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범의 교육해체-①] ‘교육 깨기’ 를 넘어 ‘교육 해체’의 문법으로
[송재범의 교육해체-①] ‘교육 깨기’ 를 넘어 ‘교육 해체’의 문법으로
  • 장재훈 기자
  • 승인 2020.01.01 00: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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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입니다. 지금부터 [교육 깨기에서 교육 해체로]라는 칼럼으로 우리 교육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해체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의 그 설레임과 배냇짓으로,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우리 교육에 대한 사랑으로 해체 작업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나이를 따지는 12가지 띠를 말할 때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이 쥐띠입니다. 금년이 바로 쥐띠 해입니다. 쥐띠의 출발과 함께 우리 교육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교육 깨기에서 교육 해체로]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송재범 서울교육연구정보원장

경자년(庚子年)의 서울쥐가 기지개를 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쥐는 좋든(?) 나쁘든 우리의 삶과 늘 함께 하는 생물이었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은 우리에게 있어 삶의 한 영역이 아니라, 전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교육에 대해 온 국민이 한마디씩 하고 늘 걱정합니다. 개인적 걱정이 집단적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하여 논쟁을 넘어 갈등으로, 갈등을 넘어 투쟁으로 전개되는 교육의 위기입니다. 대입 공정성 문제로부터, 공교육과 사교육, 혁신교육, 민주시민교육, 학생인권과 교권, 고교학점제, 고교 서열화 타파 등 다양한 사안들에 대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럽습니다.

교육 현안에 대한 이러한 시끄러움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시끄러운 만큼 뭔가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 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라는 그람시(A. Grammsci)의 위기론이 바로 현재 우리의 교육이 안고 있는 위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전문가와 국민이 중요한 교육 현안에 대해 다양한 문제 제기와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못할까요? ‘기존의 낡은 교육으로는 안된다.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힘을 모아 외치는데도 왜 새로운 교육 담론은 등장하지 못할까요?

우리 교육에 대한 논의가 ‘교육 해체’가 아닌 ‘교육 깨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육의 현안에 대한 논쟁과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지금도 매일 언론에서는 잘못된 교육적 관행에 대한 ‘깨기’ 작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깨어지는 것은 많은데, 왜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없을까요? 그것은 ‘깨기’가 ‘해체’로 발전하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교육 담론의 탐색을 위하여 여러가지 분석과 처방들을 내놓고 있지만, 창조적 대안의 모색보다는 교육을 형해화(形骸化)시키는 깨기 작업에 열중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와 미래, 그리고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 ‘도장 깨기’에 나선 싸움꾼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교육 ‘깨기’가 아니라 교육 ‘해체’가 필요합니다.

그럼, 교육 ‘깨기’와 교육 ‘해체’는 어떻게 다를까요? 낡고 오래된 건축물을 처리하는 공사에 비유해보겠습니다. ‘깨기’가 낡고 오래되고 불필요한 건축물에 대한 철거작업 중의 모습이라면, ‘해체’는 낡고 오래되었지만 필요한 건축물에 대한 복원작업 중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해체의 대상이 되는 건축물이란 예를 들어 오래되어 일부만 남아있는 문화재 같은 것들입니다.

‘깨기’의 작업과 ‘해체’의 작업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작업의 목적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깨기는 기존의 것을 없애는 데에 목적이, 해체는 기존의 것을 분해하여 새로운 모습을 구축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깨기는 말 그대로 낡고 오래되어 불필요한 건축물을 깨뜨려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이죠. 하지만 해체는 문화재와 같이 낡고 오래되고 일부 흔적만 남아있기도 하지만, 소중한 것이기에 복원하려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작업과정에서 나오는 잔해들은 전혀 다른 취급을 받습니다. 깨기 작업에서 나온 잔해들은 버려져야 할 폐기물이지만, 해체 작업에서 나온 잔해들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보물입니다.

둘째, 작업의 범위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깨기는 보이는 것 중심으로 작업을 하지만, 해체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여 작업을 합니다. 깨기의 목적은 깨뜨리고 부수어서 버리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깨뜨릴 대상만 신경 쓰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깨뜨릴 대상도 아니고 깨뜨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해체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이는 것을 해체할 때 아래(땅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해체한 잔해들을 다시 쌓아야 할 토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해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끈끈한 연결이라는 바탕 위에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셋째, 작업의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깨기에서는 속도감 있는 작업 진행을 요구하지만, 해체의 작업은 속도를 중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습니다. 깨기의 목적은 부수어 없애는 것이고, 이면에 있는 다른 것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기에 속도감 있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성 차원에서 속도감 있는 작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체는 작업의 목적과 범위상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축을 위한 해체의 청사진을 검토하면서 진행해야 하기에 작업은 느려집니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여 작업해야 하기에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빨리 하느냐보다는 늦더라도 얼마나 충실하게 진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깨기’와 ‘해체’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 폭풍처럼 등장하고 있는 교육 논의들은 ‘해체’보다는 ‘깨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교육적 의미의 탄생을 꾀하는 해체보다는 기존의 교육적 시스템과 의미를 낡은 적폐로 재단하고 깨려고만 하는 모습입니다.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보다는 현상적이고 피상적인 모습에만 천착하는 모습으로 논쟁이 전개됩니다. 보이는 것만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보이는 결과만이 성과로 인정되니 성과 없음에 대해 깨기의 모습만 보입니다. 성과를 보여주려다보니 충분한 논의와 고민보다는 여론을 의식한 당장의 해결책을 주문합니다. 속도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속도전 속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해체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 Derrida)는 단순한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토대를 흔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숨겨져 있는 의미와 성질을 발견하는 것을 해체로 보았습니다. 즉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재건을 전제로 한 ‘해체’를 뜻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구조화된 지배적 이야기를 해체시키는 작업은 새로운 대안적 이야기(alternative story)를 발견할 수 있는 재구조화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에는 ‘깨기’가 아니라 데리다(J. Derrida)가 요구하는 ‘해체’의 문법이 필요합니다. ‘교육 깨기’를 넘어 ‘교육 해체’의 문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양한 교육적 논의 대상들이 깨기의 문법인 ‘싸울거리’나 ‘부술거리’가 아니라, 해체의 문법인 ‘생각거리’나 ‘만들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육은 부서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부서짐의 과정을 ‘깨기’가 아니라 ‘해체’ 작업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파머(P. J. Palmer)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말한, ‘부서져 흩어지는(broken apart)’ 마음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broken open)’ 마음으로 교육의 해체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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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 2020-01-04 18:03:34
좋은 말씀이십니다 ..^^ 응원합니다.

신호현 2020-01-01 09:51:59
송재범 원장님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이 시대에 꼭 맞는 훌륭한 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임자의 업적을 깨부수고 그 토대 위에 자신의 업적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노력도 예산도 두 배로 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업적은 또 다른 후임자에게 파손 당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업적을 해체하여 다시 덧세우는 작업으로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깨기에서 해체'의 문화로 바꾸어 가야합니다. 어제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송 원장님의 선구적 교육철학에 깊이 동감합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