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 ②] 대입 공정성 논의, 교육적 관점은 어디로?
[송재범의 교육해체- ②] 대입 공정성 논의, 교육적 관점은 어디로?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1.11 1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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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범(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공정한 대입, 공정한 교육 / 국민과 함께 만드는 교육 희망 사다리"

지난해 11월 28일 교육부에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위의 문구는 방안을 발표하는 교육부 장관 뒤쪽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적힌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부가 발표한 내용에 대하여 갑론을박하였다. 대부분이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졸속적인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었다.

나는 발표 내용에 대한 검토 이전에 위에 적힌 현수막의 글귀를 보면서 비판을 넘어 절망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글귀 속에서 ‘교육’은 보이지 않고 ‘정치’만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침에 있어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국민과 함께 만드는’이라는 문구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대입 정책을 만든다는 의미로 본다면 문제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굳이 ‘국민’이라는 주체를 앞에 내세워야 했을까?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이니까 주체가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 문제에 있어서 교육적 관점의 고민보다는 ‘국민’을 앞세운 정치적 고려나 여론이 우선이었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교육 희망 사다리’라는 문구는 어떤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곧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현실에서, 교육부가 공정한 대입을 고민하는 목적이 출세를 위한 공정한 사다리 놓기 작업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해야 하는가?

원래 대학교육의 목적은 이런 것이고, 이런 것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하여 대입의 기회는 어떻게 제공[분배]되어야 하는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제공[분배] 방식의 공정성을 위해 세부적인 방안을 이렇게 고민해보았다라는 식으로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즉, 공정한 대입 논의의 목적이 공정한 출세 사다리라는 게임 규칙 만들기가 아니라, 본질적 대학교육의 실현을 위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입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 해체

“Justice is the first virtue of social institutions, as truth is of systems of thought.” (사상 체계의 제 1 덕목을 진리하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 1 덕목이다)(J. 롤스, 1973)

“공정성이야말로 굴곡의 현대사를 몸으로 살아낸 한국인들의 가슴 밑바닥에 인두로 지져낸 낙인처럼 찍혀있는 가치다. 공정성이란 단추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겪은 좌절과 부당함과 그래도 실낱같이 붙들고 있는 희망들이 모두 응축되어서 뜨겁게 달구어져 있는 ‘뜨거운 단추(hot button)’이다. 뜨거운 단추는 사람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한다. 뜨거운 단추 이후에 또 누를 수 있는 다른 단추는 없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비장한 심정으로 이 위험한 단추를 눌렀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장덕진, 「공정성, 그 뜨거운 단추」, 2010)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2017. 5. 10)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 1 덕목이다”라고 말하는 롤스의『정의론』을 읽으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새삼 느낀다.

그리고 “공정성이야말로 굴곡의 현대사를 몸으로 살아낸 한국인들의 가슴 밑바닥에 인두로 지져낸 낙인처럼 찍혀있는 가치다”를 읽으면서, 정의의 문제가 단순한 가치 탐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현실 앞에서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는 연설을 들으면서, 그 소망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정의(공정성)의 문제는 중요하고도 우리의 삶과 직결되기에 논쟁의 불판에 올릴 때마다 늘 뜨겁다. 더구나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가느냐가 출세와 성공으로 여겨지는 우리 현실에서, 대입 공정성의 문제는 뜨거움을 넘어 불판을 태워버릴 기세다. 이런 뜨거운 불판 위에서 대입 공정성에 대한 다양한 ‘깨기’와 ‘해체’ 작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강태중의 「대입제도, 제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자」는 주제로 제시된 ‘해체’ 작업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강태중, 2019). 이제 강태중의 논의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대입 공정성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해체 작업을 시작해보자.

강태중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입 공정성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착화된 틀을 갖고 있다

첫째,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건드려야 할 제도상의 요소를 수능과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국한시키고 있다. 수능과 학종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공정한 전형 방법이냐, 정시를 확대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수능과 학종을 좀 더 공정하게 만들 수는 없는가로 모든 이야기가 수렴된다. 일종의 수능-학종 프레임에 갇혀있는 꼴이다.

둘째, 수능-학종 프레임 안에서 공정성의 준거를, 대입이라는 게임이 어느 집단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에서만 찾는다. 제도가 ‘공정해야 한다’는 인식에 잡혀 있는데 이런 인식은 맥락에 따라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1)획일적이어야 공정하다고 본다.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 수능은 응시자 모두를 똑같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공정하다는 것이다. 학종은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간주된다. [획일성]

2) 객관적이어야 공정하다고 본다. 당락 결정이 주관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역시, 수능을 옹호하는 생각이다. 수능과 같이 객관적인 점수를 내주는 도구에 비하여, 입학사정관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바탕을 두는 학종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객관성]

3) 절차가 투명해야 공정하다고 본다. 학종을 ‘깜깜이’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데서 드러나는 인식이다. 전형자료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기준으로 ‘채점’되는지 낱낱이 공개될 수 있어야 공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투명성]

