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등교개학을 위한 열 가지 조건
[한희정 칼럼] 등교개학을 위한 열 가지 조건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5.10 19:56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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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방역의 최전선인가? 최후방이어야 하는가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지난 5월 4일 교육부의 등교 방안이 발표된 이후 교사들의 커뮤니티에는 자조가 넘쳐났다. 지킬 수 없는 지침과 무한책임에 대한 자조는 교직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이기에 이를 탓하기도 어려웠다. 논란이 된 핵심은 ‘이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고 에어컨을 켤 수 있느냐, 없느냐?’였지만 사실 그 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대면수업에 대한 높은 요구에, 학교는 방역 대책을 마련하고, 모의훈련을 하며, 자조를 삭이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집단감염이라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요행으로’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학교가 방역의 최전선”이라는 대통령의 워딩은, 듣는 순간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방역의 최전선에 학생들을 내세우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으로 등교 개학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등교 전에 발생해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 상황이다. 학교 현장은 등교를 위한 조건이 50%도 갖추지 못했는데, “99% 방역 완료”라는 기사만 믿고 있는 이들을 위해 현장교사가 느끼는 등교의 조건을 열 가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째, 학교에는 방역 전문가가 필요하다. 메르스, 신종플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등교 개학에 대한 교원단체의 의견을 물을 때, 보건교사를 지원할 수 있는 간호사 이상의 방역 전문가를 요청했다. 현재까지 교육부의 답은 방과후 강사, 퇴직 교원, 자원 봉사자를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둘째, 학사 운영에 과감한 상상력을 더해야 한다. 등교라고 하면 모든 수업을 대면수업을 운영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면수업이 꼭 필요한 수업, 평가 등을 위해 등교해야 하는 경우로 병행하면서 운영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별도 인력을 지원하지도 않을 거면서 오전․오후 2부제 수업을 예시안으로 넣었다. 학교 현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예시안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셋째, 학교 급식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교사도, 학부모도 가장 우려하는 것이 급식시간이다. 200-300명이 들어가는 급식실에 100-150명이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고요한 침묵과 거리두기가 가능할 것인지부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안전과 방역이 우선이라면 급식은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식재료는 각 가정에 바우처로 지급하면 된다.

넷째, 방과후 강사를 위한 고용 대책은 학교 밖에서 찾아야 한다. 방과후가 학교로 들어오는 과정은 ‘교육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생계문제는 중요하다. 그런데 왜 그들의 생계를 학교 안에서만,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4월 초, 방과후 강사를 원격학습도우미로 고용한다고 할 때는 다급한 문제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렇게 다시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어떤 대책도 세우고 있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 아닌가?

다섯째, 교사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지 말아야 한다. 학교마다 대책을 세우며 논란이 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유증상자가 발생하면 누가 격리실로 보내고, 누가 가정에 연락하고, 연락이 안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다. 양 아흔아홉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은 성경의 이야기일 뿐, 나머지 스물 세 명을 교실에 놔두고 한 명의 아이를 격리실로 안내하고 부모에게 연락하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 부분에서 교사가 하는 것으로 결정했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각 학교에 공무직이 5명씩 있지만, 비정규직에게 위험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두려우니 정규직 교사가 하자는 것으로 정리한다.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건 정부다. 보건소의 전문인력이 담당하도록 했어야 한다. 보건소 인력 상주, 유증상자 발생시 격리, 인계, 검사소 이동까지 책임져 주는 것이 그렇게 과한 요구인가?

여섯째, 공립 유치원의 열악한 조건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다. 원격수업 관련 법령이 없어서 긴급돌봄을 다 감당하면서도 방학일수만 까먹고 있는데도 원격수업과 교외체험학습 관련 법령만 손질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병설이든 단설이든 유치원에는 보건교사조차 없다. 병설유치원에는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있지만 학교 보건교사일 뿐이다. 겸임 발령을 내지도 않고 교장과 교감이 받는 겸임 수당도 주지 않으니 그렇다. 단설 유치원에는 순회 보건교사를 보내겠다는 것인데, 상주하지 않는 인력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유아 교육 공공성을 운운하는 게 어이없을 정도다.

일곱째, 1미터든 2미터든 실질적인 거리두기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행법상 교실 면적을 생각할 때 1미터 거리를 두고 책상을 배치하려면 기껏해야 한 학급에 20명이다. 그런데 학급을 늘려주지도, 교사를 더 배치해줄 것도 아니면서 1미터 거리두기를 지침으로 내리면 교사들은 다 지침 위반자가 된다. 무슨 말이야, 우리나라 학생수는 14명 정도 아니냐, 하겠지만 전국 평균이라는 함정에 속지 말길 바란다. 전국 평균 학급당 학생수가 아니라 학급당 학생수 최대치를 20명으로 잡아야 한다.

여덟째, 학교의 열악한 시설에 대한 전반적 지원이다. 실내 수도꼭지 하나당 이용 학생수는 얼마나 될까?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50명~100명일 것이다. 그런데 30초 손씻기를 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쉬는 시간을 순차로 하란다. 그럼 교사들이 어느 반 시간표에 맞춰 수업에 들어가냐고 하니까 수업 시간 중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한다. 그러다 동선이 겹치면?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온지 석 달이나 지났다. 올해 안에 끝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이 조건은 바꾸면 큰일나는 것인가?

아홉째, 고3 등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의 정시 확대로 인한 불이익에, 코로나 악재까지 겹쳤으니 이를 감안한 적극적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적극적 지원 대책이란, 앞에 언급한 여덟 가지 지원이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니 그 다음은 고2가 되어야 한다.

열째,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니 엄격한 방역의 지침 준수가 가능한 학교부터 등교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학생수가 60명 이하인 학교에 등교 시기의 자율권을 준 것처럼 학생수가 너무 많아서 지침 자체를 지키기 어려운 경우에 대한 자율권도 필요하다.

“학교는 수업 중에는 신천지고, 쉬는 시간에는 이태원 아니냐”는 한 교사의 일침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거기에 “교무실은 콜센터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그렇게 방치해 왔다면, K-방역의 최전선이라는 학교를 좀 바꾸는 계기로 만들면 안되는 것인가? 최전선이 아니라 최후방이 되면 안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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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 2020-05-12 23:29:26
최근 읽었던 글 중에
현실 제대로 직시한 글.
단연 최고.
ㅇㅇㅎ, 보고 있냐?

진지 2020-05-12 21:33:03
교육부에서 이 기사를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차차 2020-05-11 04:59:49
수업할땐 신천지 쉬는시간에는 이태원클럽 맞는말이네여정부는 학교현실사태 팍악도 하지않은체 등교를 하려고 하면 안된다ㆍ지역감염다시작됐으니 그냥 등교미루자ㆍ안전이우선이지 공부좀미룬다고큰일나는건 아니지않나 온라인수업그대로유지하는게 좋을거같네요

초딩맘 2020-05-10 23:52:14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네요
이렇게 해도 아이를 보낼까말까인데 현 상황이 너무 갑갑하네요

교사 2020-05-10 23:26:31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