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프레스 눈] COVID 19 원격교육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에듀프레스 눈] COVID 19 원격교육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6.05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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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규 서울북부교육지원청교육장
조호규 서울북부교육장
조호규 서울북부교육장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간혹 산을 오르며 나는 그 곳의 수많은 만상들을 보고 상념에 젖곤 한다. 키 크고 잘 생긴 나무들, 고만고만한 그저 그런 나무들, 작고 보잘 것 없는 관목들, 큰 나무에 치여 삐쩍 말라 가련해 보이는 초목들, 그들은 서로의 잘남과 못남을 숨기지 않고 어쩌면 저렇게 평화롭고 조화롭게 자신들의 자태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까?

자신의 뿌리를 훤히 드러내어 수많은 사람들의 발굽에 밟히면서도 저렇게 생명을 보전하며 의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의 생명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우람하고 잘 빠진 큰 나무는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지만 그들은 뽐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속살을 내보인다. 그런 큰 나무 밑에는 그저 그런 나무들이 크게 불편해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특히 가을 잎새들은 각기 다른 뽄새로 화려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 숨결을 불살라 내일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과감히 자신을 던져 거름이 된다. 이 얼마나 성스러운 고통인가?

따뜻해지면 새순을 드러내고, 뜨거워지면 그 새순들은 쑥쑥 자라 어느새 자신의 몸집을 불리고, 차가워지면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북풍한설이 매섭게 몰아치면 자신의 생살을 도려내어 생명을 유지하는 변화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본질을 지키면서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여 자신의 자태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 이런 섭리가 얼마나 통하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상념들을 하다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사를 그와 대비해 엿보게 되고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조화롭게 생존하는 크고 작은, 잘나고 못난 나무들에서 공존과 조화의 혜안을 얻고,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잎새들의 화려한 몸부림에서 헌신을 배우며, 계절의 변화에 모습을 바꾸는 자연에서 시대 변화를 앞서가는 프런티어 정신을 깨우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귀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소중하게 대접 받아야 한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치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그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침해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은 진리이고 타인의 그것은 틀렸으므로 나의 것을 관철해야 한다는 아집과 불통이 비일비재하고, 남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척결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겪는다.

자신이 갖고있는 그 무엇에 대해 작은 해침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원상회복하려는 외침과 주장이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 우리 사회다. 학교 현장도 간혹 그렇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도려내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요 우리 사회의 축복이 됨을 잘 모른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교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 이전에 소중한 영혼을 다루는 교사여야 한다. 주장과 외침에 앞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갈라섬과 배척은 멀리하고 공존과 협력에 친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 사회에 이런 가치들이 다소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다.

관계의 윤리가 넘실거린다.

‘너’가 없이 ‘나’라는 명칭이 호명될 수 없고 ‘나’가 없이 ‘너’라는 이름은 불려질 수 없다. 배려 이전에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호명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배려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고 선현의 말씀이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나와 너의 공존이 통하고, 존재와 가치의 상대성이 지배하며, 목적 합리성과 교육의 내재적 가치 추구가 당연시되는 그런 사회, 열정과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상생하는 그런 교육을 꿈꾸어야 한다.

자신의 속살을 밟히면서도 의연히 생명을 유지하는 소나무에서,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자연에서 우리는 존중하고 인정하는 ‘더불어 정신’ 배워야 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마태복음」7장 12절, 누가복음 6장 31절의 황금률에서,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仁)”(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베풀지 말라), “기욕입이입인(己欲立而立人), 기욕달이달인(己欲達而達人)”(내가 먼저 성공하고자 하면 남을 먼저 그렇게 되게 하고, 내가 먼저 훌륭한 경지에 오르고자 하면 타인을 먼저 오르게 하라”)을 설파한「論語」에서,

또한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으며,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뒷사람을 이끌지 않으며,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가지고 앞사람을 따라하지 않으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을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않는다.”는「大學」의 혈구지도(絜矩之道)에서 공존과 인정과 배려의 관계 윤리를 익혀야 한다.

이런 당연한 관계의 윤리 회복을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가까이서 목도하고 있다. 관계의 윤리가 넘실대는 바로 그런 사회와 문화를 학교라는 창을 통해서 보고있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다가온 코로나 19가 만든 원격교육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학교 선생님들은 서로의 이름을 간절히 호명하며 서로의 가진 재능을 내어놓고 서로 협응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원격수업을 만들어냈고 방역이라는 낯선 벅찬 과제를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고 있다. 아침 일찍 학교 등교 개학을 지켜본 나는 감동을 받은 때가 참 많았다. 이는 학교 공동체의 관계 윤리가 아름답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증험이다.

열정이 있는 교육이 보인다.

처음 우리가 교직에 몸담을 적에 가졌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직에 대한 사명감, 교육에 대한 애정을 열정으로 모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새 생명을 위해 자신을 화려하게 불사르는 자연의 섭리에서 우리는 사명을 배우고 헌신과 열정을 익혀야 한다.

교육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잃어가는 우리들은「論語」의 “君君, 臣臣, 父父, 子子”에서 가슴을 때리는 울림을 느껴야 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다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교사는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열정으로 가르쳐야 하며 교육 본래의 내재적 가치에 전념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열정을 가진 교사, 사랑이 넘치는 가르침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이 시대에 이를 우리의 교육적 좌표로 삼아 노력해야 한다.

요새도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 저녁 최소 두 번 낭송하는 것이 있다. 탈무드의 ‘셰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는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어릴 때부터 평소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습관을 들이면 이 아이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던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교육자들은 이런 열정을 배워야 한다. 온 ‘마음’, 온 ‘목숨’,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자세가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관리자의 입장에 있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든 우리는 열정을 다해 교육 활동을 해야 한다.

“교육이 변해야 미래가 보인다.”는 말처럼 이제 교육 주체들이 사고와 행동에서 Back to the Basic 해야 한다. 이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너와 나의 공존이 중하지 않은 사회가 언제,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에 대한 열정이 역사를 움직이지 않은 사회가 언제, 어디 있었던가를 곱씹어야 한다. 특히 교육에서는 더 그렇다. 열정으로 가르치고 공존과 배려, 인정 정신으로 관계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에는 이런 당위의 가치들을 외치는 교육학자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를 외치는 교육학자들을 보는게 아니라 실행하는 선생님들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 이런 열정이 우리 학교와 교육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잠자고 있던 열정에 불을 댕긴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 않았고 심지어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은 보란 듯이 이를 비웃어 주었다. 학교를 방문해 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열심히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본다.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우리 선생님들을 칭찬한다. 나아가 학교뿐만 아니라 열정이 뭉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 북부교육청 초등 온리인 수업 플랫폼「어서와 초등 북부 온라인 교실이야」와 우리가 꿈꾸는 교실 「‘필통’Feel 通」 유튜브 플랫폼이 바로 그 증좌다. 현장의 선생님들이 뭉쳐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생님들의 관계 윤리와 열정을 고스란히 잘 담아내어 원격 시대의 우리 교육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학교문화 조성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선생님들의 관계 윤리와 열정에 파이팅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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