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③] 대입 공정성, 새로운 담론을 향하여
[송재범의 교육해체-③] 대입 공정성, 새로운 담론을 향하여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1.16 00: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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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의 교육해체-②]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대입 공정성 논의에 대한 해체 작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의식은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입 제도의 게임에 몰두해 가출한 (대학)교육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지 않고 있다. 둘째, 공정한 달리기 코스에만 집중하다보니 불공정한 출발선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 사회가 전개해야 하는 대입 공정성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방향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교육적 관점의 견지와 불평등한 계층 구조의 반영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반영하여 대입 공성성에 대한 담론을 다음처럼 두 가지로 펼쳐본다.

1) 교육적 관점에서 대입 공정성을 논의하자.

교육적 관점에서 대입 공정성을 논의하자는 제안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 ‘교육적 관점’이 필요하듯이, 대입 공정성 문제에 있어서 ‘교육적 관점’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대입 공정성 담론은 정치적, 사회적 관점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교육적 관점’에서의 공정성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종전의 대입전형 공정성 논의는 교육 자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효용성과 정치적 타협과 균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김재웅 외, 2019).

교육적 관점이란 교육이 다른 어떤 부문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본유의 목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장상호, 1997, 2005). 이런 입장에서 교육 기회의 공정성(대입 공정성)이란 “모든 학생들이 제공되고 있는 교육으로부터 차별 또는 배척당하지 않을 권리”(김신일․박부권, 2005)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대입 공정성에 대한 ‘교육적 관점’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공정한가)라는 분배정의(分配正義)의 일반 원칙에서 논의를 출발하여야 한다. 분배정의의 일반 원칙이라는 강력한 토대 위에서 대학 교육의 성격과 본질적 목적을 강력하게 밝힐 때, 대입 공정성에 대한 ‘교육적 관점’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후 맥락이 없는 무조건적인 ‘교육적 관점’의 요구는, 자칫 분배정의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라거나 교육계의 이기성이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흐를 수 있다.

분배정의의 일반 원칙에서 제시하는 원리는 크게 평등(equality), 능력(실력) (merit), 필요(need), 효용성(efficiency) 등 네 가지가 있다(Scott et al., 2001).

1) 평등(equality) : 분배할 결과가 같아야 한다는 원리다. 모든 분배에서 나눈 결과가 똑같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이나 실천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배분을 겨냥하고 있다.

2) 능력(실력)(merit) : 분배가 능력(실력)이나 기여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동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능력은 평등의 원리에서 벗어난 분배를 정당화하는 원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 상태를 정당화하는 핵심적 원리라 할 수 있다.

3) 필요(need) : 불평등의 사태가 지나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하는 원리를 표방한다. 능력의 원리나 다른 어떤 기제에 의해서 분배의 불평등이 심화될 때, 그 심화가 개인의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4) 효용(efficiency) : 사회적인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원리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생산적인 개인의 동기와 의욕을 꺾음으로써 결국 사회 전체의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본다. 이 점에서 평등하지 않게 배분하는 것이 효용을 증대시킨다고 본다.

이 네 가지의 원리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각 사회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입 공정성 논의는 대입 제도에 국한되기보다 이러한 네 가지 원리의 조합에 따라 일반적인 교육기회 배분의 공정성을 어떻게 추구하고 ‘교육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와 연계되어 시작되어야 한다.

왈저(M. Walzer, 1983)가 지적했듯이, 분배의 정의는 분배되는 ‘재화’의 성질에 따라 달리 규정되어야 한다. 교육기회 분배의 공정함은 공직 분배의 공정함과 달라야 한다. 따라서 대입과 같은 교육기회 분배의 정의는 교육이 무엇이며, 그 의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검토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김재웅 외, 2019).

