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주의 사이다 톡] 교직원회의, 회의(會議)가 맞습니까?
[송은주의 사이다 톡] 교직원회의, 회의(會議)가 맞습니까?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6.22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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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송은주 서울언주초교사

교직원회의실을 나서는 교사 A는 착잡하다. 교직원회의시간이라고 모이면 도대체 뭘 하고 나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년차인 교사 A의 눈에 보이는 교직원회의 장면은 늘 비슷하다. 교장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20분 이상 이어질 때가 많고 회의의 내용은 대부분 전달사항이다. 회의란 관리자와 각 업무계가 할 말을 일방적으로 안내하는 전달의 장인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은 다이어리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선생님은 핸드폰을 한다. 그날 안건의 업무 담당자 외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업무 계별로 전달해야 할 사항은 메신저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오늘도 한다.

추가적인 질문이나 건의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회의의 의미가 원래 이런 것인가, 교사 A는 오늘도 생각한다.

교사 B는 3월에 발령받은 신규교사다. B의 학교 교직원회의시간에는 교장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며 발언을 독려하신다. 그런데도 막상 회의시간에 말하는 사람은 교장, 교감선생님과 부장님들뿐이다.

B는 그런 분위기의 바탕에는 침묵을 강요하는 교직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B도 얼마 전 교직원회의에 건의를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선배들의 만류로 말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B는 코로나 방역 관리와 관련하여 담임교사에게 부과된 역할이 너무나 많아 전담교사가 일부 분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전교직원회의 시간에 건의하고 싶었다.

다른 학교의 사례도 알아보면서 나름대로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으나 평소 회의 분위기로 보아 신규 교사가 발언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동학년 선생님의 교실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런 의견이 있는데 회의시간에 말해도 되는지 말이다.

‘솔직히 의견을 나누자는 회의시간에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왜 걱정해야 하는가’도 의문이었는데, 돌아온 선배 선생님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굳이 왜 말을 사서 들으려고 해? 그냥 가만히 있어.”

이 선배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교직 문화 자체가 이런 걸까. 아직 확신이 안 선 B는 다른 선배교사에게도 물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되는 답변을 받았다. “건의를 하고 싶을 때는 먼저 부장선생님께 말해서 교감선생님께 의견을 전달하는 게 정석이야.”

정석이란 누가 정하는 걸까? 신규교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 안에서 ‘정석’으로 자리잡은 처세술이나 대응 방식에 동화되길 강요받는다. 그런 과정은 ‘학교에 적응한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일부 학교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교사 A와 B의 사례는 교직원 회의란 정말 회의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회의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 회의는 會議, 여럿이 모여 어떤 의견을 교환하며 논의한다는 의미의 회의다.

두 번째 회의는 回議, 주관자가 기안한 것을 관계자들에게 돌려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한다는 의미의 회의다. 교직원회의에서의 ‘회의’는 첫 번째 의미의 회의일 텐데, 실제로는 많은 교직원회의가 두 번째 의미의 회의에 가깝게 이루어진다.

이미 업무담당자나 위원회의 구성원, 관리자의 합의로 결정된 사안이 공표되거나, 동의를 구하기는 하지만 전체 구성원의 발언 기회는 거의 없는 것이다.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서인가? 그 또한 발언하고 싶은 자의 입을 막는 좋은 근거가 된다.

“괜히 말을 해서 일을 키우지 말라.” 반드시 부장선생님께 먼저 건의한 후 교감선생님을 거쳐 공론화 해야 한다는 ‘관례’에 과연 검열의 의도는 전혀 없는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규들은 회의라는 절차에 대해 회의(懷疑)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학교의 일만은 아니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실패하는 조직이 가진 중대한 문제점으로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 때 인간관계에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를 지적했다.

‘말 많은 사람으로 찍힐 것 같은 두려움’이 침묵을 강요하고, 그 침묵이 조직의 성과와 성장가능성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고, 똑똑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바란다. 최소한 조직의 효율을 흐리는 사람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란다. 저자는 이를 ‘대인관계 위험(Interpersonal Risks)’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대인관계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을 이른 나이부터 눈칫밥으로 배운다. 어른이 되어 직장에서 ‘귀찮은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회의시간에 입을 다무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 사람이 되면 인간 관계에 상처를 입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존중받는 한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교사 B의 학교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이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편임에도 회의 문화가 지시적이고 발언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학교 공동체 전반에 흐르는 심리적 안정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언제든 자신의 의견이 가치있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생기면 발언할 용기와 심리적 안정성을 얻고, 조직은 근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의무 발언제’, ‘예외없는 1인 1표’ 등의 방식으로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제도적 고민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규교사든 경력교사든 상관없이, 많이 알고 모르고에 상관없이, 일단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의견을 더해주는 인간적인 감성이 먼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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