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칼럼] 분필의 힘
[박정현 칼럼] 분필의 힘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1.18 2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박정현 인천만수북중학교 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

“저는 교과서하고 분필 하나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수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선생님께 “어떤 매체로 수업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드렸는데, 수줍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이었다.

요즘 학교에는 공간혁신 사업이 한창 유행이다. 기존의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신은 환영할 일이다. 공간혁신 중 많은 부분은 스마트 교실화에 초점이 있다.

기존의 전자 칠판을 넘어 스마트 기기를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새로운 매체 환경을 고려해서인지 크로마키의 촬영과 편집이 가능한 공간들도 크게 늘고 있다. 고가의 스마트 패드와 무선 통신 시설도 확충되고 있다.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는 환경에 발맞추어 선생님들도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수업을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동영상의 제작과 편집을 배우는 강좌는 인기리에 마감되고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대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분필 하나’가 수업의 도구라는 대답은 뭔가 어색하게 들린다. 새로운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알트스쿨(Altschool)은 2013년 구글의 엔지니어에 의해 설립되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해 더 관심을 끌었고, 유명 인사들의 투자 액수만 1억 7,500만 달러에 달했다. 알트스쿨은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용 스마트기기를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인화된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주목받았다.

언론에서는 미래형 교육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고 미국 전역에 9개의 학교가 생겼다. 그러나 학교의 성과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제기되었고, 재학 중인 학생들을 전학시키는 일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몇몇 학교는 폐교되었으며, 나머지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알트스쿨의 사례는 아주 중요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매체를 활용하더라도 결국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사’에 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학습에 흥미를 높일 수 있게 하거나, 활동 내용을 가시적으로 쉽게 보여줄 수는 있지만 학습 내용을 배우고 아이들이 자신의 맥락 속으로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지만 교사의 가르침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스마트 기기 자체가 똑똑한 것인지, 거기에만 의존했을 때 지식 체계를 구성하고 새로운 정보를 자신에게 맞게 재구성할 수는 없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학교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교사의 역할을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아니다. 교실마다 아이들의 성향이 조금씩은 다르고, 날마다 교실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다르다.

가장 강력한 수업 도구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달리하는 말의 크기와 빠르기 그리고 제스처. 프로그램화 되어 있지 않고 살아있는 대화를 나누었을 때 아이들은 감동을 받고 변화할 수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 분필로 필요한 내용을 적어줄 때 아이들은 노트에 기계적으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가슴에 수업의 내용을 적게 된다.

화려한 수업 기법과 현란한 매체들이 우리 교실로 들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수업 매체는 우리 선생님들 자신임을 잊지 말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