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장 편지] 학습격차-심리방역 위험 수위 .. 교사가 험한 세상 다리가 되길
[교육장 편지] 학습격차-심리방역 위험 수위 .. 교사가 험한 세상 다리가 되길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9.04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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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호규 서울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조호규 서울북부교육장
조호규 서울북부교육장

학교 민주주의와 교사 자율성

학교 민주주의와 학교 자치, 교사 자율성은 등치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앞의 두 개념은 교사 자율성을 내포하면서 키우는 개념이다. 학교 민주주의와 학교 자치가 완성의 모습을 갖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지금 다양하게 논의 중이지만 현실은 아득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가 갖는 자율성의 크기는 예전보다 많이 커졌다.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 학교 업무 정상화, 권한 위임 등에 의해서다. 학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율성이 주어지고 있는 실제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 정도라면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교사 자율성의 구현체는 민주적 학교다. 민주적 학교라면 어느 정도는 교사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교사들이 여유(room)가 생겼을 때 –토론하고 협의할 물리적․심리적 시간 등– 교사 본연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학교의 교육 활동을 자신들이 고민하고 협의하여 결정하는 민주적 공동체 운영이다. 이 민주적 공동체 운영의 핵심은 바로 토론과 협의가 있는 공동체 운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주요 교육정책 및 교육 활동과 관련한 당면 교육 현안과 교사의 요구가 대체로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교육 활동 결정에서 교사는 소외되어 왔다.

교사들은 상부에서 내려오는 정책을 마지못해 수행할 수밖에 없는 기능적 행정인 정도에 머무른지 오래다. 교사들은 기계적 선택만을 하게 되고 그들의 지적 능력 발현은 제약되었고 변화를 밀고 갈 힘인 마음 근육은 소진되었다. “교사들의 무기력과 편의주의는 상당히 심각한 정도”다. 교사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에 걸맞은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지 않을까 싶다.

이는 어제와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진보교육감 이후 많이 개선되었다. 아직은 좀 더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이에 조희연 교육감은 이런 미 완성의 교사 자율성과 학교 자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민주적 학교 운영 혁신을 학교 변화의 중요한 운영 방향으로 잡고 열심히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에 대한 호명(呼名)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상대적이다. 민주주의는 상호성이 기본 전제로 깔려있다. 나만의 완고한 유아독존은 민주주의의 전제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상호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호 인정은 개인의 자존감을 고양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따라서 학교든 기업이든 어느 조직이든 그것의 민주적인 운영은 개인들의 자발성을 촉진하여 조직을 에너지가 넘치도록 만든다. 한편 민주주의는 상호성에 의해 성숙된다.

민주주의에는 다수의 집단지성 구현과 상호 존중이 넘쳐야 한다. 또 민주적 학교는 교사 개개인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적극 용인하는 학교다.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 자율적 자기 결정권을 부여하고 그에 부응하는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민주적 학교 운영이 조직원의 자존감을 높이고 에너지를 많이 생기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적․합의적 진리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는 어떤가? 이런 긍정적인 것을 모두 잘 구현하고 있는가?

한편 민주주의에는 상호 인정을 위한 나름의 투쟁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잘 구현되는 현장은 인정 투쟁의 현장이라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인정을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헤겔은 “역사 발전을 인정투쟁의 과정”이라 했다.

그런데 “인정투쟁”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갈등이 생긴다. 학교 사회에 이런 갈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전면 원격수업 전환 국면에서 교사의 재택근무를 놓고 구성원 간의 갈등이 많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학교 민주주의와 교사 자율성이 초래하는 현실적인 부정적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 현상은 교사들의 자율성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집단적 책임감 부족을 걱정”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교사 자율성과 “집단적 책임감”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그 성원에게는 누구든 일정한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이 주어진다. 교사라고 별반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영혼을 다루는 직업이 교사직인지라 다른 직종보다는 그것이 갖는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감은 크다.

교사는 지식인으로 자기 지시적이고 자기 규제적인 특성을 가지므로 외부적 동인(incentive)에 의한 “외부적 책무성” 보다는 교사 본질에 내재된 동인(incentive)에 따른 “집단적 책임감”에 더 친화성을 갖는다고 한다.

더우기 일반적인 조직 구성원의 단순한 역할에도 책임이 따르는데 지식인에게 따르는 책임감은 더 크고 무겁다는 것은 상식(common sense)이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진보교육감 이후 어느 정도 자율성이 주어진 상태에서야 책임감은 논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자율에 다른 책임”이라는 흔한 말은 식상할 정도다.

교사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지나쳐서-교장, 교감, 교사의 기능과 역할에 따른 한계 짓기가 잘 안되어서-학교 문화가 과잉 자율화의 행태로 기우는 경우도 있다. 또한 민주성에 의거한 교사 다수의 자율성의 고양이 명분상으로는 그러하나 실제로는 다수의 질 낮은 독선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의 학교 현실이 일정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 국면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듣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 19 상황에서 교사 개개인의 학교생활과 학교 단위의 많은 의사 결정이 아이들의 이익과 교육의 공공성에 다소 어긋나는 것은 없었는지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교사 자율성과 “집단적 책임감”의 제도적 확보와 나아가 문화적 정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그나마 당위적이면서 현실적인 위력적 방법은 (가칭)민주적 학교 운영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교장 선생님, 선생님의 자존감과 열정이 살아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내용과 교장․교감 선생님, 선생님의 집단적 책임감을 담을 수 있는 강령적인 교원 윤리 규범을 모두 담은 것이다. 학교의 민주적 운영과 윤리장전이랄까? 이렇게 명명해도 좋다.

이를 조례로든 교육청 정책으로든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의 “민주적 학교 운영 조례”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교사 자율성과 교사의 집단적 책임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우리 선생님들 다수가 코로나 19 위기라는 험난한 강을 잘 건너고 있다. 지금도 많이 힘들지만 좀 더 힘을 내어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게 학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기를 바란다.

학습 격차 해소와 아이들의 건강한 마음 근육을 기르는데 학교 교육의 본질적인 주체인 선생님들이 나서야 한다. 예비교사 멘토링, 지역사회 인적 자원의 힘을 빌리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나서는 것이 더 급선무고 이게 더 아름답다.

학습 격차 해소와 건강한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교육(지원)청과 교장 선생님, 선생님들이 힘을 모아서 나서자. 학교 자율성의 틀 속에서 학교별 최소한의 계획을 세워서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잘 보듬자.

가능하다면 교육부, 교육청과 모든 교원 단체들이 힘을 모으는 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학부모님들이 안심하고 학교 교장․교감 선생님, 선생님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가칭)코로나 19! 학력 격차 및 심리 방역을 위한 교육 공동체 선언!“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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