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우리도 랜선 회식 해 볼까?
[송은주의 사이다 톡] 우리도 랜선 회식 해 볼까?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9.2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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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교육칼럼니스트

2년 동안 동학년을 하고 9년 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모임이 있다. 7명이 함께 하는 이 모임은 필자를 기준으로 7년 선배부터 16년 선배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되어있다. 각자 서울, 경기의 서로 다른 지역, 학교로 흩어진 후에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이어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임을 못 한 지 반년이 넘었다.

학년 부장이셨던 선배 선생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얼굴 본 지 너무 오래 됐는데 우리도 랜선 회식 한번 해 볼까?” 하셨다. 랜선 회식이 뭔고 하니, 말 그대로 랜선(온라인)으로 하는 회식이다. 온라인으로 어떻게 회식을 해?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요즘 많은 직장인이 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회식이라고 한다.

먼저 각자 자기 집에서 음식을 주문한다. 준비된 음식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같은 시간에 줌으로 만나 각자 먹으며 대화를 하는 것이 바로 랜선 회식이다. 회비가 있으면 총무가 회비로 치킨 기프티콘 등 음식 교환권을 회원들에게 보내준다. 그걸로 각자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들고 온라인으로 만난다. 각자 자기 돈으로 알아서 주문하면 더치페이 또는 각출이다.

말로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뭐야, 그게 무슨 회식이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랜선 회식 해보자는 말씀을 들었을 때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모임 구성원인 선배 선생님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아우, 그게 뭐야~”하면서도 재밌다고 각자 치킨 닭다리를 붙잡고 컴퓨터 앞에 앉을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못 만나 밀린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을 모습이 그려진다. 다섯 살부터 대학생까지 각자 자녀들이 있으니 아이는 재우고, 깨어있는 가족에게도 일정 부분 음식을 떼어주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우리만의 온라인 공간으로 입장하겠지.

그렇게라도 해서 선생님들과의 대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흔히들 대학 친구는 초·중·고 때 친구들과 다르다며 초·중·고 시절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나에게 이 모임의 선생님들은 사회인이 된 후 만난 사람 중에도 초·중·고 시절 친구들 같은 그리움과 편안함을 준다. 지금 각자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어떤 갈등이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든지 간에 눈치를 보거나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학년이었을 때 그랬듯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인데,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그런 감정까지 나누려면 마음의 장벽이 상당히 낮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 3년을 함께 했던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각자 다른 학년, 다른 학교로 흩어지고 나는 새로운 동학년을 만났다. 새 동학년에는 첫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가 있었다. 4년의 경력 차이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았다. 1년 차부터 34년 차까지 함께 했던 동학년에서 나는 그 신규교사에게 경력 차가 가장 적은 선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처음 한 번 빼고는 둘이서 밥을 먹은 적도, 솔직하게 내면의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나는 그 신규교사가 자기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배라고 생각했고, 그 학급의 학습 활동 결과물이나 환경 미화 자료 중에 관심가는 것이 있어도 같이 하자고 먼저 말 꺼내기가 어려웠다.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거나, 사담을 나누어도 형식적인 정도에 그쳤다. 나는 스스로 후배의 성향을 배려하는 선배라고 믿었다.

그리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작년 이맘때, 몇 년 만에 그 후배교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후배는 어느덧 1정 연수를 앞둔 교사가 되어있었다. 같이 걷다 보니 몇 년 전 동학년을 했던 시간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후배교사는 학년이 달라진 후에도 선배 선생님들의 애정과 배려를 받는 필자가 좋아 보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 하고 은근한 충격이 왔다. 나는 후배가 간섭으로 느낄까 봐 적당한 선을 지키고 배려하는 선배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뿐, 후배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거나 먼저 도움을 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다가감을 후배가 부담스러워할 거라는 결론을 나 혼자 내렸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때 왜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는지, 후배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동학년이 바뀐 후에도 선배 선생님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선배들에게 솔직하게 행동했다가 마찰도 있어 보고, 울어도 보고, 위로도 받고, 서로 진심을 느껴가며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었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은 말 그대로 ‘지지고 볶은’ 결과였다.

그런데 후배와는 ‘서로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동료로서 마음을 나눌 소중한 시간을 둘 사이의 강물 흘려보내듯 놓치고 말았나 보다.

온라인 수업과 과제 관리에 바쁠수록 마음을 위로받고 노하우를 나눌 동료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회식을 싫어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어떤 형태의 회식이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좋은 사람들과 소속감을 느끼며 위안받는 자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력 차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사실은 관심과 간섭 사이의 균형이 어려운 게 아닐까. 우리가 맺었던 관계에서 우리의 마음은 서로에게 얼마나 열려 있었을까.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위해 마음과 노력을 쏟을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었을까.

코로나에도 가을은 왔다. 온라인으로든 오프라인으로든 함께 해줄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시간, 우리도 랜선 회식을 해보자고 말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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