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공부하는 이유
[교육칼럼] 공부하는 이유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5.28 23:2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신호현 배화여중 교사 / 시인
신호연 배화여중 교사/ 시인
신호현 배화여중 교사/ 시인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세상을 가득 담고자 맑게 출렁거리는 반짝이는 옹달샘 같은 아이들은 뭐라 대답할까. 학생들과 새로 만나 반가운 인사가 끝나면 그 옹달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듯 질문을 던지면 마구 흔들리는 대답들이 튀어오른다.

"대학 가려구요.", "취업하려구요.", "잘 먹고 잘 살려구요."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에 실망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들어왔던 대답이고 이런 대답만이 질문을 던진 이유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분이 있으면 말해봐.” 학생들은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순신이요.”, “세종대왕이요.”, “안중근이요.”, “이태석 신부요.” “왜 이들이 훌륭하지?” “나라를 지켰으니까요.”, “한글을 만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어요.” “그래 대답 잘했다. 참으로 똑똑한 친구들이구나. 그러면 ‘훌륭’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지?”

‘훌륭’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썩 좋아서 나무랄 곳이 없는’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해석이 모호하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훌륭’이라는 말의 뜻을 쉬게 가르친다. ‘남을 위한’으로 바꾸어 보라고 한다. ‘남을 위한 사람 이순신, 세종대왕, 안중근…. 나보다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곧 ’훌륭한 사람‘이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자유학년제 중1 학생들에게 ‘한 학기 한 책 읽기’로 반드시 읽히고 토론을 한다. 애벌레는 자신의 삶을 위해 나뭇잎을 갉아먹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올라가 정상에 우뚝 서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이 보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애벌레들이 모여 서로 짓밟고 오르려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애벌레로서의 삶이 아니라 커다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스스로를 가두는 고치 속에 들어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죽는다는 뜻인가요?” 세상과 단절하면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견디면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는 놀라는 진리이다.

누구도 땅을 기어다니면서 나뭇잎이나 갉아먹고 그 지나간 자리에는 똥이나 남기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것이라는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날개로 하늘을 날면서 꽃 속에 있는 꿀을 빠는 순간 ‘나비는 꽃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꽃들이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칠판 위에 교훈과 급훈을 적어놓기 전에 교육이념을 적어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도 우리나라 교육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사실을 적어놓은 곳도 없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왜 공부하니?’라고 물으면 ‘대학과 취업을 통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공부’를 택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공부는 ‘나중심’의 공부요, 가장 어려운 공부는 ‘남중심’의 공부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는 교육의 결과를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끔찍한 교육을 하고 있었던가.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된 후에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수년 전에 이 수업을 듣고 ‘남중심의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공부한 제자가 S대를 갔고, 또 어떤 학생은 엊그제 고치 속으로 들어가듯 외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선생님 때문에 ‘공부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면서 고치 속에서 ‘남을 위한’ 날개를 솟구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신호현 2020-05-29 10:07:51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3/05/376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