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자기 맥락 속에 갇힌 이들을 위한 변명
[한희정 칼럼] 자기 맥락 속에 갇힌 이들을 위한 변명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9.19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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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 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2020년 9월 17일, 지난 4월에 만들어 놓고 방치해 두었던 구글 클래스룸을 열어본다. “배우고 나누며 참삶을 가꾸는 3학년 6반”이라는 문구와 함께 교실 전면을 찍은 배경화면이 선명하다. 4월 16일 게시물을 끝으로 누구도 찾지 않는 빈방이 되어버린 온라인 교실은 오늘의 우리 교실과 너무 똑같아 울컥한다.

우리학교는 “위두랑”을 학교의 기본 플랫폼으로 정하고 교육부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인 4월 1일부터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가장 부담이 적을 거 같은 플랫폼으로, 저학년을 배려해서 정한 것이다. 학년마다 플랫폼이 다를 경우 다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거 같아서 플랫폼을 통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 클래스룸”을 만든 이유는 4월 16일을 전후로 교육부가 준비한 플랫폼인 위두랑, 이학습터, 온라인클래스가 접속이 안되고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거의 매일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정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저 모양이니,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싶어서 시도해본 것이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위두랑을 버리고, 다시 구글 클래스룸으로 갈아타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학생용 구글 계정을 만들어주고, 초대를 하고,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교사가 사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이 일을 한 달에 두 번 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두 번을 못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라면 교사의 삶이 참 비루해진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 학생마다 단말기가 다 다르다는 건 매우 비효율적 노동을 강제한다. 스마트폰이나 패드가 IOS인지, 안드로이드인지에 따라 다르고, 노트북이 Mac이나 윈도우냐에 따라 다르다. 못하겠다는 아이를 학교로 불러서 가르쳐주고 싶어도 학교에 무선인터넷이 되지 않아 전화통을 붙잡고 ‘이렇게 해 봐, 저렇게 해 봐’ 해야 했던 게 당시의 상황이었다.

구글 클래스룸으로 이사는 성사되지 않았다. 위두랑 접속이 안된다는 민원과 항의에 지쳤고, 그럴 때마다 수업자료 링크 주소를 문자로 발송하며 안내를 하다가 하루를 다 보냈기 때문이다. 학교 전체가 옮기는 건 어려울 거라는 짐작, 그 ‘짓’을 또 해야 한다는 부담,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갈 것인가에 대한 합의되지 않은 믿음 같은 것도 작용했다.

그렇게 구글 프레젠테이션을 기본으로, 필요한 설명 동영상과 안내 등을 넣은 수업자료를 매일 만들어 올리기 바빴다. 새로운 플랫폼이나 프로그램을 추천받아 배우고, 강제로 유튜버가 되고, 부족한 장비를 자비로 구입하며, 자발적 초과근무는 기본이었다.

그리고 상실감이 몰려왔다. 노동 강도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고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왜 효과는 보이지 않는가? 그 즈음,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 사태가 터졌다. 그때야 깨달았다. ‘아니, 학교는 아이들 못오게 꽁꽁 걸어두고 클럽도, 유흥주점도, 노래방도, 학원도, 기숙학원도 모두 문을 열고 있었던 거야?’

집에만 있는 지루함에 몸을 비틀어대는 우리집 아이들을 보는 것도 괴롭고, 학교 가고 싶다고 댓글을 달다가 지쳤는지, “내일 위두랑에서 만나요”라고 댓글을 달기 시작하는 우리반 아이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 사회의 경제 유지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놀아도 괜찮았던 것이다.

심각한 배신감이 들었다. ‘학생들은 무증상 감염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조부모 등을 감염시키면 중증환자가가 증가하고 그러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전했던 교육부 담당자의 말이 떠올라 씁쓸했다. 거꾸로 아닌가? 조부모가 도리어 아이들을 감염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방학이 되었고, 2학기에는 더 많이 등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지긋지긋한 수업 만들기, 댓글 체크하고 안했으면 연락하기 같은 일들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산산조각 나고 전면 원격수업이 선포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원격수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담임교사 전화 한 번 받지 못했다.”

“교사들이 편하게 유튜브 링크만 걸어놓고 월급 받는다”

“사립은 초기부터 실시간 하는데 공립은 아무 것도 안한다.”

한 학기가 지나도록 담임교사 전화 한 번 받지 못했다면, 교사들이 편하게 유튜브 링크만 걸어놓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면 학교,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시길 바란다. 그런 신고가 들어오면 교육청은 실태조사를 하면 된다. 사립초와 공립초를 비교하는 분들은 사립학교로 보내시면 된다. 공립에서 실시간이 안되었던 이유는 열 가지도 넘는다. 가장 큰 이유는 가정환경의 격차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에 묻는다. 실시간 화상수업과 쌍방향 소통, 피드백을 지원하기 위해서 지난 6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가? 교육부가 만들어놓은 플랫폼에는 아무리 댓글을 달아도 실시간 알림은 물론, 후시간 알림도 뜨지 않는 구질구질한 플랫폼에서 무엇을 개선했는가? 실시간 화상수업을 강제하면서 어떤 플랫폼을 준비해주었는가? 교사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기자재가 얼마나 구비되어있는지 실태조사는 제대로 했는가? 학생용 단말기가 통일되지 않아서 겪고 있는 현장의 고충을 이해는 하고 있는가?

1/3이하 등교라는 방역지침 안에서 학생들이 더 많이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했는가? 30명 이상 과밀학급을 분반해서 홀짝반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주었는가? 2부제 수업이 가능하도록 기간제 교사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는가? 1미터 거리두기라는 지침을 완화해주길 했는가?

조·종례 방식은 물론 내용까지 정해주는 교육부의 보도자료는 전국의 모든 학교 교사들을 지금까지 조·종례도 하지 않고 출석 체크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 실시간은 못하더라도, 문자, 카톡, 밴드, 클래스팅 등으로 출결확인을 안한 학급이 얼마나 있는가? 에듀로 시스템으로 해왔던 자가진단 참여율은 얼마나 되는가? 그게 그냥 공짜로 된 것인가? 담임들이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독려 문자 보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든 변명이 ‘교사’의 맥락에 갇혀서 하는 변명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렇게 사회적 여론이라는 명분으로 돌아다니는 많은 썰들도 결국 ‘그들의 맥락’에 갇힌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과 교사들의 맥락에 갇힌 변명도 들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맥락을 추가한다면 나는 위에 적었던 내용들을 수도 없이 공식적, 비공식적 루트로 교육청과 교육부에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고. 그러나 실현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자가진단 앱’을 개발해 준 것 외에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지 말고 ‘할 일’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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