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 민주주의의 정원, 누가 잘 가꾸나?
[송재범의 교육해체] 민주주의의 정원, 누가 잘 가꾸나?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7.01 23: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송재범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2020년 전반기가 지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코로나 상황이라는 비정상적 얼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비상 상황에서 21대 총선이 끝났다. 그 뜨거웠던 18세 선거권 논쟁도 끝났다.

그러나 사전(事前)의 뜨거움이 무색하리만큼 18세의 선거 결과와 의미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온라인 개학에 맞춰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선거를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새로 구성된 국회는 역시나 극한 대립 속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원 구성을 마쳤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 과정들이 민주적인 법과 절차대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큰 보람보다는 왠지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는 왜일까?

이런 안타까움으로부터 한 권의 책이 생각났다. 『민주주의의 정원(The Gardens of Democracy)』이라는 책이다(E. Liu & N. Hanauer, 김문주 옮김, 2017).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를 정원에 비유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민주주의를 가꾸는 정원사라고 한다.

정원에서는 정원사가 필요하다. 즉,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시민 권력의 생태계를 가꾸어 나감으로써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이익을 안기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시민들 말이다.

훌륭한 정원사는 절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대해 책임을 진다. 아름다운 정원은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훌륭한 정원사는 흙을 갈아엎고 여러 식물을 바꿔가며 심는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정원에 비유하면서 세계의 정치경제적 질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바로 ‘기계형 지성(Machinebrain)’과 ‘정원형 지성(Gardenbrain)’이다.

‘기계형 지성’은 합리적인 동물로서의 인간, 완벽한 등식으로 운용되는 세계라는 관점을 갖는다. 이와 다르게, ‘정원형 지성’은 비합리적이지만 선의(善意)를 가진 인간, 하나의 생태계로서 변화하고 숨 쉬는 세계라는 관점을 갖는다.

기계형 지성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시계와 톱니바퀴, 영구 운동기관, 균형과 평형력 등으로 설명되는 기계장치같은 것이고 사람들은 톱니바퀴를 구성하는 각각의 톱니이다. 정원형 지성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얽히고설킨 하나의 생태계이며 사람들은 역동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독립적인 창조자이다.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기계형 지성’을 버리고 ‘정원형 지성’의 관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정원형 지성’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원으로 이해하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생활과 공동체 생활이라는 정원, 시장과 경제라는 정원, 그리고 지역적 차원부터 국가적 차원까지 ‘우리의 정부’라는 정원이다. 제도만 갖추어 놓으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정원이 아니라, 하루하루 세심하게 가꾸고 살펴야 하는 민주주의의 정원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계공의 법’이 아닌 매일 가꾸어야 하는 ‘정원사의 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원형 지성’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종종 잊는다.

민주적 방식으로서의 어떤 제도를 만들어놓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그 제도가 목적한 대로 잘 운영되리라고 생각한다. 소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올인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기계형 지성’의 관점, ‘시계공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성적 측면에서 이번 18세 선거에 대해 한 번 되돌아보자. 이번에 우리는 54만여 명의 청소년에게 새로운 선거권을 부여했다. 선거에 대한 새로운 제도, 새로운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에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각자 선택하고 가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정원이 하나씩 주어진 것이다. 자기에게 마음대로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주어졌으니 얼마나 기쁘고 설레었을까?

그런데 그들에게 제도로서의 정원은 주어졌지만 거기까지였다. 정원을 가꿀 재료나 도구도,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초보자이기에 정원 가꾸기 요령에 대한 설명도 필요했지만, 그 설명을 위한 선거 교육도 거부되었다. 정원은 주어졌지만, ‘정원형 지성’의 관점에서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실질적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18세 선거권이라는 제도가 완성되었으니, 가만히 있어도 그 제도가 목적한 대로 잘 운영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였다. 정원을 주었으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정원에서 각종 화초들이 알아서 적절하게 자라날 것이라는 ‘기계형 지성’의 사고방식이다. 학생들은 어렵게 획득한 주어진 민주주의의 정원에서 하루하루 정원을 일구어가는 재미를 크게 느낄 수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부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실시한 학생회장 선거는 큰 울림을 주었다. 온라인 개학으로 대면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으로 학생회장 선거를 실시하였다.

학생회가 주도하여 온라인 모집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온라인 선거 공고, 온라인 선거 입후보, 온라인 선거 운동, 온라인 합동 연설회, 그리고 온라인 투표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멋지게 온라인 선거를 진행하였다.

온라인 선거를 치른 대부분의 학교가 온라인 투표율이 90% 안팎에 이를 정도로 학생들의 참여율도 높았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고 우려도 했지만, 학생들은 다양한 동영상으로 선거 운동을 하면서 즐기는 모습이었다.

대립과 투쟁의 모습으로 각인된 근래 어른들의 선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18세 학생들의 선거 역량을 걱정했지만, 오히려 걱정을 끼치는 것은 어른들이 아닌가? 학생들은 ‘정원형 지성’의 모습으로 나아가 있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기계형 지성’의 틀에 스스로를 감금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민주주의의 정원을 알차게 꾸미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자신의 정원 가꾸기보다는 타인의 정원 망가뜨리기에 열중하고 있지 않은가?

참고로 『민주주의 정원』은 2011년에 씌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2017년 한국어판 출간을 맞이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고백하건대, 2011년 《민주주의의 정원》이 출간되던 당시만 해도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또한, 지금의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이 책에 담긴 생각과 교훈들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시급하고 타당성 있게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사실 지금 《민주주의의 정원》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철 지난 20세기 기계형 사고방식의 논리적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어졌다.

트럼프의 페르소나만큼이나 그의 어젠다는 날 것 그대로의 단기적 이기심이 장기적인 관점의 시민의식을 대체할 때 벌어지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독단적인 정책 결정자들이 대중들을 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즉 제로섬과 공포를 바탕으로 한 결핍적 사고가 국내외 정책을 이끌어갈 때 발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미래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 혹은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미래는 새로운 방식의 시선과 대화와 자치를 꿈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란 상호의존과 상호협력, 상호이익의 힘을 인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원 가꾸기이다. 한 번의 심기 작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살핌을 소홀히 하면 정원에는 잡풀이 자라고 바라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수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꿈으로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충분한 재료와 시간을 주자. 오늘도 싸우고 있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 가꿀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신호현 2020-07-03 10:12:25
정원형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공자가 대학(大學)에서 말한 군군신신민민(君君臣臣民民)이 생각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백성은 백성답다.”면 서로 의심하고 시기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불을 밝혀주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요? 자유, 정의, 질서 등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우리 손으로 가르쳐야겠습니다. 송 원장님의 멋진 글은 언제나 가슴을 울립니다.^^(신호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