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칼럼] 2019년, 대한민국 학교는 안녕하십니까?
[한희정 칼럼] 2019년, 대한민국 학교는 안녕하십니까?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12.30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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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감 행정권한 위임 조례 개정안 유감

글 한희정 서울실천교육교사모임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한희정 서울 정릉초교사

언젠가부터 새로 지은 번듯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껄끄럽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해 동․호수를 눌러 호출하거나 방문 차량번호로 미리 지정해 놓아야 하고,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호출을 하거나 비밀번호를 미리 받아놔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처음 이 상황을 접했을 때의 그 기괴스러움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지금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번거로운 절차일 뿐이다.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그들의 안전을 위한 그들의 조치이니 방문자 입장에서 왈가왈부할 것이 못된다. 저 철옹성에 사시는 분들은 방문자가 아니니 그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언제 저런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을 거주지로 삼을지 모를 일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은 어쩌면 나처럼 저 번거로운 시스템에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완벽하게 적응해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적 공간에 대한 사적 대응일 뿐, 하는 체념이다.

학교는 어떤가? 미리 출입 예약을 하는가? 아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못들어 가는가? 아니다. 방문하고자 하는 이와 사전 연락이 없으면 들어가지도 만나지도 못하는가? 아니다. 공적 공간에 대한 공적 대응의 수준이다. 정부 청사 같은 높으신 분들이 많은 곳은 예외이니, 아주 낮고 낮아 흔하디 흔한 공적 공간에 대한 대응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2019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지자체장이 국공립학교까지 주차장을 확대 지정할 수 있도록 주차장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가 교육계의 반발로 국공립학교는 제외한다는 결정을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학교는 ‘지역주민=유권자를 위해 주차장 정도는 언제든 개방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2019년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감 행정권한 위임 조례를 개정하여, 학교장과 교육장에게 위임한 사항에 “단, 교육감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이 단서 조항으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학교 시설 개방이다.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주민이 학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권한은 학교장에게 위임된 것인데 이를 교육감이나 교육장이 제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의회에 이 조례 개정안은 “위임 취지 모순, 교육자치 위배, 상위법령과 충돌, 교육감과 교육장이 요구할 수 있는 근거 불분명 등 법리적 측면과, 학교자율운영체제 구축 동력 감소, 교장회·교원단체 등 반발과 자율권 침해에 따른 학교장 집단민원 소지, 집행부와 의회 갈등으로 사회적 비용 우려 등 현실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법령 위반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는 지난 12월 20일일 이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학교는 ‘학교장이 교육에 지장을 우려하여 개방하지 않도록 결정했을 때는 교육장이나 교육감을 압박해 개방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그래서 주민=유권자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셈이다.

전자정부법에 따라 우리는 “정부24” 포털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자동차등록원부 등을 열람하고 발급받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인터넷으로 예약 발급 신청을 하고 공공기관에 방문해서 출력을 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이나 고등교육법 상의 각급 학교는 전자정부법 제2조에 따른 공공기관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인근의 학교를 민원서류 발급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발급문서를 찾으러 갈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학교는 ‘모든 국민의 편의를 위하여 민원서류를 출력해 줄 의무가 있는 공간’이다.

2019년 대한민국의 학교는 안녕한가? 조기축구회를 위해 운동장을 개방하고, 지역주민 배드민턴 동호회를 위해 체육관을 개방하고, 지역주민의 편의를 위해 운동장을 개방하고, 민원서류 발급을 위해 행정실을 개방한 결과는 무엇인가? 그 정도는 부족하니 더 많이, 더 자주 개방하라는 요구인가!

그 동안 수없이 많았던 안전사고, 그에 따른 희생자들의 죽음과 남겨진 자들의 지난한 싸움에 빚지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안전을 최우선으로”라는 구호는 왜 학교 앞에서는 멈추어 있는가! 화재대피훈련, 지진대피훈련, 성폭력 예방교육, 흡연 예방교육,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 등을 지치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은 학교와 교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2020년 대한민국의 학교에 이런 안전교육 말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울시교육청의 재의 요구와 서울시의회의 지혜로운 처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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