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낙수효과’는 괜찮고 ‘무임승차’는 부도덕한 것인가?
[한희정 칼럼] ‘낙수효과’는 괜찮고 ‘무임승차’는 부도덕한 것인가?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4.09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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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교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우리의 길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정릉초교사

4월 9일, 드디어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모호함이 만들어내던 어수선함은 3월 31일 교육부 장관의 온라인 개학 발표 이후, 발 빠른 대응과 준비의 속도전으로 잠시 시야에서 사라진 것 같다.

교과서 배부 일정 수립, 학교별 원격수업관리위원회 구성, 학교 보유 스마트 기기 대여, 플랫폼 결정, 교육과정 운영계획 수정, 원격수업 운영방식 협의, 교사 연수 등을 진행했다. 교사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잠재력을 쏟아내고 있다. 학교별 계획안을 서로 공유하면서 참조하고, 먼저 만든 원격수업안을 공개하고, 좋은 자료들을 주고받는다. 내가 목도한 현장은 “교사들의 집단지성을 믿는다”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다.

온라인 개학을 하루 앞 둔 4월 8일, 교사들 커뮤니티에는 부산일보의 기사 캡쳐 화면이 돌고 있었다.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 묻어가는 무임승차 교사를 막기 위해 학급별 시간표 형태의 지침을 내려준 것"이라는 한 교육청 장학사의 발언에 밑줄이 쫙 그어져 있었다.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 묻어가는 무임승차 교사”라는 표현은 “일 안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라는 말만큼 아프다. 이 시국에 ‘무임승차’라도 하면 아니 할 수라도 있다면 다행인 것 아닌가?

15년 전쯤이었다. ‘협동학습’ 직무연수를 들었다. 그때 가장 생경했던 것이 “무임승차”라는 표현이었다. 4명을 한 모둠으로 구성하면서 모두에게 역할을 주는 게 원칙인데 그 이유는 “무임승차자”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습을 하는데 무임승차란 무엇인가? 꼭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고 무임승차를 판단할 수 있는가? 학습은 결국 사회적인 것이 나의 것으로 내재화되는 과정인데 이걸 역할과 기능이라는 외적 활동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아이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걸까? 끼어들 틈이 없어서는 아닐까?

그 후 나는 협동학습이 아무리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참여하지 못하는 학습자를 ‘무임승차자’로 명명하는 학습이론보다 내 마음을 끄는 이론들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10년 쯤 지나서 그런 부분에 대한 방향 수정이 있었다는 걸 확인하긴 했다. 그러나 이미 ‘무임승차자’라는 명명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 예의 하나가 바로 “무임승차 교사”다.

그런 인식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서울시교육청 역시, 중등교육과의 “원격수업 출결·평가·기록 지침”에서 “학급별 시간표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지침을 내려 교사들의 공분을 샀다. 원격수업을 시작하기 바로 전날 내려온 이 공문으로 겨우 교사들과 협의를 통해 교육과정을 짜고 준비해왔던 것을 다시 뒤집어야 한다는 상황에 교사들은 분노했고, 절망했다.

교사와 교원단체의 항의에 4월 8일 당일 저녁, 서울시교육청은 정정할 것임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사태가 진정되긴 했지만, 이런 해프닝은 참 답답한 일이다. 오히려 교육부의 가이드라인보다 후퇴하고 형식화된 안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급했다지만, 그런 지침을 만드는 과정에, 지금 이 상황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겪고 있는 교사의 모니터링이라도 받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런 웃지못할 해프닝은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보공시’다. 4월 초에 공시해야 했던 진도표와 평가 계획 등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운영 계획 공시를 휴업으로 4주 연기했다. 4월 24일까지 공시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각 지역 교육청은 4월 17일까지 탑재할 것을 지시했고, 그 지시를 받아든 학교 담당자는 4월 10일까지 서류를 제출할 것을 종용하였다.

결과적으로 교사들은 정해진 공시 날짜보다 2주나 빨리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교육과정 운영 계획이나 평가계획, 진도표 등은 현재 상황에서 어느 것도 확정할 수 없는 조건에다, 4월 9일 온라인 개학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각 부서별로 공문이 쏟아지니 공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건 낙수효과인가 아닌가? 위에서 쏟으면 아래는 그 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폭우를 맞고 쓸려간다.

교육에서 무임승차는 안되고, 경제에서 낙수효과는 긍정적이라는 이 분절적 도식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어느 부분에서 무임승차를 하고 있고, 어느 부분에서 낙수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으로 가를 것이 아니라 그냥 사회조직의 현상이다. 그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 비율이 관건일 뿐.

무임승차만 하는 교사는 없다. 승차거부 교사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나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매우 많은 경우 무임승차를 하고 있고, 또 무임승차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부의 경우 승차거부를 한다. 내가 협동학습 연수를 들었음에도 그 이론을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장교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태도와 우리가 가야할 길은 다르다. 그들은 무임승차를 비난하지만, 우리는 떳떳하게 무임승차한다. 그리고 더 나은 무임승차의 길을 나누려고 한다. 그것이 교사의 길이고 교육의 길이고 배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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