낡은 의식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진정으로 청소년과 국가를 살리는 정책이 주가 되어야 한다. 인성이 어떻든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의식은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여 대학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인재 양성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학 입시 제도의 개혁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열쇄를 쥐고 있다. 우리의 대학입시 제도는 언제까지 ‘공정성 코스프레’를 벌이며 어물쩍 넘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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