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 추억을 담은 교실
[송재범의 교육해체] 추억을 담은 교실
  • 에듀프레스
  • 승인 2020.08.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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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재 범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수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수원장

시골 고향에 갔다가 갑자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 그렇게 거대했던 교정의 모습이 왜 이리 작게 보이는지... 학교 울타리에 바짝 달라붙어 내가 공부하던 교실을 그냥 뚫어지게 십여 분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공부하고 친구들과 떠들면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공간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개축되지 않고 옛날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

졸업식 노래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라는 가사처럼, 정말 교실에 정이 들었나보다. 그 정 때문에 이렇게 일부러 학교를 들러보기도 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생들에게 교실은 어떤 공간일까? 요즘 애들도 나처럼 교실에 정이 들까? 먼 훗날 초등학교 때의 교실이 그리워 찾아보려는 마음이 생길까? 과연 우리에게 학교 교실이란 어떤 의미일까?

교실 공간 재구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교육부의 「학교공간혁신사업」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이, 학교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꿈담교실(꿈을 담은 교실) 사업이 대표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6월 미담학교(미래를 담는 학교) 추진을 정부에 제안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여 교육부에서는 지난 7월 한국판 뉴딜의 대표 과제로 ‘그린 스마트 스쿨’ 사업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학교 공간 중에서 당연히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교실이다. 교실은 기본적으로 학습 공간이다. 따라서 교실 공간의 재구조화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게 할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교실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을 넘어 학생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유형으로 교실의 구조가 설계되어야 할까?

애플의 교육 담당 부사장으로 디지털 네이티브를 위한 새로운 교육학을 주장하고 있는 존 카우치(John D. Couch)는 제이슨 타운(Jason Towne)과 공동 집필한 《Rewiring Education》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학습 공간의 설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껏 전 세계 수백여 개 학교와 교실을 둘러봤는데, 그 물리적 공간 대부분이 얼마나 구식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지 놀랍기만 하다. …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참여하고 어울리고 공유하고 자기 삶과 관련된 것들을 만들어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용 학습 환경에 접근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든 학습 공간과 디지털 학습 공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카우치는 교실에서 연출될 수 있는 학습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의 학습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1) 모닥불형 학습 공간(The Campfire) <일 대 다수 교육>

모닥불형은 보통 한 사람이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일 대 다 모델이다.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최적의 장소 가운데 하나는 모닥불 주변이었다.

일 대 다 모델은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학습 공간 형태다. 일 대 다 모델은 제대로 되면 효과가 좋지만, 유감스럽게도 대개는 그렇지가 않다.

실제 모닥불의 물리적 속성과 비슷하게 설계된 교실 환경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사적인 질문을 이용하면, 그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책상을 줄 맞춰 놓기보다 원 모양으로 놓으면 사회적 강화가 일어나고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전통적인 방식을 교사 한 사람 중심의 일방적 교실이라고 쉽게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의 회로를 바꾼다는 건 일 대 다 교수법 같은 전통 방식을 무조건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전통 방식을 학생들이 졸기보다는 참여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한다는 뜻이다.

2) 물웅덩이형 학습 공간(The Watering Hole) <다수 대 다수 교육>

모닥불형이 전문가 한 명이 다양한 학습자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라면, 물웅덩이형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개인 대 개인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는 공간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사람들이 만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는 다양한 공간을 생각해보자. 휴게실 같은 곳이 이런 장소였다.

물웅덩이형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배경, 관점, 일화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발상과 생각을 서로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일 대 다 모델에서 놓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학교 공간에서는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물웅덩이형 공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흔히 도서관 로비가 물웅덩이형 공간으로 이용되지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그런 것도 없고 도서관은 대화가 금지된 조용한 장소로 여겨진다. 물웅덩이형 공간과는 정반대다.

학교나 교실 환경에 곧바로 물웅덩이형 공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최적으로 설계된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와 교실은 의도적으로 학습자를 위한 물웅덩이형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거기서 학생들은 ①현재 수업에 관한 독자적인 결론을 공유하고 ②집단 기반 환경에서 발견하고 탐구하며 ③다른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이끌어내고 ④ 학습자이며 동시에 교사가 되며 ⑤기술을 적절하게 이용하도록 요구받는다.

