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5월 15일, 선생님은 안녕하셨습니까?
[한희정 칼럼] 5월 15일, 선생님은 안녕하셨습니까?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5.18 0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직원’이라는 장막 앞에 서서 뭇매 맞은 교사들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국제적인 통계나 연구물들을 보면 한국의 교사는 매우 우수한 인력이라는 것이 입증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교사는 동네북이다. 과거 자신의 경험으로 교사에 대한 인상을 결정지어 버리거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최악의 상황을 보면서 모든 교사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2020년 교사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그냥 수업만 대충 때우면 되는 한량 같은 직업인으로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동네북처럼 때만 되면 두드려 맞는 교사라는 자조는 5월 15일 스승의 날이면 최고조에 이르러 2018년에는 ‘제발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고 청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 우려는 올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이태원발 코로나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가 등교를 앞두고 있는 학교로 향할 때 이태원 클럽에 방문한 교직원이 몇 명이냐로 온갖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키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5월 13일, 서울시교육청은 4월 29일부터 5월 6일 사이 이태원, 신촌, 논현동 등 발생지역일대를 방문한 교직원이 모두 158명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유흥시설을 방문한 교직원은 14명, 원어민이 그 중 6명, 교직원이 8명이었다.

서울 교직원·원어민교사 158명 이태원 갔다.."개학 더 늦춰야"(중앙일보, 5.13)

연휴에 이태원·신촌 방문 서울 교직원 158명.."전체 검사는 불가능" (한국경제TV, 5.13)

스승의 날 앞두고 코로나에 물든 교단(서울경제, 5.13)

연휴 때 이태원·논현·신촌 유흥지역 방문 서울 교직원 158명(연합뉴스, 5.13)

이태원 방문 교직원 최소 477명에 학부모들 '분노' (MBN, 5.13)

[속보] 이태원 클럽 등 방문한 서울시내 교직원 158명(한국일보, 5.13)

'이태원 방문' 교직원 수백명, 등교수업 '비상'(머니S, 5.13)

그 후 쏟아진 기사들의 제목만 보면 교직원들이 대거 이태원 클럽에 방문해 연휴를 즐긴 것 같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모두 교사에 대한 비난이다. 당장 파면하라부터 교사들 때문에 ‘신천지’ 사태다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악담까지 학교 교직원은 ‘교사’ 밖에 안보이는 것이다.

5월 14일, 교육부는 다시 기름을 들이붓는다. 전국적으로 880명의 교직원이 이태원 일대를 방문했으며, 클럽 9곳의 방문자는 41명, 그 중 원어민 교사가 34명, 교직원이 7명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태원 있던 교직원 880명이라니..교육계 발칵(한국경제, 5.14)

[속보] 교육부 "이태원 간 교직원 880명..클럽 방문 41명" (국민일보, 5.14)

교육부 "이태원 일대 방문 교직원 880명, 239명 미검사"… 교육계 덮친 코로나19(세계일보, 5.14)

이태원 방문 교직원 880명…등교 강행 방침에 교육 현장 불안감 (이투데이, 5.14)

학부모 "불안해 학교 못 보내"..이태원 방문 교직원에 불안감(뉴스1, 5.14.)

쏟아지는 기사 제목들을 보면 ‘이태원 일대 방문’과 교직원 880명에 대한 강조로 불안감을 부추기며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과 비난을 양산하려는 것만 같다. 이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는 교사들은 절망하고 탄식했다. ‘교사 확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가족 모임도 가지 않고, 대중교통도 자제하며, 연휴기간에 예약해 놓았던 숙박업소와 항공권마저 위약금을 물며 취소를 했는데 그 일대를 방문했다는 것만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그 일대를 방문한 학부모와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는 의심해 봤나?

2020년 서울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은 교사, 원어민 보조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특수실무사, 교무실무사, 조리실무사, 행정전담사, 사서실무사, 영양사, 조리사, 과학자료실무사, 전산실무사,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설직 공무원, 학교보안관, 청소용역업체 직원, 방과후 강사, 원격학습도우미, 공익근무요원 등 20 종이 넘는다. 이걸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그 중 서울교육청 소속 교원은 8만명이 넘는다. 설령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연휴 기간 중 유흥시설을 방문한 교직원 8명이 모두 교사라고 해도 만 명 중 한 명이 방문한 것이다. 0.01%도 안되는 교사가 유흥시설에 갔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은 교사를 향하는가!

교육부는 더 구체적으로 ‘유흥시설’이 아닌 확진자가 발생한 클럽 9곳을 방문한 교직원은 7명이라고 했다. 전국의 교원수만 40만으로 추산한다. 7명의 교직원이 모두 교사라고 해도 40만명 중 7명, 0.00175%도 안되는 교사들이 확진자가 발생한 클럽 9곳을 방문한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유흥시설 방문 교직원 8명, 교육부가 밝힌 클럽 9곳을 방문한 교직원 7명 중 교사는 도대체 몇 명인가? 왜 그 모든 비난을 교사들이 감수해야 하는가? 혹자는 극소수의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는데 왜 그 극소수의 교사들 때문에 40만 교원이 모두 욕을 얻어먹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스승의 날 전날에.

지난 2월 개학 연기 발표와 긴급 돌봄 발표, 3월 30일 온라인 개학 발표에 ‘국가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여러 악조건을 묵묵히 감당하며 할 일을 해 온 교사들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는 것인가? 온국민의 욕받이로 교사를 내세우면서 ‘교육’이 바로 서길 바라는가?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그 7명 중 교사는 몇 명인지 밝히길 바란다. 교사들이 그렇게 엉망인 집단이 아니라고, 제발 애쓰고 고생하는 만큼만이라도 인정해달라는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교직 경력 22년, 가장 씁쓸한 스승의 날을 그렇게 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