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럴 바엔 등교수업 왜 시켰나
[기자수첩] 이럴 바엔 등교수업 왜 시켰나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5.28 00:4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일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도서실. 입시를 앞둔 3학년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교육청은 내일부터 오후 6시이후엔 개방하지 말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사진 독자제공)
27일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도서실. 입시를 앞둔 3학년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교육청은 내일부터 오후 6시이후엔 개방하지 말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사진 독자제공)

[에듀프레스 장재훈기자] 학생들이 교문으로 들어온다. 교정에 생기가 돈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교사들 얼굴에서도 모처럼 웃음이 흘러나온다.

최근 일주일, 말 그대로 학교는 전쟁터였다. 정부가 등교를 강행하면서 모든 책임은 학교로 떨어졌다. 교육과 보육, 방역은 온전히 교사들 몫이 됐다. 통계를 좋아하는 교육당국은 수시로 보고를 요구했다. 보고 양식도 걸핏하면 달라진다. 보건교사들에게는 근래 6번이나 양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교육장관과 교육감은 기자들 모아놓고 불필요한 공문과 지시를 없앴다고 자화자찬 했다. 선생님은 수업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했다. 교사들은 기가차고 어처구니 없었을 거 같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무실, 전화통 붙잡은 교사들로 북새통이다. 딱 콜센터다. 자가진단 기록 안 한 학생들에게 독촉하고 그래도 안되면 학부모에게 하소연한다. 단톡방에 공지하고 구글클래스에 또 올린다. 오전 10시가 교육청 보고 데드라인이니 만사 제쳐두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학교를 방역의 최전선이라고 했다.  하루 몇차례 씩 소독제 뿌리고 닦는다. 교육청 장학사는 방역상태 체크한다며 수시로 들락날락인다. ‘미처 못했다’고 하면 ‘어짜피 할거니까 한 것으로 보고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문도 한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회의하자는 연락이 온다. 교육청 지침이 워낙 쏟아지다 보니 회의도 잦다. 요즘들어 부쩍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하라는 게 많다. 예컨대 ‘금지가 원칙이지만 학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라는 애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잘못되면 학교 책임이라는 소리다.

속 터지는 것은 학교실정도 모른 채 내려오는 주먹구구 지침들이다. 오늘은 교육청에서 야간자율학습을 금지하고 도서실도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라는 지침을 보내왔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운데 도서실까지 문을 닫으라 한다.

내쫓긴 학생들이 갈곳 이라곤 이제 학원이나 동네 독서실, 스터디카페 정도다. 어느 곳이 더 안전할까. 밤 10시, 환하게 켜져 있는 도서실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창틀 사이로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이 안쓰럽고 또 안쓰럽다.

촌극은 또 있다. 처음엔 에어컨은 안된다고 했다. 비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교실 창문 3분의 1 열고 틀으라고 했다. 오늘은 2시간마다 환기시키면 된단다. 왜 2시간인지 설명은 없었다.

아침부터 마스크 쓰고 수업을 했다. 한 20분 말을 하고 나니 단내가 난다. 비록 40분으로 수업시간을 단축했지만 오늘 해야 할 수업이 7개 반이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파는 심경으로 사비를 털어 무선 마이크를 샀다. 그러고보니 원격수업도 준비해야 한다. 등교수업에 원격까지 2중고다.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교육당국은 그동안 숨겨온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랜 B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플랜 A도 제시못한 탓이다. 시종 허둥댔고 오락가락했다. 책상에서 페이퍼웤만 즐기던 실력이 고스란히 뽀록났다.

이뿐 아니다. 정책결정에서 교육은 뒷전이었다. 코로나 불씨가 여전한데도 밀어붙인 등교수업이 딱 그것이다. ‘K-에듀’라는 헛된 욕망에 교육은 볼모가 됐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딱 하나. 대한민국 교사들이다. 투덜(?)거리긴 해도 할 건 다한다. 그것도 참으로 헌신적으로 잘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교사들에게 이 모두를 기대고 책임을 지울 것인가.

교육부는 매일 한두번 출입기자들에게 코로나 19 상황을 브리핑 한다. 오늘은 유초중고 561곳이 등교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학부모도, 학생도, 교사도 조마조마한 나날이다. 도대체 왜 등교수업은 강행한 걸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몽 2020-05-28 02:06:55
청원으로 올려주세요. 탁상행정들 반성좀 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