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교복 입은 시민은 있지만, 교단에는 시민이 없다.
[한희정 칼럼] 교복 입은 시민은 있지만, 교단에는 시민이 없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1.22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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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가 되어버릴 정치교육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대표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끝나고 나는 보수단체에 의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아무리 페이스북 담벼락을 살펴봐도 선거 관련 내용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나의 프로필에 직업, 근무학교, 출신학교 어느 것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내가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선거법 위반을 건 것일까 어이없는 일이었다.

서울 선관위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 그런데 그 보수단체는 다시 같은 내용으로 검찰에 고발을 했다. 8월 말, 북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먼저, 그들은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과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대조하여 나를 00초 교사 000으로 ‘특정’하였다. 그 동영상은 2015년 8월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있었던 교육부 주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초등교과서 한자병기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반박하는 모습이었다. 그 다음 그들이 문제 삼은 페이스북 게시물은 2016년 1월 15일, 용산참사 7주기를 알리는 기사를 공유한 것이었다. 그 기사의 말미에는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경주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는 한 문장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선거 관련 내용이므로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고 분노했지만, 선관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혐의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를 받으며 진술했던 내용을 교묘하게 엮어서 ‘기소유예’를 때렸다. 차라리 기소를 하지,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 순진하게 찾아가서 조목조목 진술한 내가 바보였음을 알고 뒤늦게 후회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은 검찰의 통보를 받고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불문경고를 내렸다. 지금도 나의 인사기록카드 비고란에는 ‘불문경고’ (2016년 12월 00일)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정황을 본다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2015개정 교육과정,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토론하던 나는 이미 표적이 되어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사례를 일반화해서 모든 교사들도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주변 교사들에게 들려오는 이야기, 직접 들은 이야기는 페이스북에 정치 관련 비판을 몇 번 올렸다고 지역교육청 장학사가 전화를 해서 주의를 주더라는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2019년에 겪은 일들이니, 혁명은 교단을 뺀 나머지 부분에서만 일어난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요즘 페이스북에서 종종 하는 일은 “교사나 공무원이 이런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를 하면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2020년 4월, 만 18세가 된 약 14만 명의 청소년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환영할 일이다. 내가 만 18세였음에도 선거권이 없던 대학생 시절 “낙랑 18세 운동”을 했던 걸 생각하면 왜 이리 오래 걸렸나, 한탄스럽기도 할 정도다. 그러나, 정치적 금치산자로 교단에 서서 이미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에 징계까지 당하다 보니 ‘환영’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선거 연령 인하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 환영하였지만, 우려의 부분을 짚어주었다. 선거권이 없었던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특정 정당의 점퍼를 입고 후보의 명함을 돌리는 학생들이 있어서 학교 ‘안’에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이런 것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까 걱정된다는 거다.

‘선거 교육’을 하라는데, 교사들이 정치적 시민이 아니라 정치적 천민인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반문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학교에 하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지역 선관위 같은 곳에서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급진적 정치교육론자들은 교문 앞에서 정치교육이 멈춰 있음을 비판하는데, 교문 안에서 뿐 아니라 교문 밖에서도 정치하지 말라는 현실은 왜 외면하는지 묻고 싶다.

지금 고등학생의 부모 세대인 40~50대 어른들이 다녔던 그 때 그 시절의 학교처럼 교실 공간이 녹록하지 못하다. 교단에서의 말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몇 백 배 커졌다. 언제 녹취를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깟 선거교육, 왜 못하냐’고 하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훈계질이다. 이 시대의 어르신들은 제발 선거 연령 인하에 대해 환영과 동시에 두려움과 우려를 말하는 교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

과도기의 혼란은 어쩔 수 없다. 그 혼란을 최소화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주어진 권한이라는 것이 너무 없고, 숙의하고 합의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교사와 학생이 이 과도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은 쉽게 예상 가능하다. 그 두려움 속에서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들은 정치교육 혹은 선거교육을 금기로 삼아야 할런지도 모른다. 까딱 잘못하면 선거법, 정치 중립성 위반으로 엮기기 십상이니까.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고 했던가? 교복 입은 시민과 교단에 선 천민은 어떤 춤을 함께 출 수 있을까? ‘교복 입은 시민인 학생’이 ‘교단에 선 시민인 교사’와 강압과 교화가 없는 토론과 토의의 장을 펼쳐가면서 진짜 시민이 되는 것은 얼마나 더 오래된 미래여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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