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그럼 네가 해봐”가 두려운 진짜 이유
[송은주의 사이다 톡] “그럼 네가 해봐”가 두려운 진짜 이유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7.04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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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S 기업, 40대인 선배는 2, 30대 직원들이 진취적이지 않아 걱정이다. 오늘 회의에서는 직원들을 좀 몰아붙여 보기로 했다. 회의 시간, 각자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에 몰린 2, 30대 직원들은 결국 입을 떼기 시작했다. 막상 직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니 좋은 아이디어가 너무 넘쳐난다. 그런데 오히려 선배의 표정은 안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생각들을 하면서 왜 말을 안하니, 먼저 제안할 수는 없니?”

직원들 중에 그나마 나이가 있어 중재자 역할을 하는 30대 직원이 대답한다.

“힘들잖아요. 제안하면 다 안고 가야 하는데.”

1년 전, 다큐멘터리에 나온 기업의 실제 회의 장면이다. 40대 간부급 직원들을 밀레니얼 세대인 2, 30대 직원과 50대 임원 사이에 ’낀 세대‘로 일컬으며,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외로운 세대로 재조명한 다큐였다.

실적이 중요한 기업에서조차 간부는 먼저 제안하거나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직원의 모습이 불만스럽고, 직원은 “그럼 네가 해봐”라고 돌아올 말이 무섭다. 다큐는 밀레니얼 세대와 선배 세대의 차이를 강조했지만, “그럼 네가 해봐”가 두렵지 않은 세대와 직장이 과연 있을까?

“그럼 네가 해봐”라는 말은 두 가지로 쓰일 수 있다. “지원해줄 테니 추진해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제안자가 책임져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고 부담스러운 책임만 남는다.

다큐 속 임원이 말했듯 ‘조직은 그런 걸 다 챙겨서 고려해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에 문제의 열쇠가 있다. ‘조직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고 친절하지 않다’는 말로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공감은 배제해버리는 것이다.

조직의 이름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하며 결과를 받아보기는 하지만 사실 조직이란 정확히 따져보면 실체가 없다. 조직이라는 결합체―회사라면 ‘법인’―가 존재한다고 믿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일을 하는 주체는 분명 한 사람 한 사람인데, ‘조직’이라는 추상적 주체로 바뀌면 일의 성격이 달라진다. 집단성, 익명성이 더해지고, 일을 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성은 제거되고 외면받는다.

어찌보면 조직이 효율적으로 굴러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책임 회피다.

학교라는 조직이 잘 굴러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굴까? 이 질문이 바로 회사와 학교의 차이를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조직이 잘 굴러가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학생이다. 물론 교사들도 행복하겠지만 교사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는 점에서 행복의 채널이 복합적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생을 생각하며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한다. 또 실적이 대부분 자기 실적으로 남는 회사와 달리, 학교는 실적이 남는 대상이 불분명하다. 교육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실천하는 곳이기에 실적이라고 할 만한 눈에 띄는 성과를 금방 만들어낼 수도 없는 특수 조직이다.

학교에서의 제안과 획기적인 발전이 더욱 쉽지 않은 이유다. ‘사명감이 중요한 일’이라는 명목까지 더해지면서 교사들에게 자발성 없는 희생과 헌신을 은근히 강요할 때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럼 네가 해봐”라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더욱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12년차 교사 B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관리자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관리자와 친해지면 일을 덤으로 받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관계를 빌어 개인적인 경로로 일이 얹어지는 경우가 잦았고, 일단 맡으면 주변의 지원도 관심도 없어 혼자서 끙끙댔던 시간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5년차 교사 K는 관리자나 부장교사들과 대화를 할 때는 차라리 사적인 대화가 편하다고 느낀다. 업무 이야기가 나오면 ‘그럼 이건 자기가 해볼래?’라고 은근슬쩍 밀어주어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일 이야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럼 네가 해봐”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게을러서도 아니고 일이 무조건 싫어서도 아니다. 교사가 할 일이 맞는지 의심가는 업무들이 산재한 상황에서, 남의 업무가 된 후에는 누구도 관심없는 일거리를 혼자 이고 지고 해야 할 상황이 버겁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 일이니 당신이 혼자 책임지고 하는 게 맞다’며 따뜻한 관심과 인간성이 배제된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 속에서 혼자 사투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몸사림’의 가장 큰 이유는 아닐까.

새로운 일을 제안하지 않고 본래 주어진 업무를 하기만 해도 책임을 무겁게 묻는다. 3월에 발령받은 신규교사 L은 등교개학을 앞두고 방역과 학생 관리에 대해 연수를 해준 보건교사에게 너무나 많은 질문이 쏟아져 보건교사가 당황하는 장면을 보며, ‘담당 업무라서 하는 것뿐인데 너무 혼자 다 짊어져야 하는 것 같아 안쓰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같이 고민하고 의논해서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텐데, 처음부터 담당자에게 모든 일을 혼자 파악하고 알아서 정답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상황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어떤 지원이 필요해? 내가 뭘 도와줄까?’라는 주변의 말 한마디만 있어도―모두가 바쁜 상황에서 설사 그게 말 뿐이고 진짜로 일을 나눠서 하지 않는다 해도―훨씬 덜 외로울 것 같다는 교사 K의 말도 씁쓸하게 남는다.

일을 맡은 후의 외로움은 세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관한 문제이다. 지원이란 물질적 행동적 지원만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책임이라는 공감,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정서적 지원도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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