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EBS만 틀어주고 놀고먹는다는 당신들에게
[한희정 칼럼] EBS만 틀어주고 놀고먹는다는 당신들에게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6.22 20: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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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사는 교사의 일상을 드립니다.

글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2020년 6월 22일 월요일. 오늘은 우리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날이다. 아침이면 다른 학년 교사들은 돌아가며 1학년 학생들의 등교를 돕는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망설이거나 교실이 어디인지 모르던 1학년들도 이제 등교 5주차가 되니 망설임 없이 열화상 카메라 앞에 서고 누군가의 안내 없이도 교실을 잘 찾아간다.

3학년 6반 담임인 필자는 1학년 6반이랑 짝궁반이라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교문 앞 횡단보도까지 안내하는 일을 도와준다. 1학년 등교일에는 3학년 교사가, 3학년 등교일에는 1학년 교사가 서로 품앗이하는 셈이다.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6명이나 되었는데 차츰 줄더니 3명이 되었다. 이미 5번이나 만났으니 서로 익숙하다.

처음 등교하던 날은 학교 텃밭에서 딸기를 하나씩 따주고, 지난 주 하교할 때는 끝물인 앵두를 몇 개씩 따주었더니, 코로나 위험 때문에 손을 잡으면 안된다고 해도 기어이 내 손을 잡고 가겠다고 하던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교문 앞에 이르니 학부모님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신다. 뜨거운 한낮 더위 속에 아이들을 잘 인계해드렸다. 나머지 한 분이 아직 오시지 않아서 횡단보도까지 걸어내려갔다. 개똥이를 맞으러 오신 분은 안계셨다.

“개똥아, 엄마 전화 번호 알아?”

“네, 알지만 저는 전화기가 없어요.”

“괜찮아! 선생님 전화로 하면 되니까.”

그렇게 개똥이 엄마와 통화가 되었다. 할머니가 데리러 가시는데 전화를 해 보겠다고 하셨다. 잠시 그늘에 앉았다. 개똥이는 사마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절지동물, 갑각류 얘기로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 정말?”, “선생님은 잘 모르겠는데?” 이 정도만 대답해주면 된다.

그러는 사이 개똥이 엄마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깜박 잊으신 거 같은데 전화 통화가 안된단다. 엄마가 지금 출발하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단다. 방법은 두 가지라고 말씀드렸다. 1학년 6반 담임 선생님은 지금 아이들 점심식사 지도를 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보내서 밥을 먹고 교실에서 기다리도록 하는 것과, 괜찮다면 3학년 교실에 아이들이 없으니 거기서 기다리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개똥이는 나와 같이 4층 꼭대기에 있는 우리 교실에 왔다. 뭘 하면 좋을까 해서 보드게임 몇 가지를 보여주고 하나를 권했더니 자기는 그거 말고 이걸로 하겠단다. 그래서 교실 가운데 매트를 깔아줬다. 정작 우리반 아이들은 한 번도 갖고 놀아보지 못한 보드게임이고, 앉아보지 못한 푹신한 매트다. ‘공용물품 사용금지’라 꽁꽁 숨겨놓았던. 개똥이가 보드게임에 집중하는 사이에 나는 위두랑에서 아이들 댓글을 확인하고 답을 달아주거나 내일 수업에 쓸 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20분쯤 놀았을까? 할머니랑 통화가 되었다고 교문 앞으로 나오면 된다는 연락이 왔다. 개똥이는 오늘은 너무 기분 좋은 날이라며, 평소에는 학교 끝나고 놀 수 없는데 오늘은 놀 수 있어서 좋았다고 활짝 웃으면서 할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나에겐 개똥이가 놀다간 흔적을 소독하는 일이 남았다.

코로나 시대를 사는 교사들의 일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대면수업과 원격수업을 모두 준비하고 있고, 계속 바뀌는 지침에 넌덜머리나도록 회의를 하며 수정하고, 방역 지침을 숙지하고, 모의 훈련을 하고, 교실 소독을 하며, 수업자료를 준비한다. 그럼에도 하교시간에 30분이나 늦은 개똥이나 개똥이 엄마를 전혀 탓하지 않고, 놀이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은 교사로서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업과 방역 이외의 업무는 과감히 축소․폐지하라는 서울교육감의 업무지시에 따라 그나마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은 다 힘들고, 남이 하는 일은 다 쉬워 보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게다가 교사의 일은 잘 하려면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자발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EBS만 틀어주고 놀고먹는다는 식의 비난은 제발 삼가는 것이 어떨까? 만약 그런 교사들이 있다면 그런 비난 댓글을 아무리 달아도 그런 교사들은 별반 바뀌지 않을 것이고, 최선을 다하려는 교사는 상처만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필자 주변에는 EBS만 틀어주고 놀고먹는 교사는 한 명도 없다. 원격수업 자료 만드느라 오른손을 혹사하여 사비로 버티컬 마우스를 사서 들고 다니고, 물리치료 받으러 다니는 교사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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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사 여러분 힘내세요 2020-06-26 08:37:23
누구나 칭찬만 듣고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열심히 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해주시는 분도 많습니다. 힘내십시오!

박재관 2020-06-24 17:33:07
로봇아닌것도 힘든데 글남기기는 더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