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나는 행복학교 교감이다!
[교육칼럼] 나는 행복학교 교감이다!
  • 장재훈 기자
  • 승인 2019.12.23 2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김상백 경남 서포초 교감
김상백 경남 서포초교감

교감하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다른 지역에서 교감하는 동기가 나를 싫어한다는 말을 전했다.

나를 싫어하는 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니 이유가 뭐더냐고 물었다.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에 일부러 찾아가서 교감하는 내 모습이 탐탁하지 않아서 싫더라고 하더란다.

일단 바로 잡겠다고 했다. 교감 첫 발령이 상당히 먼 지역이었다. 일 년 동안 출퇴근하면서 낭만도 있었지만 상당히 힘들어서 현재 지역으로 전보 신청을 했다.

정말 운 좋게 오게 되었고 행복학교인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시골 작은 학교를 선호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 학교 교감 자리가 빈 것은 행복학교는 교감하기 힘들다는 소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감 회의나 연수를 갈 때마다 진짜 행복하냐는 비아냥과 고생한다는 위로를 자주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완전히 만족하진 않지만 할만하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할 만하다고 뼈 있게 대답한다.

모인 친구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행복학교는 일반 학교와 똑같다. 일반 학교의 문제를 똑같이 가지고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 교육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마음을 실천하는 학교다.

한참 지난 어제도 다른 학교의 교사 교감 교장에게 똑같이 이야기했다.

교사라면 교감이라면 교장이라면 지금의 학교보다 지금의 교육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가? 교사가 더 나은 교육을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필요가 있는가?

교감이 더 나은 교육을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는가? 교장이 더 나은 교육을 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당위가 있는가? 교사가 주장하는 교육이 옳으면 교감이나 교장이 합세하는 것이 교육자의 자질이 아닌가?

교감이나 교장이 주장하는 교육이 옳으면 교사가 지지하는 것이 교육자의 자질이 아닌가? 아니! 내가 교감이니 교감이 주장하는 교육이 옳으면 교사나 교장이 옳거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서로 뒹굴면서 옳은, 더 나은, 정의로운 교육을 하자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행복학교라면 무조건 일 인 일 표이니 교감이나 교장에게 거수만 하라는 학교는 행복학교가 아니다. 학생들을 위해, 동등하게 평등하게 표현하여 치열하게 토의하고 토론한 후 현명하게 결정하는 학교가 행복학교다.

의욕만 있되 더 나은 교육을 하겠다는 열정과 전문성이 없는 어중개비 교사들로 구성된 행복학교를 거친 교감이나 교장이 행복학교를 부정하는 소문이 일반화되고 있다.

정말 더 나은 교육을 원해서 행복학교를 하겠다면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을, 교감이나 교장이 교사를 적대시하는 원초적, 말초적, 자극적인 폄훼부터 거두어라.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우상을 버려라. 또다시 거론하지만 열린 교육이 어떻게 무너졌나? 기관, 관료에 의해 정형화되어서 열린 교육이 망하지 않았나?
지금, 행복학교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우상을 만들어 두고, 우상 아니 우상을 만든 이들의 단내의 더러움에 의존하지 않는가? 그 우상이 무너지고 그 단내의 더러움이 더럽게 남을 때 그 뒷감당을 어찌할거나?

현재의 행복학교는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 아쉬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교원단체, 이데올로기, 우상 숭배에 의한 편향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행복학교를 비판하고 싶다면 행복학교 교감인 나를 폄훼하기 전에 성숙한 인간이 되어라.

전교조 진성 조합원일 때 행복학교 방법을 비판했고. 교총 회원인 지금은 행복학교 철학을 수용한다. 이런 내가 잘못인가? 이런, 나는 행복학교의 교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