4) 결과가 평등해야 공정하다고 본다. 대입 사정을 끝낸 결과 어떤 집단들이 더 많이 주요 대학에 합격했는지, 그 상대적 비율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따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합격생의 소득계층별 분포, 사는 지역, 재학하는 고교의 종류(특목고․자사고․일반고)의 분포를 따져 대입 공정성을 따진다. [평등성]

그럼 이런 고착화된 틀과 통념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대입제도는 대입을 위해 경쟁하는 학생들의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게 당락을 판정해 줄 수 있으면 공정한 것이라고 여긴다. 수능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모든 수험생을 차별 없이 똑같은 조건에다 두고 시험을 시행하고, 정답 시비가 없는 ‘객관식’ 문제로, 누구나 우열이 확인 관리된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본다.

학종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수능보다 학종을 채택했을 때 자사고․특목고 등 출신의 유리함을 배제시킬 수 있고, 학교 밖의 자원과 배경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안에서의 활동만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한 게임’에 골몰하는 입장은 중대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런 주장에 따라 ‘공정해진’ 게임은 이미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 되는 자가당착을 맞게 된다. 예를 들어, 정시 확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상처럼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대입 기회를 배분하면 공정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그런데 어느 대학(어느 학과) 커트라인이 수능 300점이라고 한다면, 300점을 받은 학생은 합격이고 299점을 받은 학생은 불합격이다. 300점을 받은 학생은 당연히 300점이 ‘실력’을 입증하기에 그 자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점수가 얼마나 그 학생의 것인가? 가정 배경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300점 가운데 얼마만큼을 수험생 자신의 ‘실력’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정의와 공정성을 탐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정의로운(공정한) 기회 분배를 위해 불리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대입 제도를 어느 편의 유불리에만 관심을 둘 경우, ‘대입’이라는 기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이유를 갖지 못한다. 즉, 대입기회 획득에 있어서의 유불리만 따질 때, 대입은 돈, 권력, 명예처럼 그것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쟁해서 차지해야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대입이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픈 현실이다.

대입은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대입이 부를 추구하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려는 이유가 직업을 얻고 안락하게 생계를 꾸려가려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다고 교육을 그런 목적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아니다. 교육은 돈과 권력, 그리고 직업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인 이익도 중요하지만 전인적 인간 형성, 자아 실현, 또는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파울로 프레이리, 2015) 등 거창한(?) 그 무엇이 교육의 본령에 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교육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와 권력이 교육의 고유한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대입 공정성을 논의할 때 ‘대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도 않은 채, 대입 기회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관성에서는 수능이 무엇을 재는지, 학생부의 기록으로 무엇을 저울질하게 되는지 깊이 따져볼 이유가 생겨나지 않는다.

대입 경쟁도 부를 향한 기업인들의 경쟁이나 권력을 향한 정치인들의 경쟁과 다름없이 취급된다. 원래 교육이 세속의 가치를 초월하는 어떤 것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며, 심하게는 이제 그것을 인정하려들지도 않는다.

대입제도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합의하는 ‘잣대’로 ‘점수’를 규정하고 당락을 가르면 그만인 것일 뿐이다. 대입에 대한 세속적 셈법과 그 기회를 쟁취하려는 전략들에 의해 교육의 본연은 유린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정치와 경제에 종속화된다.

셋째, 대입 공정성에 매몰되다 보니, 우리의 학교 교육은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겨를이 없다. 대입 문제로 정부와 온 국민이 씨름하고 있는데, 그 고민과 씨름의 혜택으로 초중등 교육이 좋아지고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갈수록 더 망가지고 있다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학종도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미 학교 교육은 ‘학교생활기록’을 상급학교 전형자료로 활용하면서부터 황폐해졌다. 학교는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학생부를 기록 관리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질돼 버렸다(강태중, 2018).

학생부 기록은 상급학교(대학) 입학 전형에서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진학이 절실한 학생들은 그런 기록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 기록을 위한 경쟁에 가족, 인맥, 권력이 동원된다. 이렇게 경쟁이 첨예해지면, 기록을 담당하는 교사나 학교는 합심하여 아이를 키우기보다, 학생부 기록을 두고 서로 견제하며 시비하는 관계로 전락한다.

게다가 이때 ‘기록’이라는 것은, 누구도 ‘사실 그대로’라고 믿지 않을 것이 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기록은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인식되며 학종은 ‘괴물’이고 ‘위선’(이기정, 2018)으로 취급된다.

물론 학종에 대한 이런 비판만큼이나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방해하는 수능의 문제점도 많다. 수능과목 중심의 교육과정 구성, 학원 수업을 위해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무시 등 익히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학종의 불투명성에 대한 저항으로 수능 확대를 주장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수능으로 인한 이와 같은 학교 교육 파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2회 연재 합니다. 2화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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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입니다 2020-01-12 11:56:14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