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 금치몽자(禁治夢者) 18세
[송재범의 교육해체] 금치몽자(禁治夢者) 18세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2.23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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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재범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간한 「만18세, 대한민국 유권자가 되다!」라는 자료를 보았다. ‘18세 유권자용’이라고 안내된 이 자료를 보고 조금 놀랐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의미, 선거 운동 및 선거 방법 등에 대한 간단한 안내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간단한 안내가 아니라 풍부한 사례와 자료,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 요령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

더욱 흡족했던 것은 새롭게 등장한 18세 유권자의 의미와 자세를 제시하는 장면이다. 조금 길지만 그 주요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o 유권자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인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의 민주주의의 출발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선거에서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유권자가 된다는 것은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으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o 그러나 단지 법적으로 부여된 선거권으로 투표를 한다고 진정한 유권자가 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을 하게 된 이유와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의 진지한 생각이나 의견이 선거를 통해 국가 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을 때 진정한 유권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o 우리가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자세와 태도를 갖는 것, 내 생각을 펼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학교생활, 가정생활에서부터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는 것, 이런 노력들이 유권자의 교양을 쌓는 좋은 방법입니다. 단지 이름만 유권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유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길 바랍니다.

o 투표 참여를 통해 우리는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를 내 손으로 선출하고 국가 정책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입장을 대변해 줄 후보에게 투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를 포기해버린다면 더 이상 대표자들이 내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므로 투표 참여는 단지 선택할 권리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실천해야 할 ‘우리의 목소리 내기’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o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나의 선택은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o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살아가고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에 대한 내 생각을 가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올바르게 선거에 참여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없다면 나를 대변할 대표를 선택할 기준도, 대표에게 요구할 정책도, 그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아주 큰 추상화여도 좋고, 아주 세세한 정밀화여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o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각각의 영역에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됩니다. 선거 때가 되면 각 정당들은 분야별로 중요 공약들을 제시합니다. 우선 이것부터 살펴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맞닿은 지점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그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각 지역에서는 우리 동네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해 보세요.

o 여러분도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있잖아요.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처음으로 국가의 대표를 선택하는 권리를 부여받은 당신, 내가 바라는 지역의 정책들을 결정할 수 있는 당신, 이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내가 캐치한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선거는 단지 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하고, 그 생각이 현실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두 가지 핵심 요약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총선 22호’에 새롭게 탑승한 18세 ‘뉴권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먼저, 현실 정치에 대한 정치적 판단력과 실천력을 18세가 담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이제 끝내자. 어차피 그것은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의 문제다.

2005년 선거연령이 19세로 낮춰진 이후 15년 만인 2020년에 18세로 다시 낮춰졌다. 18세의 정치 문해력에 대한 인지발달론적 기준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오랜 기간의 논쟁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획득한 것이다.

사회적 인정의 획득이라는 어려웠던 과정을 생각할 때, 당연한 권리를 가져온 것 뿐이라는 지나친 정의론적 관점이나 18세의 ‘정치적 어른성’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자세 모두 조심스럽기만 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는 이미 방향을 말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그려보라고... 그것이 추상화여도 좋고 정밀화여도 좋다고... 추상화든 정밀화든 그릴 수 없는 사람에게 그려보라는 것은 모순이다.

18세는 자기가 살아가고픈 세상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18세가 다른 성인들보다 더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둘째,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능력이 저절로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그 능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18세 유권자들이 꿈을 그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생대회도 개최하고 충분한 화구(畵具)도 제공되어야 한다. 행사로서의 그리기 대회가 아니라 마음껏 펼침의 그리기 마당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꿈을 향한 실행 과정으로 들어가면 제약사항이 너무 많다. 18세에는 결혼도 한다(민법). 18세에는 군대도 간다(병역법). 18세에는 운전면허도 딴다(도로교통법). 이런 것들도 법적 허용과는 달리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18세에는 선거권이 있다(공직선거법)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것과 비교해서 법적, 현실적 제약사항이 더욱 많다. 교실의 정치화,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 여러 가지 걱정으로 제약이 가해지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 걱정거리가 혐오의 대상이 된 현실 정치에 대한 조심스러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18세 유권자의 접근을 제한하기보다는 우리 정치에 대해 어른들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다음 조항을 보자.

<공직선거법[시행 2020.1.14.] [법률 제16864호, 2020.14, 일부 개정]>

제15조(선거권) ①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

제18조(선거권이 없는 자) ①선거일 현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선거권이 없다.

1. 금치산선고를 받은 자

이 조항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8세의 선거권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18세를 금치산선고 받은자[금치산자]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금치산자란 자기 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의사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자로서, 법원에서 금치산의 선고를 받은 법률상의 무능력자를 말한다.

금치산자(禁治産者)를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재산[産]을 행사할[治] 권리를 금지당한[禁] 사람[者]이다. 현재 18세 유권자의 처지가 이렇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도한 것일까?

이번 선거는 18세 유권자가 최초로 그들이 꿈꾸는 세상,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그려보는 축제다. 그런데 어른들에 의해 금치산자로 취급받아 축제다운 축제를 열지 못하고 있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금치산자를 넘어, 꿈[夢]을 행사할[治] 권리를 금지당한[禁] 사람[者], 즉 금치몽자(禁治夢者)가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53만명의 18세 금치몽자, 그중 14만 명의 고교생 금치몽자가 있다.

앞으로 선거일까지 18세 뉴권자의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보완 대책들도 요구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과 대책들이 만들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방향성만은 꼭 견지되어야 한다. 18세 뉴권자들을 금치몽자(禁治夢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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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2020-02-23 16:41:48
좋은 말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