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나는 온라인 시대, 기는 관료들
[한희정 칼럼] 나는 온라인 시대, 기는 관료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4.27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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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수업용 원칙에 비대면수업을 구겨 넣으라는 지침에 교사들이 질식한다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 교사

4월 20일, 초등학교 1~3학년까지 비대면수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는 수업 중이다. 4월 14일부터 17일까지 교육부가 준비한 대표 플랫폼인 에듀넷과 EBS 온라인 클래스 접속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해결된 상태다. 매크로를 통한 수강시간 조작 등의 문제들이 있지만 이런 문제는 원격수업만의 문제도 아니며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본다.

4월 1일부터 원격수업 테스트를 시작하고, 4월 20일부터 원격수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진짜 문제는 날아다니는 온라인 시대에 기어다니는 관료들이라고 본다. 핵심은 평소 수업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원칙을 원격수업에도 그대로 강제하고 있는 현실, 손톱만한 상자에 주먹을 구겨 넣으라는 지침의 남발이다.

3월 31일, 정부의 원격수업을 통한 개학 방침이 발표된 이후 교사들은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원격수업을 위한 플랫폼을 결정하고, 원격수업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히고, 수업자료를 준비하는 동시에 원격수업관리위원회를 통해 수업과 평가 방법, 출결 처리 지침 등을 마련해야 했다.

교육부의 가이드에 따르면 원격수업으로 인한 출결에서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5~7일의 여유를 두고 출결을 확인하고 수업 참여를 독려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가이드와 달리 원격수업이 시작되는 날부터 매일 출결현황을 보고하라는 어이없는 공문이 시행되었다. 그러니 교사들은 매일 오전 10시에는 각 반별 출결현황을 보고하고, 결석자가 있으면 유선 전화 등을 통해 수업참여를 독려하는 콜센터 아닌 콜센터 직원이 되어 버렸다. 결석생이 있어서 그대로 보고하면 담당 장학사가 전화를 해서 그 학교는 왜 결석생이 있냐고 다그치는 일도 벌어졌다는 얘기도 직접 들었다.

가이드는 5~7일간 수업 참여를 독려하라고 했는데 왜 매일 출석률은 보고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출석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 원격수업에도 그대로 구현되길 바라는 마음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럼 원격수업 시작하고 하루 보고하고 끝냈어야 하는 일이다. 에듀넷과 EBS 접속 자체가 불가능했던 4월 14일부터 17일까지 학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선생님 안들어가져요, 선생님 안되요, 선생님 숙제 못했어요” 문자와 전화는 계속 오고, 일일이 전화나 문자로 대체 경로를 안내하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된다고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다 보면 하루는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출결현황을 보고하라고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현장 교사들의 아우성이 전달된 것인지, 더 이상 출결 현황을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문이 시행되었다. 문제는 ‘왜 이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또 있다. “원격수업 출결·평가·기록 지침”에서 “학급별 시간표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 “교육행정종합정보시스템(이하 나이스)에 입력된 시간표대로 수업을 운영”할 것을 강제하는 몇몇 교육청과 학교의 문제다. 원격수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여전히 대면수업의 원칙을 적용하라는 그들의 경직성은 단순히 그들이 ‘원격수업을 경험해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더 근원적인 인식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가죽이 터지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왜 출결과 평가라는 문 앞에서는 거부당하는 것일까? 교사들이 한가하게 원격 수업이나 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더 일하도록 괴롭혀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지 않는 한 나오기 어려운 발상은 아닐까? 원격수업 한다고 더 한가하게 노는 교사들이 더 많아질까 한없이 걱정하는 그들의 염려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친절하게 현실을 말해 주면 이렇다. 담임교사들은 출석률 제고를 위해 아침부터 전화를 돌리고, 담당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하고, 쉬는 시간 틈틈이 우리반 결석생 확인하며 전화를 하고, 이런 저런 회의에 참여하고, 담당 수업 참여 학생 과제 확인하고, 미참여 학생 확인하다가 퇴근한다. 정작 다음 수업을 위한 자료 준비나 촬영은 퇴근 후 집에서 해야 하는 무급 초과근무를 거의 매일 같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온갖 방역 수칙을 잔소리처럼 아이들에게 외쳐대며 대면수업을 하는 것보다는 ‘내 한 몸 고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나만의 원격수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교사들을 어찌나 못믿는지 이런 지침도 남발한다.

온라인 개학에 따른 복무에 대해 알림

- 온라인 개학도 등교 개학과 같이 정상근무이므로 수업 중에는 외출, 조퇴, 출장은 자제하여 주시고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는 보결 배정(연가, 병가 포함)을 해야 합니다.

- 이에 근거하여 일과운영도 수업 중에는 회의도 연수도 할 수가 없네요. 업무추진에 참고하여 주세요.

- 연가, 병가가 발생할 경우 보결 배정을 해야 하므로 나이스/ 교육과정/ 반별 시간표/ 입력도 완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온라인 수업 기간에 발생한 결강도 추후 결강수업시수에 들어갑니다.

이 지침이 어이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지난 월요일 대상포진 의심 증상으로 병가를 쓰고 병원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보결에 들어가야 하니 원격수업 플랫폼의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미 수업 내용은 다 만들어서 탑재했고, 수업 참여에 대한 피드백도 병가 중인 내가 할 것이고, 미참여 학생 연락도 내가 다 할 것인데, “왜 보결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지침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격수업 기간 중에 보결 들어간 교사는 수업도 안하고 그냥 보결수당을 받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면수업에서나 적용 가능한 원칙을 원격수업에도 그대로 구겨 넣으니 발생하는, 지극히 예측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관료들은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예측이 안되는 것일까? 원격수업에서는 연가를 쓰거나 병가를 쓰더라도 실시간 온라인수업이라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수업은 미리 준비해서 탑재하기 때문에 담당교사가 하게 된다. 그러니 수업 탑재나 피드백이 불가할 정도로 중증이 아닌 경우에는 연가나 병가보다는 “재택”이 가능하도록 복무지침을 변용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오프 수업과 동일하게 근무시간을 적용하여 대면수업에 준하여 수업이 있는 시간 회의도 하지 말라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실제 원격수업을 운영해보면 진짜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간은 오후 시간이다. 오전에는 학생들이 각 플랫폼에 접속해서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댓글을 달거나 과제를 제출한다. 이때는 전화를 하고 연락을 하는 것이 자체가 공부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오전에 올라온 댓글이나 과제를 보면서 오후에 피드백을 해준다. 어렵다고 한 아이들에게는 전화를 하거나 줌을 활용해서 어떤 게 어려웠는지 물어보고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니 날아다니는 원격수업 시대에 기어다니는 관료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사들이 원격수업을 날로 먹으며 편하게 보낼 것이라는 착각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어떻게 전국적으로 이런 발상이 가능한가? 그 관료들의 주변에는 그런 교사들만 있나 보다. 내 주변에는 밤새 촬영하며 수업 올리고, 아이들이 올린 댓글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 댓글 한 줄에 하루의 피곤을 풀어내는 그런 교사들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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