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사칙연산의 세상
[교육칼럼] 사칙연산의 세상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5.3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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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호현 詩人, 배화여중 교사
신호연 서울배화여중교사
신호현 서울배화여중교사

어려서 숫자의 개념을 알고 숫자를 셀 줄 알면 그 다음으로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이 사칙연산의 세계이다. 수의 크기를 불려나가는 더하기와 크기를 줄여나가는 빼기다. 수를 상상 이상 늘려나가는 곱하기와 상상 이상 줄여나가는 나누기이다. 수의 세계는 참으로 신기하다. 더하기와 곱하기로 마구 행복해지다가도 빼기와 나누기를 만나면 스스로 어려워 끙끙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3-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의식주는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먹을 것은 끼니를 때우기에 급급했고, 입을 것은 그 두께를 생각하기 전에 가릴 곳만 가리면 그만이었다. 많은 형제들이 옷을 물려 입고 공동으로 입기가 대부분이었다. 집은 방 한두 칸에 겹겹이 살았으니 춥더라도 바람만 막아주면 그만이었다. 마을에서 부역 나가면 정부에서 밀가루를 거저주어 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반찬이나 맛난 것은 이웃이 서로 나눠 먹었다. 이웃 간에 얻어먹은 만큼 힘든 일이 생기면 내 일 네 일 따지지 않고 함께 도우며 살았다.

우리나라는 3-4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루었다. 단칸방에서 공부하던 형제들이 대기업의 임원이 되고, 공무원이 되고,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부모들은 가난해서 굶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공부만은 시키겠다는 철학이 있었다. 자녀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서 서로서로 경쟁하고 협동하니 상생의 효과를 주어 서로 꿈을 이루고 발전하는 데 힘이 되었다. 이런 삶이 사칙연산의 서로 돕는 더하기와 상생의 곱하기이다.

제 아무리 잘 살아도 부모의 권위가 커서 자식들을 지나치게 훈계하고 갈 길을 딱딱 정해주면 자녀들은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 잘 살아 보겠다는 꿈도 없고 시키는 대로 대충 살다가 일이 잘 안 되면 서로 남탓하기 일쑤다. 부모가 살라고 하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인지 자기 자유대로 사는 것이 행복인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해답이 나올까. 자녀들의 미래가치를 보이는 것만 보고 정해주면 보이지 않는 더 큰 것을 잃는다.

17세기 이래 대두된 헤겔의 유물론적 사관은 철학, 자연과학, 정치 사회적 관념이 서로 결합하여 자연적 인과의 일체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역사관이다.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간의 사고로 세상을 정의하려는 관념이다. 이는 중세의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지나친 숭배로 비합리적, 비실리적으로 보았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것을 합리적, 실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가치를 두고 자유, 경쟁을 통해 협동과 상생의 세계를 추구하는 덧셈 곱셈의 자유민주주의와 보이는 존재의 가치를 두고 평등, 평화를 통해 더불어 함께 사는 뺄셈, 나눗셈의 사회주의가 대립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두다 보니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의 가치와 흐름을 같이 하고, 사회주의는 종교 내에서 합리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보이는 존재를 숭상하는 유물론적 경향, 또는 종교를 부정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우리나라는 남과 북, 좌와 우 등 대립 갈등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나라다. 서로 빼기와 나누기에 열을 올리다 보면 그동안 발전시켜 온 경제 성장은 무너지고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국민 서로서로가 능력에 따라 각자 생업에 충실하는 '더하기'와 서로 돕고 나누는 ‘곱하기’의 기부문화로 잘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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