3) 동굴형 학습 공간(The Cave) <일대일 교육>

동굴형 학습 공간에서 학습자는 혼자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고, 코딩을 하고, 조사하고, 검토하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다른 공간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동굴형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면서 이미 아는 것과 새로 얻은 정보를 통합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거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게 하기보다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과 접촉할 수 있게 해준다.

동굴형 공간이라고 해서 사방이 둘러싸여 있을 필요는 없다. 동굴형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때로 도서관에서 구석에 따로 떨어져 있는 책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개방적 동굴형 공간의 한 형태다. 이 자리는 대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차지하기 때문에 가장 얻기 어렵다.

이런 곳은 시끄러운 공적 세계에서 조용히 홀로 있는 느낌을 준다. 이런 공간에서 외부의 지식이던 정보는 내부의 이해로 전환된다.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동굴형 공간으로는 사람들이 혼자 앉아 있거나 걸을 수 있는 공원 또는 오솔길, 그리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해변 또는 호수가 포함될 수 있다. 이런 곳들은 학교와 교실을 설계할 때 직접 만들어 넣어야 하는 유형의 물리적 공간이다.

4) 산꼭대기형 학습 공간(The Mountaintop)

산꼭대기형 공간은 학습에 생기를 불어넣는 공간을 말한다. 산을 오르는 방법을 이해하고 산을 올라갈 능력을 기르려면, 실제로 올라가봐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산에 접근해야 한다. 산 자체가 어떤 주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최종적인 학습 공간이다. 산꼭대기형 학습 공간이란 실제로 산을 오르면서, 실제로 실행하면서 배우는 공간을 말한다.

산꼭대기형 학습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은 배움에 있어서의 피드백이다. 실행을 통한학습은 즉각적이면서 지속적인 피드백을 제공받는다. 이는 다른 학습 공간에는 없는,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산을 오르면서 우리가 산에 오르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산에 오를 수 있다면 학습은 성공한 것이다.

다른 교육 영역에서는 흔히 실수에 대해 비난하거나 심지어 처벌하는 것과 달리,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실수가 장려될 뿐만 아니라 요구되기도 한다. 학습에 관한 한 실수는 처벌받아야 할 잘못이 아니라 귀중한 피드백이자 기회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와 교실에서 직접 실행해보는 학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이 산을 오르도록 도와주는 산꼭대기형 공간, 말하자면 메이커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는 위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학습 유형이 더 좋은 것인가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아마도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과 학습 능력을 고려할 때, 네 가지 유형이 공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모닥불형 공간에서 이야기를 통해 학습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물웅덩이형 공간에서 친구들과 학습 내용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동굴형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용해 그 내용을 스스로 되새기고 음미해볼 수 있다.

그리고 산꼭대기형 공간에서의 실행을 통해 실제로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습 공간으로서의 교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꾸며졌으면 좋겠다. 공간혁신이라는 붐(boom)에 휘말려 어떤 특정 유형의 공간 형태가 강조되는 모습으로 전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괄적 배움터인 ‘학습공원(learning park)’의 개념이 적극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교실이 학습을 넘어 즐거웠던 삶의 장소로 기억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이 학습 시간이다.

그렇기에 학습 활동은 단순한 학습 과정이 아니나 삶의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학습 활동과 일상적인 삶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학습 활동이 곧 삶의 활동이기에 내 어린 시절의 삶을 담고 있는 교실이 먼 훗날 그리워지는 것이다.

혹시나 요즘 아이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자기가 공부했던 교실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히 교실을 학습 공간이라는 기능적 역할로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새롭게 구축되는 교실은 미래에는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될 것이다. 꿈담교실(꿈을 담은 교실)과 미담학교(미래를 담는 학교)도 좋지만, 학습의 효율성을 넘어 추억을 만들어지는 여백이 있는 교실이었으면 좋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추담교실(추억을 담은 교실)이라고 할까!

추담교실!

교실은 추억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정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행여나 지금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지날 때는 무심하면서도, 어느 학원 옆을 지날 때 ‘저기가 내가 다니던 학원인데!’라고 내뱉을까 걱정이다.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의 만남 장소가 시내의 어느 식당이 아닌, 추억을 담은 그 교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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