따라서 대입 공정성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탐색에 있어서 분배되는 대학교육의 기회, 즉 대학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회는 어떤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학종과 수능의 비율은 몇 %로 할 것인가? 학종의 투명성 확보 방안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출발해서는 안된다. 그 출발은 ‘대학교육이라는 교육적 가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교육적인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대학교육이란 무엇인가? 대학교육 기회는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평등, 능력, 필요, 효용)

2) 불평등한 계층 구조로부터 대입 공정성을 논의하자.

리처드 리브스(R. Reeves)는 화제의 책 『20 vs 80의 사회』를 통하여 미국 사회의 고착화된 불평등 구조와 중상류층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교육 공정성(대입 공정성)과 관련하여 참고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리처드 리브스, 2019)

1) 최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라는 기존 대결 구도의 프레임에 벗어나 상위 20퍼센트의 중상류층(upper middle class)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2) 현재의 불평등 지표들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이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편리한 허구’다.

3)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4) 계급의 영속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기회 사재기(oppertunity hoarding)’다.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달리 성공의 기회는 상위 20퍼센트가 사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

5) 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이다. 기회 사재기와 이러한 사재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리브스(R. Reeves)가 지적하는 미국 중상류층의 행태는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도 유사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모습은 매우 익숙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가슴에 계층 간 낙인을 찍는 이른바 수저론으로 표현된다.

계층간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이런 현실이 교육 공정성(대입 공정성) 논의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즉각적인 반응으로 본다면, 상위 20퍼센트에게 불평등한 세상을 만든 책임을 묻기 위해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 담론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공정성(대입 공정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과정의 공정성만이라도...’를 외치지만, 중하위 80퍼센트의 심연 깊은 곳에서는 결과가 공평해야 정말로 공정한 것이 아니냐고 울먹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 사회적 계층 수준에 따른 대학 입시제도 인식 분석」(문정주․최율, 2019)이라는 논문을 보면, 계층 간 갈등과 이해관계가 어떻게 대입제도 문제에 복잡하게 투영되어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다.

저자는 대입 제도가 배제(exception)의 법칙을 통하여 대입 제도를 보다 자기 계층에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계층 간 전략 투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계층 간 투쟁의 결과 계층 의식이 상층일수록 대입 제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결과는 대입 제도의 담론 형성에서 계층 간 영향력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입 제도의 변화는 배제의 법칙과 능력주의의 가치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인 사회구조적 압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고착화되는 계층 간 불평등의 토대 위에서 논의되는 대입 공정성 문제는, 능력주의 기반의 대입 논의를 부정하기보다는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하면서도 복잡한 대입 제도의 지형을 구성하는 계층 간 배제의 속성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대입 제도에 작용하는 계층 간 배제의 속성이 사실이라면, 그 현실을 인정하고 대입의 공정성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대입 공정성 논의에 있어서 교육적 관점에 대한 서생(書生)적 문제 의식과 함께, 우리 현실에 놓여있는 계층 간 배제 구조에 대한 상인(商人)적 현실 감각도 필요하다.

대입 공정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정치사회적 논리가 아닌 교육적 논리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에 있어서의 소위 ‘정의로운 차등’(조희연, 2018)도 마찬가지다. 출발선의 불평등을 보정하기 위한 지역균형 전형, 기회균형 전형 등과 같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정치사회적 차원의 특별 정책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교육적 입장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라는 주장도,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책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는 “교육 접근권”이라는 교육적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을 통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갖고 있는 교육적 의미의 철저한 적용을 통해 교육 공정성을 확보하고, 이러한 교육적 기제가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을 개혁하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사회가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사회를 바꾸는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M. Apple, 2015)은 “우리가 학교를 변혁의 중요한 지점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경주하고 있는 노력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고 물으면서, 이 질문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쉬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러면서도 위대한 교육자 선배들이 이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바친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교육의 역할이 단지 지배 관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지배 관계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코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았다고 애플은 자랑스러워 한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 교육적 견고함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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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2020-01-16 20:12:13
좋은 말씀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