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혁신추진방안 격돌 .. 제2 사학법 파동 재연될까?
사학혁신추진방안 격돌 .. 제2 사학법 파동 재연될까?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2.19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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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등 사학단체 주관으로 열린 문재인 정부 사학 혁신 방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모습.

역대로 진보정부는 개혁이나 혁신을 앞세울 때 사립학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사립학교 이사장을 대표적 기득권으로 내세우고 비리세력으로 내몰아 끌어내린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불만과 학교라는 민감한 소재를 최대한 이용하면 효과는 극대화 된다. 사학은 그렇게 좌파 세력의 단골메뉴가 됐다.

문재인정부도 마찬가지. 지난해 교육부는 사학혁신추진방안을 통해 사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여당의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즈음이다.

사학혁신추진방안에는 ▲ 학교법인 임원 간 친족관계와 이사장·설립자와 친족인 교직원 수 공시 ▲ 설립자와 설립자 친족의 개방이사 임명 금지 ▲ 학교법인 임원이 1천만 원 이상 배임·횡령 시 임원취임승인 취소 ▲ 중대 비리 교직원 징계 재심의 관할 교육청으로 이관 ▲ 사립 초붕고 학교운영위원회 심의기구화 등이 담겼다.

사학 경영자의 인사 재정 운영권을 박탈하고, 강력한 규제를 통해 사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립학교법과 맥을 같이한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전교조등 시민단체가 사학 개방이사로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이사장의 친인척은 학교장 겸직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학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당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순교를 각오하고 투쟁하겠다”는 강력한 반발에 결국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사학법이 당초 개정안에서 후퇴하자 이번에는 전교조가 ‘근조(謹弔) 사학법’이란 성명을 내고 정부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19일 사립학교법인 단체들이 정부의 사학혁신추진방안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문재인 정부 사학 혁신 방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고 사학 죽이기 정책 중단을 호소했다. 토론회는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한국전문대학법인협의회, 한국대학법인협의회 등이 주관했다.

이 자리에서 사학단체들은 교육부가 발표한 사학 혁신방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학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학의 자율성 훼손 정책이라고 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유재원 한국영상대 총장은 “사학법인 임원 및 교직원의 친족 관계를 공개토록 한 것은 사학운영의 자주성 및 사생활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사학 임원들의 시시콜콜한 개인정보를 모두 노출시키는 것이 법인의 책무성 강화방안으로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유 총장은 이어 “개인의 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사학교직원들에게 ‘친족관계’란 프레임을 씌워 비리가 있는냥 몰아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유 총장은 또 교육부 장관이 사립대학에 2년마다 외부 회계감사를 받도록 한 것 역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불명확한 회계부정을 근거로 사학에 외부 회계감사를 강요하는 것은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학 설립자 가족의 개방이사 임용을 금지한 것에 대해서도 사학측은 날을 세웠다.

음선필 홍익대 교수는 “외부인에게 개방이사를 맡도록 하는 것은 사학의 가장 중요한 설립 목적인 건학이념 구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설립자의 친족이 개방이사를 맡는 것이 건학 정신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같은 혈연관계를 문제 삼아 개방이사 자격을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예산회계와 재정지원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는 법인회계와 교비회계를 구분한 것은 후진적 제도라고 비난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법인회계와 교비회계를 구분한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어 이런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며 “많은 사학이 법인회계로 내야 할 돈을 교비회계로 내서 사학법을 위반했는데, 애초에 이 둘을 통합하면 위법소지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또 “기부금도 모두 교비회계로 전입하도록 했는데 이는 사학의 자율에 맡겨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사학재정결함보조와 같은 재정지원을 무기로 사학을 옥죄는 처사엔 분통이 터져나왔다.

차동춘 학교법인 진성학원 이사장은 “10여 년째 등록금을 동결한 뒤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학들에게 걸핏하면 재정지원을 삭감하겠다고 압박하고 사학 인사권을 제약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립 초중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화 하려는 것에 대해 차 이사장은 “법인 이사회의 예결산과 인사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학교법인의 기본권을 해체하려는 초법적 논리”라고 비판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의 용모나 복장, 교육과정운영, 학교시설운영, 학칙제정과 예결산에 이르기까지 학교 운영 전반을 단위학교 최고기구다. 그동안 공립학교는 심의기구로, 사립은 설립 특수성을 인정, 자문기구로 운영돼 왔다.

이날 토론회서 만난 한 참석자는 “교육을 수단으로 한 정치적 게임에 사학이 또 희생양이 될 거 같다”면서 “사학가족과 교직원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는 사학혁신추진방안은 교육이란 이름의 또다른 폭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학이 서로 다른 건학이념을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할 때 교육도 민주주의도 성숙하는 법인데 정부는 본질은 외면한 채 전체주의적 사고에 빠진 거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교육부는 사학 혁신방안 추진을 지속할 전망이다. 송선진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은 “사학 혁신방안 관련 입법예고 기간에 이 같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사학혁신추진방안을 골격으로 한 사학법 개정안이 상정될 확률이 높다.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했던 사학법 파동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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